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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Feb 20. 2024

144. ‘이름(名)’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44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단체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를 말한다. 名(이름 명)은 夕(저녁 석)과 口(입 구)가 합쳐진 글자로 저녁이 되면 깜깜하여 서로를 식별할 수 없으므로 입으로 이름을 불러서 식별했다는 점에서 ‘이름을 부르다’, ‘이름’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들은 모두 이름이 있다. 새롭게 발견된 존재들에게도 계속해서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이 없는 존재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도 태어나면서 부모가 붙여준 이름을 평생 사용하며 살고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떠난다.

이렇게 이름은 존재 가치다. 이름이 있어야 의미를 얻게 되고 존재 가치를 지니게 된다. 소나무, 개나리 등과 같이 잘 알고 있는 이름의 식물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잡초처럼 이름을 모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이름을 알고 있지 못한 사람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이처럼 이름은 사물이나 사람 모두에게 존재 가치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사람에게 이름은 인간 생활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출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심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의 이름은 성씨 한 자에 이름 두 자를 적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김춘추(金春秋), 김유신(金庾信) 등과 같이 지배층부터 사용되었고, 백성들은 궁예(弓裔), 신검(神劒) 등과 같이 이름만 썼다. 그러다 고려시대에 와서 공신이나 투항자들에 대대적으로 성을 내려주면서 시작되었다. 고려 중기에는 성을 쓰지 않는 사람은 과거에 급제할 자격도 없었던 것을 보면 지식층의 상당수도 성을 쓰지 않았던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남자 대부분은 한자식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여자에게는 간난이, 언년이 등의 아명 이외의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노예도 성이 없었고 江阿之(강아지), 介也之(개야지), 揷士里(삽사리) 등의 천한 이름이 주어졌다. 

국민 누구나 이름(성과 명)을 가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일제의 통치와 함께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자 새로운 관명을 짓게 되면서 여자들도 성과 이름을 갖게 되었고 남자의 이름에는 족보와 항렬이 있는 전통적인 작명법이 확립되었다. 여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영자(英子)’·‘춘자(春子)’·‘옥자(玉子)’ 등 ‘자’자 이름이 많은 것은 모두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고 ‘자(子)’에서 벗어나 뜻이나 음이 아름다운 글자를 찾아 썼다. 특히 ‘희(姬)’, ‘숙(淑)’, ‘옥(玉)’, ‘정(貞)’, ‘순(順)’, ‘미(美)’, ‘연(娟)’, ‘주(珠)’, ‘혜(惠)’ 등 곱고 아름다운 글자들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최근에는 남자의 이름도 항렬에서 벗어나 더 아름다운 이름들이 쓰이고 여자 이름은 ‘고아라’, ‘진달래’ 등의 더 이쁜 이름들이 쓰인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이름의 종류가 다양하다. 정식 이름인 관명 이외에도 아명(兒名), 별명(別名), 자(字), 호(號), 별호(別號), 시호(諡號), 법명(法名), 예명(藝名), 가명(假名), 당호(堂號) 등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태명(胎名)을 지어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이름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또한 시기마다 부르는 이름에는 건강, 장수 등의 염원이 담겨 있다. 또한 정식 이름인 관명, 곧 호적 이름은 평생을 두고 소중한 것으로 아무에게나 함부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입신양명(立身揚名), 과거장에서 이름이 드날려 출세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옛날 시집온 여자들에게 시집오기 전 살아온 마을 이름을 따서 ‘~~댁’, 남편들에게는 ‘~~양반’ 등으로 부르기 좋도록 지어주는 이름을 택호(宅號)라 한다. 여자에게는 ~~에서 시집온 여자라는 뜻이 되고, 남자에게는 ~~로 장가든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성인남녀에게 택호는 평생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명예가 되는 동시에 구속이 된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남자의 이름에 항렬(行列)를 쓰는데, 혈족의 방계(傍系)에 대한 대수(代數관계를 표시하는 말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혈족끼리도 족친으로서의 우의(友誼)를 다지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혈연 관념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방증이다. 하지만 세 글자의 성명 중에서 이미 두 글자(성과 항렬자)가 정해져 있고, 나머지 한 글자로 이름을 변별하고자 하니 남자들은 같은 씨족들 사이에 동명이인이 많게 된다. 여자의 이름은 항렬에서 벗어나므로 다양하다. 

