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육아와 우울증
육아로 우울해진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
나와 비슷한 나이(70년대 생)의 아빠들이 학교 다닐때 국어시간이나 퀴즈 문제로 자주 나왔던 우리말 중 '시나브로'라는 말이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이라는 의미를 지금도 기억한다. 육아를 하다보니 내가 시나브로 변하고 있어, 나조차 스스로의 변화를 모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육아휴직의 하루는 보통 이런식이다. 삼시세끼 이유식과 간식 만들기, 기저귀 갈기, 빨래, 설거지와 집청소가 거의 매일 반복된다. 이런 일들은 잘해도 티가 안나지만, 안 하면 티가 너무 난다. 집안 정리가 어느정도 끝나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아기띠에 묶어서 산책을 했다. 산책 코스로는 아파트 주위, 동네 뒷산, 또는 근처 대형마트를 두리번거리며 자잘한 물건들을 사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아이가 칭얼대면 돌아와야 했다. 점심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다. 언젠가 부터 아이 걱정없이 편안하게 밥 한끼 먹는게 꿈이 되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칭얼대는 아이를 안아주어야 했기에 부부 모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사실 육아의 가장 힘든 점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쥐방울만한 어린 생명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특히 아이는 어떻게 달래고 노력해도 진정되지 않을 때가 있으며, 결정적으로 어떤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이의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갑자기 화가 나거나 분노가 생길 수 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힘의 논리에 많이 의지하는 남자들의 타고난 본성 상 그건 엄청난 스트레스일 수 있다.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 때 주의해야 한다. 내 경우도 아무리 달래도 미친듯이 계속 우는 아이 때문에 갑자기 화가 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아이를 침대에 던지듯이 살짝(?) 내려놓기도 했음을 나중에 아내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물론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다. 주변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육아를 위해 아이에게만 매달리다 보면 '내가 젖을 주는 기계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원망과 분노가 아이에게 향하기도 하고, 우울한 상태가 되어 감정의 기복이 커진다. 이런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육아 우울증'이다. 가끔 뉴스를 보면 아이를 키우던 엄마가 아이를 죽였다거나, 아이와 함께 옥상에서 뛰어 내렸다는 비참한 소식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미쳤다!'라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예전처럼 육아가 대가족이나 공동체에 의해 함께 이루어지지 않고, 그 책임이 오로지 개인(특히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사회에서 이해가 가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보면 현재는 여성이 대부분 육아를 전담하기에 이런 현상이 주로 엄마에게만 나타나지만, 남성의 육아휴직이 더 늘어나게 되면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유전적 또는 사회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공격성이 더 강한 남성의 경우, 만약 우울증과 이로 인한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가 더 커질 확률이 높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가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함에 있어서 이런 성적 특징에 대한 연구와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산책하며 기분 바꾸기
그럼 이런 우울한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는 뭘 할 수 있을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의 경우 주로 산책을 했다. 요즘 인기를 얻고있는 '세상의 나쁜 개는 없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개를 위한 처방으로 훈련사는 언제나 산책을 추천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햇빛이 기분을 좋게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산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이웃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평상시에 엘리베이터에서 눈마주치기를 피했던 이웃들과 어린 아이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기적을 맛보게 될 것이다.
#2. 친구 초대해 수다떨기
친구 해성이 엄마가 위로 방문해 주었어요 날씨가 좋고 나와 아이의 컨디션이 괜찮으면 지인들이 있는 가까운 곳을 방문하거나 초대하는 것은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모르는 이웃들과의 만남도 좋지만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수다는 더 큰 위안을 줄 수 있다. 내 경우도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가 방문해 주니 공통의 화잿거리가 많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 하다보면 우울한 감정이 많이 사라진다. 주의할 점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서 너무 정성을 쏟다보면 오히려 더 힘들 수 있으니 간단히 차를 마시거나, 친구들에게 음식을 부탁하자. 그것도 아니면 주문음식을 먹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3. 가까운 부모님댁 방문해 잠시 아이 맡기고 쉬기
산희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의 넓은 등주말의 경우 먼거리 여행보다는 가까운 처갓집 방문이나 종교활동이 나에겐 도움이 되었다. 처갓집을 방문하게 되면 아이를 돌보는 수고를 덜 수도 있고, 어르신들도 손꼽아 기다리신다. 이를 틈타 편안히 방바닥에 누워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잠이 들면 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또 나는 작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어린 아이들은 교회에서 활력소가 되었고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개다가 교우들이 어린 아이를 서로 안아보겠다고 난리니 몸이 편하기도 하다. 아이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아이의 컨디션을 관찰하며 너무 오랜 시간을 머무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주의할점. : 시댁을 자주 방문할 계획이라면, 아내의 눈치를 반드시 살펴야 인생이 편하다는 걸 잊지 마시길 ~^^)
육아휴직으로
남자도
육아의 힘듦을 깨닫게 된다
내가 직장으로 복직하고 꽤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아내가 조심스럽게 내 첫 육아휴직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당시 아내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내가 늘 언제 오냐고 집요하게 물어 힘들었다고 한다. 가끔 회식이나 모임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짜증을 내서 일찍 파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퇴근할 때는 버스정류장에서 유모차를 몰고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안스러워 보였단다. 퇴근해 집으로 들어가면 주방은 이유식 준비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내가 작은 일에도 자주 버럭 화를 냈다 회상한다. 나로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내가 보기엔 그랬다니 할 말이 없었다. 당시 나도 모르는 사이 시나브로 육아 우울증을 겪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암튼 육아휴직 6개월 만에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직장으로 돌아갈 때 왠지 마음이 홀가분했다는 기억은 난다.
당시 육아휴직을 통해 얻게 된 큰 수확이 있다면 육아가 그저 집에서 노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애 볼래?" 아니면 "돈 벌어 올래?"라고 물으면 선듯 육아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육아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몸소 느꼈고, 짧은 기간이나마 육아 우울증도 맛보았다. 하물며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슈퍼맘들의 고생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만약 많은 남성들이 의무적으로 육아휴직(당연히 유급휴직)을 제도적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육아의 어려움을 체험할 기회가 많아 질 것이다. 이를 경험해 본 남성이라면 육아와 가사분담에 대한 여성의 요구를 지금처럼 무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남성의 육아휴직은 남녀의 사회적 평등으로 가는 길목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남성 육아휴직을 통해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면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