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_ 갈등(葛藤)의 뿌리 (Ⅰ)
누군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 왜 달리는 기차일까? 얼어붙은 세상에서 딱히 좋은 방주는 아닌 것 같은데.’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겠지만 당황하지 말자. 간단한 예시가 있다.
첫째, 그것은 우주에 표류 중인 지구에 관한 은유다. 우리 또한 차갑고 공허한 우주를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을 초극할 제3의 길을 오직 기차 밖에 있다. 그러므로 일론 머스크에게 투자하고 화성에 가야 한다……. 운운.
둘째, 원작자와 감독의 임의적인 상상일 뿐이다. SF에 진지해지지 말자. 기차처럼 길쭉한 공간은 갈등의 구도를 선명히 보여준다. 앞만 보며 치닫는 인간들을 위한 최적의 무대 장치로서 채택됐을 뿐이다.
셋째, 기차 자체가 도망치듯 미래로 내닫는 인간의 고독한 존재 방식을 상징한다. 그것은 단단하지만 얇은 철판만 두른 채 눈보라를 가르며 나아간다. 눈과 바람이 들이치진 않는다. 그러나 그 냉기는 언제나 바깥에 존재한다. 그렇게 상시적 외로움은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인간을 무너뜨린다. 그것은 말 그대로 ‘도망치는’ 중이다. 또한 망해버린 세상을 등진 분노의 질주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물들의 전진과 저항은 인간의 정동 탓에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을 표상한다.
이따위로 답하면 그저 생각 없이 의문을 표했을 뿐인 질문자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눈치 없이 진지한 답변을 늘어놓은 친구를 피곤하게 생각해서다. 만일 답을 하기 전에 그런 점을 눈치챘다면 그냥 감독이 혁명을 좋아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답하자. 감독에겐 매우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사랑이나 우정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욕받이가 되는 일 정도는 양해해 주지 않을까?
굳이 어떤 함의를 들춰내지 않아도 영화는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게 있다. 영화 속에서 분투하는 모든 인물들의 간절함은 쉽게 느껴진다. 현실에서도 대개 그 달리는 공간처럼 좁은 세계를 감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큰 차나 좋은 차가 필요해요. 넓은 집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그렇다구요. 애 둘을 어떻게 셋방에서 키워요? 이런 제기랄, 이번 생에 좋은 부모가 되긴 글렀어요.” 그렇게 공론도 아니고 누군가에 대한 걱정도 아닌 하소연들도 위의 의문에 대한 답이다. 우리도 이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주를 원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방주가 어떨지도 대강은 알고 있다. 상하좌우로 고루 넓고 충분히 두꺼운 벽을 둘렀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달리는 열차 위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달리는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그 시간이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도 워낙 커서, 현실의 버거움을 출퇴근 때의 내 모습으로 대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도 아침 8시쯤 신대방역 역사(驛舍)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면 시선조차 휴대전화에 고정한 채 다리 잘린 오징어처럼 뚱하게 서 있다.
굉음을 내며 들어서는 열차의 창문을 보면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도 아직은 서로 몸을 붙이고 서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 묘한 위로를 받는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스크린도어가 열리길 기다린다. 열차 레일 부근에서 나는 소음은 방음벽이나 흡음재의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100㏈을 넘나 든다. 그 정도의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소음성 난청에 시달리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소음성 난청은 감각신경성 난청이다. 평균 85㏈ 소음에만 지속적으로 노출되어도 청각신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 문제란 말하자면 소음에 무뎌지려 애쓰던 간절함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무뎌지는 병을 앓는다.
객실 통로에 아직 사람이 적을 때 문 쪽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기를 썼다. 다행히 객실 중간까지 들어가 손잡이를 잡으면 혹시나 앉아서 갈 수 있을지 몰라 희망한다. 아니나 다를까 신림역에서 한 번, 서울대입구역에서 한 번 고비를 넘기고 사당역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래도 사당역에서는 내리는 사람도 많다. 가끔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내리는 사람들 덕에 잠실까지 앉아서 갈 수 있다.
그래도 큰 기대를 걸었던 적은 많지 않다. 인심이 바닥난 괴로운 사람들이 심약해진 증오를 두 눈에 드리우고서 억지로 표정을 감추는 모습들은 왜 무딤과 초연함이 덕목인지 알게 한다. 이런 세태에 예민함은 경박하고 유치하다.
