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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Aug 07. 2022

어느 날 갑자기

“약국 가서 테스트기 좀 사다 줘. 아무래도 이상해.”


설 연휴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쥐고 어찌나 떨리던지.   

 

이럴 때 문 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초조한 모습으로 안절부절못하는 건 드라마 속 한 장면일 뿐인 건가. 내가 화장실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이 남편은 치킨에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임신 맞잖아.”

남편을 향해 눈을 흘겼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에는 기쁘다기보다는 얼떨떨했다.   

 

“진짜? 어디 봐봐. 이거 어떻게 보는 거야? 두 줄이네? 우와.”

나와 테스트기를 번갈아 보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짧은 연애 후 결혼했기에 신혼을 길게 가질 계획이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이를 갖게 될 줄은.        



“몇 시쯤 와?”

“집 좀 치우고 1시쯤 갈게.”

“그래. 간단히 떡국이나 끓여 먹자고.”

“어, 알았어. 음식 이것저것 많이 하지 말고. 엄마, 근데 있잖아, 나 몸이 좀 이상해.”

이때부터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눌러 참았다.

“왜?”

“임신한 것 같아.” 겁이 나고 무서웠다.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어머, 잘 됐네. 아유 잘했어.”

전화기 너머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했다.    


    

“엄마, 이제 할머니 돼.”

남편이 불쑥 말해버렸다. 시어머니께서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신다.

“테스트기 해봤는데 두 줄 나와서요.”

“아유, 축하한다. 축하해.”

“설 연휴 끝나고 병원 가려고 예약해뒀어요.”

    

며칠 후 찾은 병원에서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했다. ‘달콤이’ 엄마가 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설렘. 달콤한 초콜릿에 비할 수 없는 달달함. 그것은 그날이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테스트기 사러 약국 다녀올게.” 하고는 병원에 갔다. 혹여 기대할까 봐.    

“두 줄 나왔어요?”

“네.”

“연하게? 진하게?”

“진하게요.”

“그래도 아직 며칠 안 지났는데 오늘 볼래요? 아니면 다음에 확인할래요?”

“그냥 오늘 한 번 볼게요.”

“여기가 아기집이고 이게 난황이고. 아기집 모양도 좋고.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병원을 나서서 동생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했다.

“뭐? 임신이라고? 뭐야. 둘째는 절대 없다더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예민한 첫째를 키우며 하나로 끝이라고 누누이 말해왔기에.

“잘 됐네. 하나는 외로워. 예정일은 언제야? 축하파티해야겠네.”    


동생과의 통화를 마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신이래.”

“진짜? 우와. 00아 너 동생 생겼대.” 하는 남편의 목소리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잠시 후 집 근처 마트에서 만났다. 귀찮을 정도로 묻는다. 먹고 싶은 게 없는지. “엄마 뱃속에 00이 동생 있어서 잘 먹어야 돼.” 하며 소고기, 과일, 주스 등을 장바구니 가득 담는다. 마냥 행복해 보인다. 둘째 생각 없다고 했던 사람 맞나 싶을 만큼.    


사랑이 엄마가 되었다. 사랑 많이 받기를. 그 당시 좋아했던 추사랑 같은 딸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아주 살짝 담아. 물론 이건 혼자만 간직했던 바람이었지만.    


공유의 ‘콩알송’ 첫 부분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두 줄로 나타나서 콩알보다 더 작았던” 달콤이와 사랑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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