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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Feb 25. 2024

145. ‘별명(別名)’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45

별명(別名)’은 본이름 이외에 외모나 성격 따위의 특징을 바탕으로 남들이 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別(다를/나눌 별)은 ‘冎’와 ‘刂’가 합쳐져 생긴 한자로 처음에는 ‘칼로 살과 뼈를 발라내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다르다’, ‘나누다’, ‘헤어지다’, ‘떠나다’를 뜻한다. 名(이름 명)은 夕(저녁 석)과 口(입 구)가 합쳐진 것으로 ‘저녁이 되면 깜깜하여 서로를 알 수 없어 이름을 불러서 식별했다는 의미에서 ’이름‘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들은 사람이나 사물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서 부르는 기호를 이름이라 하고, 모든 사물이나 사람에게 붙여 사용한다. 이름은 태어나면서 붙여져 평생 사용하고 사후에도 남게 된다. 하지만 하나의 이름만으론 한 사람을 대표하고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부족했던지 여러 가지 이유로 본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만들어 불렀으며, 대표적인 것이 별명(別名), 호(號), 애칭(愛稱), 예명(藝名-연예인) 등이 있다. 

 ()’는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주로 사대부들이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 본명 대신 쓰는 이름을 만들어 사용했다. 또한 본이름이 아니고 귀엽게 불리는 이름으로 애칭(愛稱)’이 있는데,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이나 제품에 어려운 모델명보다 소비자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애칭을 만들어서 붙여 상품 판매를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름은 태어나면서 부모님이호는 자신이나 스승님이별명과 애칭은 다른 사람이 지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죽은 뒤에 그 공덕을 칭송하여 임금님이 내려주시는 시호(諡號)’가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름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그와 동일성을 갖게 되고,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름은 현대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할 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도 이름이 곧 자신임을 보증하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고, ‘나’라는 의미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이름을 두고 또 다른 이름(별명(別名))을 만들어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이다. 자기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별명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별명은 서로가 별명으로 알고 있을 뿐, 이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숨길 수 있다.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아의 동일성이 없으며 정체성도 없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활동하는 비상식적인 행위들은 사실은 자신의 실제 정체성이 상실된 행동들이다자유로움과 편안함은 있을지 몰라도 영혼 없는 행위들이 무차별로 쏟아지는 것이다영혼 없는 말 화살에 맞아서 떨어지는 새는 안중에 있을 리 만무하다. 익명성은 어떤 개인의 이름이나 행위의 주체가 밝혀지지 않는 현대사회의 개인화 현상 중 하나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몰개성화와 연결되어 도덕적 불감증으로 나타나는 사이버 공간의 문제점은 실명제의 논란으로 불붙고 있다.

둘째부르기 쉽고 친근함의 표시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두 개의 별명을 가지게 마련이다. 별명은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 친구 등 주변인들로부터 얻게 된다. 대부분 사람의 결점이 될 만한 특징을 꼬집어 나타내기 때문에 부정적인 명칭이 많고 애정 어린 놀림거리가 되지만, 친구 사이에 허물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적지만 긍정적이고 애교 섞인 이름의 애칭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정한 친구 사이나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귀신, 술통, 노랭이, 백여우 등의 별명이 붙기도 한다.

셋째특별한 목적이 있다. 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회생활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는 방향을 좋게 유도하기 위해서 이름을 붙여 불러줬다. 과거에 아명(최대한 그 사람을 드러내지 않게 해 질병이나 재액에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관명(그 사람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존재로서 사회에 편입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본명이 함부로 불리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 시호(그 사람이 살았던 생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등을 만들었다. 현대에도 개명한다든지, 예명(연예인이 동명이인과 구분하고 인기를 얻기 위해), 필명(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등을 짓는 경우가 많다.

별명을 짓거나 부를 때 조심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상대의 특징을 장난스럽게 비유하여 만드는 경우다. 특히 이름, 신체적 특징, 인격적 특징 중 부정적인 면을 비꼬아 별명을 짓고 부르게 되면,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긍정적인 면을 비유하여 지은 별명이라도 본인이 싫어하면 삼가는 것이 좋다. 어렸을 적 별명을 부르고 놀리면 열에 열 모두 싸움으로 번졌던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름이 아닌 별명이나 애칭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사회적으로 사이버 공간, 개인적으론 핸드폰이다. 요즘은 전화번호를 외우는 시대가 아니라 저장해 놓는 시대이다 보니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의 수가 손에 꼽고 나머지는 모두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다. 핸드폰 주소록의 이름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나는 애칭이나 별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두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으니 해당 사항이 없지만 많은 사람이 특히 가까운 경우 한두 개 이상은 애칭으로 저장되어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핸드폰에 모르는 기능을 묻기 위해 딸에게 핸드폰을 넘기고 기다리는데

‘아빠, 핸드폰만 봐도 선생이란 것을 알겠네. 너무 시크해~!’

‘무슨 소리야?’

‘요즘 주소록에 이름만 기록된 핸드폰이 어디 있어?’

(내 핸드폰 주소록에 모두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으니)

‘그럼, 이름 말고 뭘 기록하는데?’

‘전부, “마님”, “이쁜딸”~~~~ 등 이렇게 되어 있다.’

‘뭔 소리, 오글거린다.’

‘그게 뭐 오글거려, 식구만이라도 바꿔라.’

그래도 ‘알았다. 그리할게’라고 쿨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심심풀이로 뭇사람들은 배우자를 핸드폰에 어떻게 저장하는지 검색해 봤다. 보통형(남푠, 마눌, 서방, 집주인, 동거인, 마누라, 내편, 내신랑, 내각시, 짝꿍, 희망사항형(유명인(강동원, 장동건, 고소영, 이효리 등), 옆집아저씨, 전남친), 애교형(절세미녀, 꽃사슴, 불여시, 여우, 솜사탕, ♥♥♥), 돌봄형(큰아들, 안식처, 동반자), 미움형(썩을놈, 나쁜넘, 연구 대상, 개사촌, 웬수, 짝퉁, 잔소리, 재수탱이, 화상, 무수리, 마당쇠), 책임형(내반쪽, 평생지기, 베프, 방생금지, 죽을때까지내꺼, 미우나고우나내꺼, 내꺼합시다), 재물형(ATM, 건물주, 로또(횡재와 더럽게 안 맞는다는 두 가지 뜻), 하이에나(뭐든 탈탈 털어감)). 섹시형(방화범, 배프, 복부인, 변강쇠, 옥녀), 존경형(높은분, 보물1호, 영부인, 마님) 등 생각보다 웃프고 특이한 배우자의 별명이 정말 다양했고, 나처럼 시크하게 이름만 기록해 저장해 놓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늘 발견한 매우 유니크한 핸드폰 배우자 별명으로 ‘방화범’, ‘연구 대상’, ‘방생금지’, ‘ATM’, ‘로또’, ‘하이에나’ 등. 가장 가까우면서도 실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사이상대에 대하여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알고 있는 게 없는 사이핸드폰에 배우자의 별명이 떠오를 때마다 반가움보다 깜짝깜짝 놀라는 사이핸드폰 배우자 별명만 봐도 알다가도 모를 마법 같은 부부 사이다. 

당신의 핸드폰에 배우자 이름을 어떻게 저장하셨나요?

     

이름보다 별명을 더 많이 사용하는 시대다별명이나 애칭 모두 부정적이거나 익명성으로 사용하기보다 친근하고 사랑의 별칭으로 사용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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