그러나 예컨대 한강 같은 작가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민함의 중요함을 대표한다. 어쩌면 그녀는 예민함을 은근히 예찬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는 물론, 그녀의 여러 저작은 무뎌진 인간들의 폭력성을 조명하여 사람들의 여린 부분을 드러내라 종용한다. 일상을 낯설게 하려는 문학적 시도의 한 구석을 그녀는 오롯이 차지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인 답이 되진 않는다. 그녀의 책을 읽었다고 지하철을 안 타도 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예민하게 살아도 되는 조건을 구하느라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할 이유만 늘어나는 것이다. 대안이 없으니 무딤은 여전히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다.
운이 좋게도 나는 아주 많이 무뎌진 탓에 소처럼 죽을 때까지 서 있을 작정이었다. 자리가 빌까 희망했던 건 맞지만, 정작 사당역에서 자리가 비어도 잘 앉지 않았던 게 그 때문이었다. 앞자리가 비면 잠깐 주변을 둘러보다가 옆에서 은근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가 많았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건 내 인심이 후해서라기보다 자신에 대한 가혹함에 익숙해서였다. 그래서 발이 너무 아플 때나 서서 졸만큼 피곤해지면 냉큼 자리에 앉아 버렸다.
공간의 가치는 창출되지 않는다. 나눠질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하도 쪼개니 가격만 끝없이 올랐다. 비유하자면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5천 명에게 먹인 경우다. 그렇게 잘게 나누니 고작 질긴 빵과 비린내 나는 생선이 신성과 기적의 상징으로 드높여진 것이다. 결국 생명의 빵이든, 노른자위 땅이든 너무 잘게 나누면 어느새 그것에 의지하는 존재의 여건마저 침식되는 걸 피부로 느껴야 한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내가 헐값이다.
어쩌면 그 불쾌한 현실로부터 외면하려고 빈자리를 양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선 누구라도 사연이 있으니 이유 없는 짓은 아니다. 한 번은 열차가 연착되자 플랫폼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래서 이미 가득 메워진 열차에 구겨 타는 바람에 문 근처에 서야 했다. 난 객실 중간 좌석 맨 끝자리 앞에서 기둥에 기대어 버티고 섰다. 그렇게 사당역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이 빠져나가며 서로를 밀쳐댔다. 내려야 하는 사람과 내리면 안 되는 사람이 뒤엉켰다. 나처럼 문가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인파에 휩쓸려 문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내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고, 결국 밀려드는 인파에 치이듯 객실로 돌아왔다. 머리는 거의 산발이 되어 결국 그녀도 나처럼 기둥에 매미처럼 붙어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역에서 기적처럼 내 앞자리가 비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머리를 부여잡고 내 앞으로 비집고 들어와 앉아버렸다. 그러나 그녀가 채이는 걸 본 탓에 느낄 게 연민뿐이었다.
그렇게 잠실역에 이르면 이번엔 내가 인파에 밀려 나갈 차례였다. 그러나 순순히 밀려다니다 보면 어느새 8호선으로 갈아타는 플랫폼에 도착해 있었다. 삶에 주도권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이들도 지하철에 타면 다 그 모양으로 돌아다닐 걸 생각하니 갑자기 입꼬리가 비스듬해진다.
자라고 생장할 여지란 모두에게, 아니 모든 것에게 중요하다. 질서란 얼마나 작위적인가? 가만히 놔두면 서로 얽혀서 점점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러고서 부디 내게 그 빵과 물고기를 한 조각이라도 달라고 애걸복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쩔 땐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누군가를 괜스레 흘기면서, 저따위 것들은 치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는 게 아닐까?
향수(鄕愁)란 그런 여건의 산물이다. 그것은 무엇을 욕망하는 걸까? 봄볕이 슬슬 뜨끈해지면 고향에선 아버지가 씨나락을 담갔다. 한 해 벼농사를 위해 못자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욕조만 한 고무통을 씻어 종자 한 포대를 붓고 적당히 물을 채운다. 그리고 모종의 약을 치는데, 처음엔 뭔지 몰라 아버지께 물으니 종자를 소독하는 약이라 하셨다. 그런 고무통 대여섯 개를 채우며 첫 삽을 뜬다.
나도 그 시기가 되면 아버지를 도와 일을 했다. 약을 치고 삽으로 휘휘 저으면 가벼운 쭉정이를 걸러낼 수 있다. 그렇게 볍씨를 며칠 담가두어 약으로 세례를 받은 것들이 깨어날 때쯤, 다시 깨끗한 포대에 퍼담아 비닐을 씌워 따뜻한 곳에 며칠 둔다. 그러면 따끈한 사우나에 종자가 열리며 순이 돋는다.
