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다 올게.”
“응, 잘 다녀와.”
두 시간마다 칭얼대는 아이로 인해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르겠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침 첫 수유를 하며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격하게 따라나서고 싶다.
‘흐음.’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온다.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또 하루를 어떻게 버티지.’
첫 아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마음에 백일 가까이 외출도 자제했다.
15층 베란다에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꾸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찔했다.
‘산후 우울증, 무서운 거구나.’
가뜩이나 분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치른 후라 몸도 마음도 정상이 아닐 터.
큰 아이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예민한 아이였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
“잘 챙겨 먹어.”
“그래야지.”
‘밥 할 시간을 줘야 잘 챙겨 먹지. 작은 소리에도 깨는데 어떻게 달그락거려.’
“애 잘 때 너도 좀 자.”
“그래야지.”
‘나도 자고 싶지. 겨우 재우고 나서 옆에 누우면 바로 깨는데 무슨 수로.’
“무리하지 말고 좀 쉬어.”
'......'
주변의 말들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남편뿐.
이런 마음을 알아채서였을까. 안쓰러움 때문이었을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6시 칼퇴근을 위해 노력했다.
회식과 약속은 최대한 잡지 않으려 했고.
주방에서 뭘 하는지 바빠 보인다. 수유를 마치고 나가보니 밥상이 차려져 있다.
과일까지 예쁘게.
남편이 육아를 도맡아 하는 동안 한 술 뜬다.
독박 육아로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그제야 풀린다.
트림시키기, 재우기, 기저귀 갈기, 옷 갈아입히기, 목욕시키기.
초보 아빠지만 꽤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는 동안 몰아서 쉴 수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산후우울증은 일종의 통과의례 아닐까.
출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지만 우울증까지 즐길 수는 없지 않은가.
더 이상 깊이 빠지지 않게 나름의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평일에는 고스란히 육아에 전념했다.
24시간 내내 붙어서 함께 할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리며.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수유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남편의 몫이었다.
주말, 휴일, 그리고 평일 연차가 기다려졌던 이유이다.
정면 돌파와 내려놓기.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어서 찾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주말을 보내며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산후 우울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