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8. ‘희생(犧牲)’의 의미

삶은 의미다 - 28

by 오석연

‘희생(犧牲)’이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이나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희생은 본래 제사에서 산 제물을 바치는 것, 또는 그렇게 바쳐진 산 제물을 뜻하는 말이다. 살아 있는 동물을 사용하거나, 죽인 동물 또는 요리 등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매우 어려운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희(犧)’는 牛(소 우)와 羲(복희씨 희)가 합쳐진 글자로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쓰는 살아 있는 소를 나타낸다. 牲은 뜻을 나타내는 牛(소 우)와 소리를 나타내는 生(날 생)이 합쳐진 글자로 역시 살아있는 소를 나타내고 ‘희생(犧牲)하다’라는 뜻이다.

희생은 사회적으로도 대의명분, 즉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나 재물, 또는 권리를 버리는 것을 뜻하는데, 요즘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 없는 대규모 사고, 자연재해 등으로 생명을 잃은 경우에도 희생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희생이란 낱말의 원래 뜻을 잊어버리고, 단순히 죽음과 동의어로 착각하면서 원래 뜻과 다르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대형 사고 및 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를 계기로 철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뜻에서 희생이라 말해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희생양(犧牲羊)’이란 말이 있는데 제물로 바치기 위해 희생되는 양을 뜻한다. 하나의 희생물로 모든 희생물을 대신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속죄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피해자라는 뜻으로 많이 쓴다. 고대 유대에서, 속죄일(贖罪日)에 많은 사람의 죄를 염소에게 뒤집어씌워 황야로 내쫓던 의식에서 유래되었다. 고대에는 유대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의식이나 풍습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재해나 기근에 대한 책임을 물어 몇 사람을 폴리스 밖에서 사형에 처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렇듯 희생양은 겉으로는 신에게 봉헌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거대한 집단 폭력의 결과이다. 집단 내부의 갈등과 폭력을 한 희생물에 전가해 해소하는 희생양 의식은 오래되고 무서운 갈등 해결 방식이다. 소수의 사람을 제물로 삼아 집단에서 발생한 긴장과 갈등을 우회시키는 전략이기도 하다. 집단과 사회는 평화와 결속을 얻기 위해 희생양 제의를 하지만, 일시적인 평화와 결속을 얻을 뿐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과 보복할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가 희생양이 된다는 사실이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피해자일 뿐이다. 나치 정권하에 유대인이 그랬고, 지금도 만만한 상대를 찾아서 이를 희생양으로 삼아 응징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중과 언론의 여론 개입이 강해진 현대사회의 경우 정치세력이나 언론이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현상이 더욱 강해지고 있고, 그 결과 마녀사냥식의 희생양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렇게 힘없는 대상을 희생시키는 인간의 관행은 오래된 습성이고, 약한 대상에게 린치를 가하고 살해함으로 새 힘을 얻는 호모 네칸스(Homo Necans), 즉 ‘살해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

희생의 대명사 격은 아마도 부모님의 자식을 위한 희생일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가치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며, 어머니가 되는 것은 크나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특히 모성애는 자기희생적이고 헌신성이 강하다. 하나님께서 하나하나를 끔찍이 생각하고 거두어 주시기에는 우리의 수가 너무 많아서 세상의 어머니를 만들어 보내셨다던가? 그래서 위대하고 숭고하다고 칭송하지만, 맹목적이고 저돌적이라는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내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적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 부작용도 많이 낳는다. 부모의 희생에 보상으로 자식에 거는 기대가 커질수록 자식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서 제 뜻을 맘껏 펼칠 수 없게 된다. 또한 부모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된다. 부모의 적당한 희생과 적당한 기대치가 자식의 앞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도 희생이 동반된다. 희생은 당신의 사랑이 진지하다는 것을 연인에게 확신시키는 방법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희생 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없다는 것을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종종 연인들은 상대에게 다이아몬드 반지, 명품 가방, 자동차 열쇠 등 비싼 선물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연인이 그만큼 막대한 금전적 희생을 무릅쓴다면, 주는 자는 자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고, 받는 자는 스스로 그만한 가치 있다고 확신하여 위로하는 것이다. 희생이 수반되는 어려운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입증하고 짝짓기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가장 훌륭하고 값비싼 신호는 남을 돕는 희생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타주의, 利他主義)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아무리 좋고 비싸기로 사랑하는 사람과 비교가 되겠는가? 진실한 사랑의 희생을 물질로 퇴색시키지 말기를~!

또한 사랑은 수줍음과 육체의 희생이 동반된다는 것을 아는가? 각자 자기 성기를 노출하고, 외설스러운 동작을 취하고, 점잖지 못한 봉사에 응한다. 그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수줍음을 희생하는 것이다. 더불어 육체의 비밀이라는 희생물이다. 노출은 결핍을 작동시켜 서로의 육체라는 희생물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 인류가 지금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또한 끊임없는 진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희생의 결과이다. 우리가 늘 추구하는 행복도 나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행복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신 혹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사회적 희생에 대한 책임감과 마주할 때, 거부하기보다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남의 신념을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keyword
이전 27화27. ‘공부(工夫)’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