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는 줄기가 되고

2025. 04.09

by 도토리



올해 제주에는 유난히 벚꽃이 풍성하게 피었다. 마을 길가에 벚꽃이 이렇게 풍성한 건 처음인 것 같다. 바람이 많은 중산간 지역이라 평소에는 잎이 먼저 올라와 벚꽃을 제대로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올해는 꽃이 필 무렵 기온이 높고 비가 내리지 않아서 그런가?


8년 전 제주로 이주하자마자 우리는 탐스런 벚꽃을 상상하며 산림조합에 가서 왕벚나무를 구입해 아들방 창문 앞에 정성스레 심었더랬다.


당시 나름 욕심을 내서 키만큼 큰 묘목을 사다 심었는데,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영 신통치 않았다. 오랫동안 마당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더니, 날이 갈수록 잎과 꽃은 부실해져만 갔다. 그저 근근이 살아있달까? 유튜브로 본 잡다한 지식으로 요리조리 가지를 쳐주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2년 전 마을정원축제를 도와주시던 정원사님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는 한마디 하셨다.


“옆 가지를 남기고 본 줄기를 잘라주시죠?”

“네? 본 줄기를 자르라고요?”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부실한 나무라지만 그동안 키웠던 수년의 세월이 너무 아까웠다. 줄기를 잘라내고 가는 가지를 굵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문가의 말이려니 하고 몸통을 톱으로 싹둑 잘라냈다.


대수술 이후 올해로 2년째가 되었다. 다행히 가느다랗던 가지는 조금 굵어져 이젠 본 줄기가 되었고, 꽃 대신 싱싱하고 튼튼한 잎들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아깝다고 그 부실한 줄기를 계속 고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때론 인생에서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과감히 잘라버리는 아픔이 있어야 더 크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나 보다. 길게 보면 그게 더 시간을 아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당시 정원사님이 했던 이 말이 기억에 남았다.


“큰 나무를 사는 건,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과 같아요.”


이미 크게 자란 나무를 사서 심으면 곧바로 풍성한 꽃을 즐길 수는 있겠지만, 자라는 시간 동안 ‘키우는 재미’는 느낄 수 없을 거라고.


벌써 4월 중순이다. 앞으로 이 녀석이 해마다 이 얼마나 높이 줄기를 밀어 올리고. 얼마나 많은 꽃을 피워낼지 벌써부터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photo_003.jpg 7년전 심었던 벚나무의 본 줄기를 잘라내자 가지가 본 줄기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도망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