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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06. 2018

영주산

한라산의 옛 이름을 빼앗은 오름

 제주의 오름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00오름’이 가장 많지만  ‘00 메(뫼)’, ‘00악’, ‘00봉’ 등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00 산’ 이라고 불리는 오름들도 있는데, 오늘 찾아간 영주산이 대표적이다. 사실 이름의 차이가 오름의 특성과 모양의 차이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고, 지역마다 다르게 불렀을 뿐이라고 한다.  


| 신령스러운 한라산의 옛 이름을 빼앗은 오름

 원래 영주산은 한라산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신선이 거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택리지』등에서도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서귀포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이 오름을 영주산(瀛洲山)이라고 부른다. 왜 이 오름이 한라산의 옛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유래를 알 수 없어 모두들 추정만 할 뿐이다.


 『오름나그네』의 저자 김종철 씨는 영주산은 한라산의 별칭으로, 한라산의 분신으로 신산시(神山視)하는 데서 그 별칭을 빌어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했다. 제주국제대학교 오창명 교수는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에서 전설상으로 '영한 사람(神仙)이 사는 곳'이란 뜻에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현지인들은 이 오름을 지금처럼 나무가 우거지기 전에 산이 온통 바위로 뒤덮여 있어서 ‘바우오름’이라고 불렸다고도 했다.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찾은 영주산의 옛 사진은 그 증언을 반증하고 있다.

나무가 거의 없는 영주산의 옛 모습. 예전 현지인들은 '바우오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사진출처 : 제주학 아카이브


  오름 입구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두 명이 무전기를 들고 서 계셨다. 겨울철 소일거리로 산불조심 계도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듯하다. 이곳에 대해 사전 정보 없이 도착했는데, 마을분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니 좋았다. 그분들 또한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표정이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기분 좋게 오름을 올랐다.


| 센스있게 무지개 색으로 칠한 계단이 예쁜 오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구간으로 구분된다. 먼저 풀과 잔디가 자라는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다. 군데군데 소똥도 있어 목장을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는 계단이 나타나는데 센스 있게 무지개 색으로 예쁘게 칠을 해 두어 지치지 않도록 배려해 두었다. 예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소재가 될 듯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성산일출봉과 바다가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과 신령스러운 한라산이 맞아준다.  

풀과 잔디가 자라는 목장같은 언덕을 오른다
중반부터는 무지개색으로 채색한 계단이 나타난다. 뒤로는 성산일출봉이 멀리 보이다.
정상부근 능선에 오르면 앞쪽으로 한라산이 보인다.
분화구의 앞쪽이 트여 모양이 ㄷ자형의 말굽형태를 가지고 있다.


| 제주 최대 성읍 저수지의 이면

 신기했던 건 오름 뒤쪽에 큰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는 거다. 10여 년의 공사 끝에 2015년에 완공된 이 저수지는 제주에서 제일 큰 하천인 천미천 중류에 건설된 성읍 저수지이다.(천미천은 큰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대부분 말라 있다고 입구에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셨다.) 제주도는 지질 구조상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물을 저장하기 힘든데어떻게 이런 시설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제주도 이외의 지역은 보통 저수지 주변에만 차수막(물을 막는 막)을 설치하는데, 제주는 현무암 지역이라 바닥에도 차수막을 설치해 물이 빠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600억 가까운 큰 세금이 들었다고 한다. 농업을 위한다면 명목으로 거액을 들여 만들었다는 이 시설은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여름 가뭄에 겨우 150 농가에만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단다. 농가로 공급하기 위한 시설들이 미비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혹은 우리나라)의 어이없는 행정 실태다. 결국 건설업자를 위한 것이었나?   

125만 톤 규모의 제주 최대 저수지, 하지만 올 여름 가뭄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내려올때는 경사가 급하고 미끄럽다. 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는 길을 조심하라던 할아버지의 조언을 흘려 들었는데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경사가 급한데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수분을 머금은 코코아 매트는 더 미끄러웠다. 아내도 나도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등산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은 걸 약간 후회했다. 영주산에 오를 계획이라면 방심하지 말고 설치된 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와야 할 듯하다.    






* 주소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 18-1 일대

* 주차장 : 시멘트로 조성되어 있음

* 탐방시간 : 약 1시간 정도

* 정상 해발고도 : 326.4m

* 오름 아래서부터의 높이 : 176m

* 오름의 모양 : ㄷ자형 말굽형태

* 분화 형태 : 분석구(scoria cone/cinder cone)

절개지가 드러난 곳에는 100원짜리 동전보다 작은 붉은색의 스코리아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참고자료

http://www.jst.re.kr/main.do

http://m.ihalla.com/Article/Read/1536130524606979073

https://www.youtube.com/watch?v=mj-VreoiY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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