그러면 좋은 이름의 조건은 무엇인가? 음성학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리가 부드럽고 분명하여 부르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 최고의 이름이다. 요즘 너무 별난 이름이 많은데 어른이 되면 괜찮지만 어려서 놀림 받기 쉬워 이름으로 상처받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우리 문화에서 이름은 입신양명(立身揚名)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효도를 궁극적 가치로 보고 자신과 부모, 가문의 이름을 지키고 널리 날리는 데 있다. 살아 있는 동안의 부귀영화보다 빛나는 이름을 길이 후세에 남기기를 바랐던 것이다. 호랑이가 죽어서 좋은 가죽을 남기듯이 훌륭한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 생애 최고의 이상이었다. 죽은 후 산소에 관직과 이름이 새겨진 빗돌을 세우는 것을 소원하는 것은 그만큼 이름을 소중히 하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보다도 가문의 이름과 함께 태어나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하다가 이름과 함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대표적으로 중년의 여성들이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의 경우 더욱 그렇다. 누구의 남편으로, 누구의 엄마로 살면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을 모르면 삶도 자신감이 없어지고 밖의 세상이 두려워진다. 진정한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고 세상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기 위한 시작이 이름을 되찾는 것이다. 중년의 여성들이 이름을 잊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기 쉬운 것은 삶의 무게 중심이 자식과 남편, 그리고 타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 밖으로 향한 시선을 내 안으로 거두어들여 자신에게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 실천을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서 불러보고 나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무의식 속에 자신의 의식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서 불러보자.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라.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겠다는 말이다. 김춘수의 꽃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지 않던가. 다른 사람의 꽃이 되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꽃으로 만들어 주는 일바로 내 이름을 다소곳이 불러주는 일이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나를 세상에 참모습으로 설 수 있게 하는 시작이며, 스스로 ‘꽃’이 되는 일이다. 이름을 잊어버린 중년 여성들이여~! 남의 숨은 꽃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세월로 충분합니다. 앞으로 이름을 되찾아 나의 꽃으로 살아가시길~!

오래전 백화점에서 중년 부부가 쇼핑하면서 남편이 ‘○○야, 이것이 좋은데~’, ‘○○야, 다른 곳에 가보자’ 등 애틋하게 부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인간적으로 그 남자가 멋있고 질투가 났지만, 정말 보기 좋고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남편들은 부인의 호칭을 ‘이름’으로 바꿔 불렀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생각나는 이름을 크게 불러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그렇게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은 아직 그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은 것이다. 반면 내 이름도 누군가가 크게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특히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들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잊힌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그렇게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다.

한편 이름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떳떳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할 행동을 할 때 그런 경우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중대 범죄를 제외하고 죄인들까지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름을 숨긴다는 것은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요즘 말로 익명성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행해지는 수많은 자유로움을 빙자한 비수와 같은 비난과 몰상식적인 행위들은 우선으로 척결해야 할 사회악이다. 그들의 비수에 찔려 목숨을 끊은 뉴스를 볼 때마다 확인되지 않은 악의적인 많은 정보(가짜뉴스)에 대한 책임을 지울 묘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건전한 사이버 공간의 예절을 차지하고~

豹死留皮 人死留名(표사유피 인사유명)’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훌륭하고 행복한 삶이 아니다. 훌륭한 인생, 행복한 삶은 죽음 후가 아니라 오늘의 삶에 있다. 겉으로는 이름이 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남는 것은 그 이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오늘 보낸 삶의 내용이다. 이름을 남기는 것은 삶의 이유나 목적이 아니라 삶의 결과일 뿐이다.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무엇인가를 남기면 원하든 원치 않든 저절로 이름이 남는다.

예전에 시골 동네 입구에 고시 합격이나 S대 입학 등의 현수막을 걸어 축하하던 시대가 있었다. 아직도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가끔 그런 현수막을 볼 수 있는데, 자식의 이름이 올라 부모의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개인 정보 보호’도 모르는구먼. 빛나지 않아도 부르지 못하는 이름, 품지 못하는 이름이 아니기를, 늘 함께하는 이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사람이 진짜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어 살아 있는 사람이 되는 것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자꾸 붙잡아 두는 것이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 한다.

 

삶의 끝에서 물안개처럼 부서지는 이름이 아니라 더더욱 빛나는 이름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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