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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ul 05. 2022

가위바위보



 산모교실을 처음 접한 건 임신 16주쯤 되었을 때이다. 아이가 생기고 어떤 태교를 하면 좋을지 생각을 많이 했다. 거창한 태교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좋은 책, 듣고 싶은 음악, 맛있는 음식이 태교 아닐까. 생각 끝에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산모교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았더니 여러 회사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산모교실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산모교실에 신청했다. ‘아이 원 맘 산모교실’이었다. 신청만 한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당첨이 되어야 한다. 운 좋게도 처음 신청했는데 당첨되었다.

난생처음으로 경험해 본 산모교실은 신세계였다. 입장하면서 이름과 주수를 얘기하고 경품권을 받는다. 이어서 마련되어 있는 업체의 부스를 차례대로 둘러본다. 원하는 곳에 약간의 개인 정보를 남기고 소정의 선물을 받는다. 업체마다 챙겨주는 선물도 있고 그날 산모교실을 주최하는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나눠주는 선물도 있다. 주로 기저귀 샘플, 증정용 로션, 물티슈 한 통, 아기 양말, 젖병 한 개, 가제수건, 아기 면봉, 그림책, 두유 등을 종이가방 안에 담아준다.

산모교실은 교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부는 강의 2부는 레크리에이션 3부는 행운권 추첨으로 진행된다. 주최하는 회사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은 대략 비슷하다. 첫 산모교실이었던 ‘아이 원 맘 산모교실’에서는 이날 태교와 관련된 강의가 펼쳐졌다.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아이의 독립이 시작된다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호르몬의 영향이었을까.

감동적인 시간이 지나고 2부는 전문 MC가 진행하는 레크리에이션 타임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처음 만난 산모들끼리 태아의 주수, 성별 등을 물어보며 가까워졌다. 유쾌한 레크리에이션이 끝나면 마지막 순서로 대망의 행운권 추첨이 펼쳐진다. 경품은 분유 한 통, 놀이방 매트, 아기 띠, 유아차, 아기 자동차, 젖병소독기, 체온계, 물티슈 한 박스, 아기 장난감 등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약 스무 번이 넘는 산모교실을 다녔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혹시 이번에는 운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그중 하나였다.

첫 술에 배부르랴. 첫 산모교실에서는 경품에 당첨되지 못했지만 산모들 사이에서 쓰는 단어 두 가지를 배웠다. 비움의 태교와 채움의 태교. 경품에 당첨되는 행운이 따른 사람들은 채움의 태교를 한 것이다. 반대로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은 비움의 태교를 했다고 말한다. 이후로도 비움의 태교가 이어졌다.


한동안 당첨이 뜸했다. 그러다 갑자기 세 곳에서 문자가 왔다.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날 진행되는 터라 어느 곳을 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앱설루트 맘스쿨 예비엄마 코칭’에도  갔었다. 다른 산모교실은 강의와 음악회 또는 강의와 레크리에이션으로 진행되는데 이곳은 1,2부 강의로만 진행되었다. 시작 전에는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염려와 달리 유익함과 동시에 재미도 있었다. 이때 들었던 예방접종에 대한 강의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도움이 되었다.

‘맘스 스토리 산모교실’도 기억난다.  분만과 호흡 등 전반적인 출산 과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임산부 합창단의 노래도 감상했다. 마지막 순서였던 레크리에이션 시작 전 선물을 꼭 하나는 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고 이유를 발표하라고 하셨다.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끌어내어 참여했지만 상품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선물은 놓쳤어도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니까. 생각, 말투, 마음가짐, 행동이 모두 태교니까.


쏟아지는 폭우에 굴하지 않고 코엑스까지 갔던 날도 있었다. ‘베페 맘스쿨’ 산모교실이다. 아토피와 모유 수유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모유 수유 강의는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들었지만 이날도 열심히 들으며 꼭 해내리라 다짐했다. 의욕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때는 몰랐지만. 이어서 유아차 고르는 방법에 관한 강의도 이어졌다.  유익했다. 사나운 폭우를 뚫고 이 먼 곳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몸은 힘들고 사은품은 소소했지만  알찬 시간이었다.

비 오는 날 갔던 또 한 번의 산모교실이 있다. ‘마터니티 스쿨’이다. 장소도 멀어서 전철을 두 번 갈아탄 후 셔틀버스를 타고서야 도착했다. 주제는 ‘임신 중 피부 변화’였다. 임신하고 나면 튼 살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보습만 잘 되면 어떤 제품이라도 좋다고 하니 다행이다. 튼 살 크림의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짱구베개를 포함해 기본 사은품이 푸짐하다는 마터니티 스쿨은 명성 그대로였다. 워낙 먼 거리라 다시 돌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전부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 밖에도 많은 산모교실을 다녔다. 스무 번이 넘게 다녔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임신 중이라는 특수 상황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다들 놀랬다. 모든 육아교실을 섭렵하느냐는 반응부터 걱정의 말들까지 쏟아졌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다닐만했다. 괜찮았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배 속에 있는 아이와 함께였기 때문에. 나만을 위한 일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좋은 강의 듣고 아이를 키울 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많이 배웠고 즐거웠다.  오랜만에 사진을 보는데 그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10년 전의 일인데도.


모든 산모교실의 레크리에이션 사회자가 외치던 말. 나지막한 목소리로 따라 해 본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가위바위보"

절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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