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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창조(創造)’의 의미

삶은 의미다 - 79

by 오석연

‘창조(創造)’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냄’이라는 뜻이다. 創(비롯할 창)은 뜻을 나타내는 刀(칼 도)와 소리를 나타내는 倉(곳집 창)이 합쳐진 한자로, ‘비롯하다’, ‘시작하다’, ‘다치다’, ‘상처’ 등을 뜻한다. 그래서 ‘다칠 창’이라고도 한다. 造(지을 조)는 뜻을 나타내는 辶(갈 착)과 음을 나타내는 告(알릴 고)가 합쳐진 한자로 ‘짓다’를 뜻한다. 창조는 원자나 분자를 조작해 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아예 없던 존재를 새로 만들어내거나 세계를 만드는 능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창조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따라다니는 것이 아담과 이브의 창세 신화로부터 나온 종교적 창조론과 다윈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이다. 창조론은 아브라함 계열 설화나 신화,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 생명, 지구, 우주 등 만물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신학 사상이다. 과학의 발전이 가로막혔던 과거 기독교 문화권 등에서 세상의 창조가 종교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받아들여졌으나, 인본주의 철학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도전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자연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 과학 등과 모순된 점이 많고 분명한 실증이 없으므로, 설화나 신앙적 의미로 남아있다.

한편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하여 제창된 진화론은, 현실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가장 잘 적응한 생존자로 선택된 개체가 우세한 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진화를 일으키는 주된 원동력은 자연계에서 환경에 적응한 종이 살아남는다는 자연 선택(自然選擇, natural selection)의 원리다. ‘생물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경쟁을 하게 되는데 번식하지 못하는 종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성질을 가진 종들이 자신의 성질을 후대로 전달하며 생태계에 퍼진다.’라는 원리다. 즉 당시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에 적합한 개체들의 후손들이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결과적으로 어떤 특정 개체들이 선택받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를 자연 선택이라고 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의 모든 존재는 창조자의 계획에 의해 움직인다는 창조론에 한동안 대척점에 서기도 했지만, 9세기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과학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창조적 사고에 관한 연구자인 윌러스는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있는 시간이 필요하단다. 해결이 안 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잠시 떠나 전혀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한 통찰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것이다. 창조적 해결을 위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맞다. 안 풀리는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있어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괴롭고 힘들면 무조건 그 문제로부터 잠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뇌도 창조적인 생각이나 새로운 생각을 자리 잡게 하려면, 먼저 그 공간을 비워줘야 하는 것이다. 생각하기 위해 생각을 지우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것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무념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우러나오는 것들을 건져낼 수 없다. 그냥 잠깐이라도 가만히 앉아 있어 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한결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복잡한 생각을 지우는 ‘멍때리기’이다. 종류도 많다. 불 멍, 산 멍(숲 멍, 나무 멍), 물 멍(바다 멍, 파도 멍), 하늘 멍(구름 멍, 바람 멍, 노을 멍, 달 멍) 등 바라보면 세상 시름 잊을 수 있는 무엇이든 괜찮다. 아침 해도, 저녁놀도, 밤하늘의 별도 달도. 하물며 멍때리기 대회, 오래 눕기 대회도 있다. 생각을 비우고 포맷하여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고, 아름다운 것 앞에서 잠시 시간을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 정리 정돈을 위해서는 반드시 빈 자리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고, 텅 빈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충만함이 온다. 비워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지혜와 창의력이 나온다. 일상에서 머리가 비워지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버스를 타고 갈 때, 화장실에서, 무심한 산책길에서 ‘유레카’하고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한다. 우리 같은 글쟁이들도 그렇게 떠오른 생각의 조각을 잡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메모장을 들고 다니지 않는가.

기존 관념에 물들어 있는 어른보다 백지상태의 아이들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어 훨씬 창조적이라는 사실만 봐도 비움이 창조의 모티브가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그리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처럼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그런 자식을 키워왔기에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귀찮아질 정도로 시시콜콜 물어보던 때가 그립지 않은가. 그런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해서도 창조성이 건강히 자라날 수 있도록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질문이 있는 교실 수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면, 어렸을 적 지닌 호기심을 잘 키워주고 지지해주는 환경을 만났을 때 창조자로서의 바른 인간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더불어 우리 교육이 그런 환경이 되기를 함께 기대해본다.

창조라는 말에 제일 잘 어울리는 집단이 예술가 직업군이다. 예술가란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예술은 독특한 형식으로 나타내어 지금까지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말해서 새로운 예술작품은 새로운 감각을 창시하는 창조 활동이다. 과거에는 없었던 무언가를 있게 하는 것, 혹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 예술이고 그 자체가 창조라는 말이다. 당연히 새롭게 창조된 예술작품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어색하고 난해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에 가서 보는 전시작품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감정이 수용할 수 있는 최고치의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들일 때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다는 의미로 ‘와! 예술이다~!’라는 감탄사를 사용한다. 예술의 경지를 짐작하는 말이기도 하다. 작가보다 예술가의 경지가 창조적인 면에서 훨씬 위에 있는 것이다.

창조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기존의 있던 서로 다른 분야를 통합하여 만들어내는 것도 있다. 기업에서 후자의 방식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메디치 효과’라고 한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분야를 접목하여 창조적·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기업 경영방식이다.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종 간의 다양한 분야가 서로 교류, 융합하여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뛰어난 생산성을 나타내고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경영이론이다. 이는 15세기 중세 이탈리아 피렌체의 금융 가문 메디치가(家)에서 문화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상인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후원하자 자연스럽게 모여 생긴 이들 이질적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역량이 융합되면서 생긴 시너지가 르네상스 시대를 맞게 하였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최근 이질적인 부서 간에 협업하거나 통합하여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메디치 효과를 도모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발명품이 만들어지는 창조란 수없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탄생한다. 에디슨이 판매할 수 있는 전구를 만들기 위해 만 번의 반복과정을 거쳤고, 조각가는 수십만 번의 끌질은 통하여 걸작을 완성한다. 창조의 꽃인 모든 발명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반복을 통하여 완성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든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창조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반복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창조성이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낙관적인 마음과 사랑에 있는 것이다.

세상은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똑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느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제각각 다르다. 결국 세상은 자신이 창조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거짓투성이인 다른 삶에 유혹당하지 말고, 내 삶과 인생은 내가 창조하면서 살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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