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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Jan 14. 2024

136. ‘병(病)’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36

()’은 생물체의 전신 또는 일부분에 기능 장애가 생겨 고통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病(병 병)은 뜻을 나타내는 疒(병들어기댈 녁)과 소리를 나타내는 丙(셋째천간 병)이 합쳐진 글자로 ‘병(病)’, ‘질병(疾病)’을 뜻하고, 우리말로 아픔이다.

모든 생물의 일생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불변의 진리다. 세밑에 50년 지기가 달갑잖은 손님이 찾아왔다며 덤덤하게 중병의 소식을 전해왔다. 대학 같은 과를 전공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전국으로 흩어졌어도 모두 교직에 있는 덕분에 방학 때마다 얼굴을 보며 지내왔고, 몇 년에 한 번씩은 해외로 나가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퇴직하여 백수가 되어서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가을 모임에서 가름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친구에게 ‘왜 그리 날씬해졌느냐?’, ‘마누라가 백수라고 굶기더냐?’라며 농담 반 염려 반 인사를 대신했다. 그냥 ‘밤에 잠을 좀 못 잔다.’라는 말만 듣고 재밌는 시간 보내고 헤어졌는데, 송구영신 인사 대신 간암 3기라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해왔다. 대학 시절부터 참새처럼 늘 바쁘게 살던 친구라 퇴직해서도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이런저런 일로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하더니 몸무게가 줄어드는 변화를 나이와 성격 탓으로 돌리고 무감했던 모양이다. 특히 술도 잘 마시지 않기에.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입원해 있는 친구에게 직접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아 메시지로 간단하게 황망한 마음을 전했다.

“연말에 뭔 소리여. 말문이 막히는구먼.

우리가 벌써 몸을 손님처럼 모시고 살 나이가 됐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제 진짜 병도 손님처럼 모시고 살아야 하는가 보네. 요즘은 암이라는 병이 예전 우리가 알고 있는 병이 아니니, 네 말처럼 달갑잖은 손님이라 대접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듯하네. 일단 치료받고 퇴원하면 목소리 듣자구나. 친구야, 사랑한다~♡”

사실 내게도 두 해 전 병증이 찾아왔다. 집안 내력이라서인지 워낙 술을 좋아하는 생활을 이 나이가 되도록 접지 못한 강력한 예방주사를 맞은 격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잠자리에 들려는데 손발이 찌릿하면서 저린 현상이 온 것이다. 아무래도 왼쪽 손과 발에만 나타난 증상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에 한밤중에 택시를 타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검사 결과 아주 작은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 진단을 받고 1주일을 입원했다가 나왔다. 성인이 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던 터라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 아마 덜 아파서 그렇겠지만 2~3일 입원하니 또 그런대로 병원 생활도 할 만하고 잘 치료받고 나왔다. 손과 발의 저림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할 후유증이고 뇌경색 환자 중에서 가장 운이 좋은 경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위안 삼으며.

교직 초기 젊은 시절에 만났던 선생님이 가끔 술자리에서 나를 보고 3가지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있는데, 젊을 때 그처럼 술을 많이 마시던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그 첫째고, 살아있는 것도 신기한데 교장까지 승진한 것이 둘째며, 그러면서 아직도 그리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것이 셋째라 농담하곤 했었다. 정말 술과 더할 수 없이 친하게 지낸 인생이랄까. 그것도 강력한 예방주사 한방으로 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는 것이다. 총량의 법칙에 따라서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셔서일 수도 있지만, 몸을 손님처럼 정중하게 모실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정지 신호 없이 쉬지 않고 술 마시며 달려온 세월, 3대 성인병이란 중병이 최소한의 후유증만으로 멈춰준 병이 엄청 고맙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3시가 되면 오늘 이 운동이 나의 내일을 살게 한다.’라는 믿음으로 헬스장으로 향한다.

병~!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없애버릴 수 없는 노화와 죽음의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병은 일반적으로 꼭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인류는 엄청난 의학 기술의 발달을 이루었지만, 그 흔한 감기조차도 완벽하게 막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병을 치료 대상으로 보기보다 달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보는 것이 훨씬 정신 건강에 좋다. 중병으로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일수록 평생 함께 가겠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치료에 임한다. 병원의 치료도 마찬가지다. 

현대인의 병증 특징은 육체적 병 못지않게 정신적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제정신으로 살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바쁜 사회를 살다 보니 마음 건강을 챙길 시간이 없는 것이다. 결국 정신과를 찾은 사람이 많아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술과 마약에 의지하려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중독의 위험만 높인다. ‘힐링(healing)’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도 정신적인 병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인의 소망 때문이다.

몸의 병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병이 없이 행복하다는 것이고 고통이 없다는 것이다. 꼭 근육이 나오고 복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지 않고 아픈 곳이 없으면 건강한 것이다. 보생와사(步生臥死) -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간단하게 걸생누죽이라 한다. 다른 말로는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가 사는 것이다.’란 말도 있다. 모두 직립보행이 원칙인 사람이 걷지 못하면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이 들어 골프, 헬스 등의 거창한 운동까지 필요 없다. 잘 걷기만 해도 무병장수할 수 있다. 걷지 않으면 모든 걸 잃어버린다. 움직이면 살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먹기, 보기, 걷기가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중요한 요소란다. 사람이 여행에 매달리는 것도 세 가지(먹기, 보기, 걷기) 행복의 종합선물 세트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산책이 좋고 행복한 이유다. 허리둘레는 가늘수록 좋고허벅지 둘레는 굵을수록 좋다 하지 않던가. 아무런 준비 없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걷기가 병을 몰아내는 시작이다. 여담이지만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기 위해 만 하루 24시간 동안 똑바로 누워있어 본 적이 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고 실제 누워있는 것이 그리 편하던 것이 병원에서 꼼짝 못 하고 누워있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누워있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몰랐다. 그래서 누워 죽기가 어려운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편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최고의 마음가짐은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아픔과 고통을 인정하게 되면 비로소 삶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곪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삶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받아들이고할 수 없는 일은 기꺼이 비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힘들어하는 마음을 보듬고, 자신을 위한 음식, 휴식, 안정적 환경을 줘야 한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꺼내어 자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울하고 두려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중요한 첫 단계이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귀담아들어 줄 수 있는 자세가 멘탈을 담금질하는 기초가 된다.

이렇게 정신적․육체적 모든 병은 우리에게 아픔, 고통, 괴로움 등의 많은 상실감을 주지만, 우리가 평생 살아도 깨닫지 못한 몸과 마음에 대한 사랑을 깨워주기 위한 가장 극단적인 처방일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병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사전 백신이라면병은 더할 나위 없는 강력한 사후 백신임이 틀림없다나이 들어 심각한 질병에 걸리면 삶은 전쟁이다. 젊어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즐거움을 위한 전쟁이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면서 싸워 나간다. 하지만 병과 싸워 살아남는 것 자체가 삶의 전부가 되면 다르다. 또 싸워 이길 가능성이 없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차피 의미가 없고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이라면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조용하게 물러서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돈과 건강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장수(長壽)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이유다. 

     

인간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바라지만 유병장수(有病長壽)의 시대다병과 함께 살아가는 노년이 일출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낙조가 되기 위한 삶을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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