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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치(奢侈)’의 의미

삶은 의미다 - 30

by 오석연

‘사치(奢侈)’란 ‘필요 이상으로 돈이나 물건을 소비하는 것으로 씀씀이나 꾸밈새, 행사 치레 등에서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게 지나친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낭비라고도 한다. 奢(사치할 사)는 뜻을 나타내는 大(클 대)와 음을 나타내는 者(놈 자)가 합쳐진 한자로, ‘사치(奢侈)하다’, ‘자랑하다’, ‘오만하다’라는 뜻이다. 侈(사치할 치)는 뜻을 나타내는 人(사람 인)과 소리를 나타내는 多(많을 다)가 합쳐진 한자로, ‘사치하다’, ‘음란하다’를 뜻한다. 奢侈라는 한자만 봐도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없는 놈이 커지고 많아지려 하는 것이 사치이다. 한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분수에 맞지 않게 돈의 씀씀이를 보일 때 거친 표현으로 ‘돈지랄’한다고 하는데 비슷한 말이다. 특히 젊어서 덕후(마니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이러한 돈지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어릴 때는 사고 싶은 게 있더라도 돈이 부족하거나 부모님의 눈치를 보느라 억눌렸던 구매 심리가 폭발하여 돈 쏟아붓는 것을 자제하기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은 뜻이 약간 바뀌어 졸부가 자기 재산을 과시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는 사치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어렵게 살던 시절에는 무조건 소비를 죄악시하는 풍조로 부정적인 눈치를 받았지만, 요즘은 소비가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위한 기본적인 수단으로 긍정적인 면도 많이 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다. 한편 액수가 일반적인 수준보다 약간 큰 금액을 소비함으로써 행복감을 얻는데, 이를 ‘작은 사치(small luxury)’라고 한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좀 더 질이 좋은 음식을 사 먹어서 행복감을 얻는 것이다. 작은 사치를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고, 힘든 일을 하고 나서 보상을 받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심리의 연장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때의 사치품이 필수품으로 바뀐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제품이 처음 등장할 때는 사치품이었던 것들이 필수품으로 되어 내 곁에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가전제품, 핸드폰을 비롯한 통신기기, 자동차 등이 그런 과정을 거처 내 손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사치품에서 필수품이 된 물건들에 길들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아가 의존하게 되고, 마침내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루만 핸드폰 없이 살아보라. 우리가 얼마나 물건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지 실감할 것이다.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하면서 사치품이었던 것들이 필수품으로 변화되고, 이것은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중이다.

인간을 사치에 빠지도록 유혹한 것이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소비지상주의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제조업자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을 늘려야 하고, 누군가는 그 제품을 사주어야 한다. 신제품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항상 구매하게 하도록 ‘소비가 미덕’인 윤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바로 소비지상주의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은 결핍 속에서 살았다. 당연히 절약과 검소가 윤리고 표준이었다. 훌륭한 사람은 사치를 멀리하고 음식을 버리지 않는 것이 기본 미덕 아닌가. 사치는 일부 왕이나 귀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돈과 물건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더 많이 먹어 자신을 망치고 죽게 만든다. 소비지상주의는 검약이 질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비만이 질병이다. 지금도 소비지상주의는 진행형이다. 결국 소비자는 제조업자와 투자자에게 설득당해 필요하지 않은 수많은 물건을 사들인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 기능을 계단식으로 개선하는 시리즈 모델을 내놓음으로써 계속해서 새 상품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종교 휴일, 기념일, 국경일 등을 활용하여 특별 세일이라는 명목하에 소비를 부추긴다. 일반 대중이 사치를 안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자본주의와 소비지상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부자에게는 ‘투자하라’, 나머지 사람에게는 ‘구매하라’라는 윤리를 심어주고 있다.

소비지상주의는 우리에게 행복해지려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꼬드긴다. 뭔가 부족하다거나 올바르지 않다고 느낀다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고 말한다. TV의 모든 광고는 어떤 물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나아진다고 유혹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현란한 소비 욕망과 결합한 사치 심리도 결핍의 또 다른 발현이지만, 조절되지 못하는 개인의 욕망이 타인과 사회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아무리 소비가 미덕인 사회이지만 사치가 미덕이 될 수는 없다. 마르크스도 ‘사치는 가난 못지않은 부덕(不德)이다’라고 말했다. 내 돈 내가 쓰고 사회의 손가락질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사치라는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자들의 교묘한 유혹에 넘어간 소비자의 분수 넘친 사재기다.

사치의 이면에는 무조건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걸 가지고 싶어 하는 탐욕이 무의식 속에 숨어 있다. 사치하는 사람들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미래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훗날의 계획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은 돈을 쓰고 싶어도 못쓴다. 하지만 계획이 없으면 눈앞에 화려한 것만 눈에 보인다. 현재에 가장 집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너무 지극히 현재에 사는 사람들이 사치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외국인이 한국인에 가지는 편견 중 하나가 한국인은 사치와 허세가 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신경을 쓴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외제 차와 명품이 가장 많이 팔리고, 유명 회사들이 한국을 중요한 명품 판매 국가로 지정하여 공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사치의 풍조는 한편으로 과소비의 방식으로 눈총을 받지만,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게 되니 더 좋은 나라로 발전하는 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내가 벌어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다. 내가 어떤 경제적 활동을 해서 돈을 벌든, 오롯이 혼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경제적 활동이 많은 사람이 얽혀서 돌아가듯, 내가 하는 경제 활동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 내가 먹는 밥 한 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이 배어 있을까를 생각해보라. 모든 소비에 당연히 함께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물질 사치에 가장 큰 중점을 둔다. 하지만 물질을 향한 사치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물질 사치가 충족되더라도 순간의 만족에 머물 수밖에 없다. 호화롭게 사치하는 것을 호사(豪奢)라 하는데, 분수에 넘치게 어떤 것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물질적 호사보다 우리의 경험 호사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눈 호사, 귀 호사, 입 호사 등 경험 호사가 행복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사치에 집착하여 사회적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기보다 감각적 사치에 집중하여 개인의 행복을 찾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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