벼농사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못자리를 만들려면 모판을 준비해야 하는데, 천여 판 가까이 쌓아두고 작업을 시작하면 며칠이 걸린다. 일은 흙을 채우고 발아한 볍씨를 고루 뿌린 뒤 다시 얇게 덮는 과정의 반복이다.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은 한쪽에 준비된 모판을 쌓는다. 가벼웠던 플라스틱 모판에 물먹은 흙이 담기니 묵직하다. 작업이 끝나면 평평히 다져진 마른논으로 가져가 정연히 벌여놓을 것이다. 그 또한 고된 일이다. 그 일을 할 때쯤이면 이미 초여름이 한창이다. 몸이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모판을 가지런히 정렬하고, 그 위에 얇은 부직포를 덮은 뒤 관개시설을 설치하면 못자리가 끝난다. 미숫가루 색을 한 부직포가 빵처럼 부풀 때까지 몇 주간 물을 흠뻑 주며 기른다. 한 뼘 정도로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논에 물을 대고 트랙터로 곱게 갈아엎는다. 모도 충분히 자라고 논도 채비가 끝나면, 아버지는 이앙기를 꺼낸다.
잘 자란 모판을 뜯어 논으로 가져가면 이앙기를 모는 아버지가 있다. 난 모판에서 모를 움켜잡아 벗겨내 그 기계 위에 수북이 쌓는다. 그것엔 뒤쪽으로 완만히 굽은 사각 판이 있는데, 모판에 맞춰 구획된 홈과 지지대가 달려 모를 가지런히 꽂을 수 있다. 아버지는 내가 올린 모를 거기에 적재한다. 넉넉히 채우면 비로소 모내기가 시작된다. 적재 칸마다 줄줄이 실린 모가 이앙기 하부에 달린 포크처럼 생긴 칼날에 뜯겨 심어진다.
나는 이앙기 뒤로 심어진 모들의 질서를 멍하니 보고 있다. 볕이 따가워 잔뜩 찌푸린 얼굴이다. 모들은 자신에게 할양된 좁은 땅에 세 들었다. 좁긴 좁아도 뿌리를 뻗고 이삭을 낼 정도로 여유를 두었다. 과거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쥐어뜯어 그 모를 심었는데, 모가 심어진 간격은 노동요를 부르는 이들의 운율과 대개 같았다. 요즘은 기계가 닿지 못하는 곳에 발 벗고 들어갈 때나 손으로 뜯어 심으니 간격이 뒤죽박죽이다.
어린 벼는 아주 가늘어서 여러 개체를 함께 심는다. 엄지와 검지, 중지로 한번 꼬집는 양이다. 이앙기로 심을 때의 표준도 같다. 기계로 심지 못한 논의 빈자리를 손수 때울 때면 성한 모판 하나를 손바닥만 하게 아무렇게나 찢어놓는다. 한 줌씩 쥐고 맨발로 논에 들어가서 다시 잘게 찢어 심는데, 적당한 크기로 쥐어뜯어야 간섭 없이 잘 자랄 수 있다. 너무 적으면 쉬이 죽어버리고 너무 많으면 서로가 성장을 막을 것이다.
모판에 다닥다닥 붙어 자란 모들은 그 뿌리가 엉켜 있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인위적 결속이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벼의 생장을 돕고 심을 때 손이 편하기 위함이다.
틀에서 네모지게 구워진 빵처럼 자란 모를 판에서 벗겨 자세히 보면 자잘한 뿌리들이 본래의 흙을 잠식하며 얽혀있다. 얼마나 빽빽하게 엉켰는지 개미 한 마리 들어갈 수 없을 정도다. 그대로 두면 자라지 못하고 고사해 버릴 것이라 적당히 뜯어 옮겨 심어줘야 한다. 이처럼 그들의 뿌리가 서로 배배 꼬여 온건히 갈등(葛藤)하도록 논에 일부를 할양하고 시간을 주는 것이 그들을 기르는 방법이다.
농부의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버지가 정연히 벌여놓은 벼와 벼 사이의 틈으로 잡초가 비집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 질서의 여지는 본래 추수 때까지 수개월 자랄 벼에게 유보된 땅이고 하늘이다. 아직은 작고 여리지만 추수할 땐 그 공간마저 꽉 채울 것인데, 잡초는 그 틈에서 살려는 욕심을 부린다. 그러니 성실한 농부라면 직접 뿌리까지 뽑아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버지와 맨발로 논에 들어가 잡초를 뽑곤 했다. 그 질긴 것들은 벼보다 늦게 태어나도 늘 더 빨리 자랐다. 형태도 다양해서 잔디처럼 기어 자라는 것부터 꼿꼿이 서서 자라는 것까지 여럿이다.
게 중에 가장 억센 것은 어릴 때 벼와 매우 비슷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벼들은 오(伍)와 열(列)을 맞춰 자라기에 그 규칙을 어기고 서 있는 녀석은 분명 잡초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잡초들은 왜 그리 억세고 빨리 자라는가? 하나를 뽑아 자세히 보면 어린 벼와 비슷하지만 색은 더 짙고 잎도 거칠다. 중요한 것은 뿌리인데, 벼는 옮겨 심으면서 여린 뿌리가 찢기고 잘려 거무튀튀한 흉터투성인 반면 잡초의 뿌리는 뽀얗고 성하다. 그래서 벼가 안착하고 적응하는 동안 잡초는 천연의 권세를 함부로 뻗어 매섭게 자라는 것이다.
과연 자연은 낭비를 모른다. 우리가 벼의 장래를 위해 틈을 뒀더니 그것은 유보된 권익을 기각하고 현재를 사는 잡초를 침투시킨다. 농부들도 그 영원한 투쟁이 결국 자연의 승리로 끝날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농부들도 삶에 경계를 이룬 채로 이웃들과 얽혀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무덤으로 가는 여정은 생각만큼 짧지 않아서 인생에 침대 하나, 소파 하나, 탁자 하나씩 놓다 보면 으레 잡동사니 가득한 일상에 끼어 살게 된다.
농사꾼인 아버지가 종종 이런 불평을 한다. 도회지에서 왔다는 아무개가 제 담장을 넘어오는 물이나 먼지에 불평하면서 민원을 넣는다고 소란이란다. 소통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둘이지만 난 당연히 아버지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깍쟁이 어쩌고 하며 흉을 보는 동안 난 적당히 양해를 구하시라 달랠 뿐이다. 어차피 시골은 여지를 파고들며 주야장천 자기주장뿐인 잡초가 잘 살 수 없는 곳이다.
일일이 뽑은 잡초를 논 밖으로 끌어낸다. 그러고는 뿌리를 하늘로 향하도록 두렁에 올려두어 말려 죽인다. 설령 비가 오더라도 두렁에 미리 자리 잡은 풀들 때문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
틈새가 문제라면 그곳에 우렁이를 뿌리는 것도 방법이다. 모내기가 끝나고 그것들을 잔뜩 뿌려두면 늦게 올라오는 여린 잡초를 먹는다. 하지만 이미 억세진 벼는 잘 먹지 않는다.
아버지와 같은 농부들의 잡초에 대한 혐오는 아주 메마르고 가차 없다. 감성 한 포기 없이 말없이 쓸어내는 손길에는 감상이나 철학이 들어설 여지도 없다. 그것은 정서라기보다 관성과 본능에 가깝다. 질서 정연한 온전함에 대한 상상 속에서 아버지는 논의 구석구석을 훑는다.
한여름에 이르면 나도 아버지를 따라 잡초를 찾아 논을 헤집고 다닌다. 뙤약볕 아래서 허리를 굽히고 있으면 슬슬 짜증이 난다. 뻘밭인 논에선 한 발 떼기도 어렵고, 그때쯤이면 어중간히 자란 벼의 날카로운 잎들이 얼굴을 마구 찌른다. 팔은 땡볕에 그슬리고 풀독이 올라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픈 허리를 잠깐씩 펴면서 얼마나 남았나 헤아리다 보면 절망스럽다. 여기저기 끝을 모르고 펼쳐진 논뿐이다. 언제까지 하냐고 여쭈면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으시며 그저 해질 때까지라고만 뭉뚱그리곤 했다.
아버지의 논에서 잡초를 축출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그곳과 그 일의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아버지의 재산에 빌붙어 부역자로 임하며 가이아가 심고 기른 풀들을 탄압할 뿐인데 적지 않게 고되다. 그 넓고 정제된 땅에 관해 나는 특별한 감상도 없었다. 그런 감상을 가진 이는 땅주인뿐이다. 논은 아버지의 인생 역정을 가리킨다. 그것이 어쩌면 아버지를 설명하는 전부이다.
다만 부역자인 나는 빌붙은 인생의 평화를 깨는 그것들의 머리칼을 억세게 움켜쥐고, 몽둥이로 힘껏 조진다. 그것들 때문에 삶이 귀찮아진 것에 분노하며 싸그리 없애버리고 싶다. 아버지와 나 사이엔 그 잡초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