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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May 25. 2024

158. ‘기다림(待)’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58

기다림()’은 사람이 무엇을 보거나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또한 시기나 날을 맞이하기를 바라고 일정한 시간을 참고 견디는 뜻도 있다. 待(기다릴 대)는 뜻을 나타내는 彳(두인 변/조금걸을 척)과 소리를 나타내는 寺(절 사)가 합쳐진 모습으로 ‘기다리다’, ‘대우하다’의 뜻한다. 원래 寺는 ‘절’이라는 뜻 이전에는 ‘관청을 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져 사용했다. 관청은 행정을 담당하는 곳으로 업무 처리 속도가 매우 느렸고, 관청을 가다의 뜻에서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관공서 느림의 미학(?)은 여전했나 보다.

기다림과 참을성에 대한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Walter Mischel) 교수의 연구팀은 1970년대 초반 ‘지연된 만족 (delayed gratification)’을 연구하기 위해 4~6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참을성에 대한 심리학 실험을 시행하였다. 아동들에게 마시멜로 1개를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2개를 주기로 하고 아동의 행동을 관찰하고, 실험에 참여했던 아동들을 추적 관찰한 결과 15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에 비해 유혹을 좀 더 오래 기다려 먹지 않고 2개를 받은 아이들이 이후에 자라서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보다 SAT 성적, 학업 성취도 측면에서 더 우월한 결과를 보였고 좌절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도 강했다는 것이다. 이후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자기계발서도 냈으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같은 소득 수준을 가진 가정의 아이들의 미래 성취 여부는 인내심이 아니라 가정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마시멜로 테스트를 통과한 수치는 전체 아이 중 1/3 정도였다는 사실에서 소수의 특별한 아이들일 수 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아직 이성이 발달하지 않는 어린이라는 연구의 맹점도 있다.

부모의 한없는 사랑과 희생이라 말하면서 한시도 기다려 주지 못하는 대상이 자식이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가장 못하는 것이 기다림이다. 다른 자식이라면 가능할 일이 내 자식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부모가 깊이 관여해서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진짜 돕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한다. 자녀의 능력을 믿을 때 자녀의 독립심 또한 길러진다.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자립심이 생김은 물론이다. 모든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자립 아닌가.

마마보이와 마마걸은 헬리콥터 부모의 양육 방식과 교육방식이 만들어 낸다. 자식의 모든 일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녀의 뒤치다꺼리를 해도 모자란다. 부모가 죽고 나서도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자식을 키우고 싶은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것이 올바로 할 일이지 대신해 주고 끌어당겨 주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고,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고, 승진을 기다리고, 경제적 자유를 기다리고 등 죽는 날까지 꿈과 희망을 꼭 잡고 기다리지 않는 순간이 한시도 없다. 죽음까지도 기다리며 살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아니, 인식하기 싫은 것이다. 또한 인생 한 방이라며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나 기회는 없다. 순간순간이 모여 결정적인 순간이나 기회로 보일 뿐이다. 사람이든 일이든 어느 순간에 ‘짠~!’하고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내 앞까지 오는 시간이 필요하고 보이지 않는 삶의 과정이 있다. 가면서 삶의 빈구석을 과정으로 채우는 것이 삶의 재미다.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고 기회이다.

살면서 제일 어리석은 행동이 영영 다가올 수 없는 사람이나 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오지 못할 사람을 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운 사람은 오지 못할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않다면 언젠가 볼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어떤 아픔이 있을지라도 행복했던 것을 많이 경험했으리라. 기다리다라는 말과 그립다라는 말은 동의어에 가깝다사람이든 물건이든 더 이상 그립지 않다는 말은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이 오든 오지 않든 기다림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한다. 그것이 희망이고 삶이고 살아갈 힘이기에.

어쩌면 사랑도 기다리겠다는 약속이며 그 기다림의 연속이다. 상대의 서투른 언어나 행동습관 등을 조용히 지켜보며 기다려 주는 배려가 사랑이다. 상대가 연인이든 자식이든 부부든 부모든 모두 마찬가지다. 상대가 바뀔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그런 모습을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불편하고 답답한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모든 모습이 예뻐 보인다. 눈에 콩깍지가 끼지 않으면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는 이유다. 이렇게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사랑만큼 우리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것도 없다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평생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속성을 십분 활용하여 이성을 유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딱 두 가지가 있단다. 첫째상대의 성적인 상상력을 자극할 것둘째성적으로 맺어지는 최종단계까지 가능한 한 오래 기다리게 할 것. 한꺼번에 사탕을 몽땅 주면 안 되고 한 번에 하나씩만 줘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지 않나요?

세상의 일은 대부분 다 때가 있다. 구약성서 코헬렛서 중에는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작물을 지켜보고 있다고 빨리 자라지 않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꼭 그 사람이 오지 않는다. 기다린다는 것은 바로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할 때 그렇다. 노력의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과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때가 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때를 만나기 위해서는, 묵묵히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 한다. 때는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다림이다. 씨앗을 심고 싹트는 것이 궁금해 기다리지 못해 흙을 파내고 계속 씨앗을 지켜보면 결국 씨앗은 썩어버린다. 당연히 열매도 맺지 못한다. 자연도 사람도 다 때가 있다. 그들의 때는 나의 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그들의 때에 내가 맞출 수밖에 없다그것이 가장 속 편하고 현명한 지혜다.

기다린다라는 또 다른 말은 버틴다라는 것이다. 좀 더 힘든 일이나 상황에서 기다린다는 의미로 버틴다는 말을 사용한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나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매우 힘든 기다림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은 한 걸음 멈춰서 기다리는 것이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둬라. 느긋하게 기다리면 좋은 때가 온다. 조급해한다고 해서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 어떤 결과든지 흔쾌히 받아들이면 그것이 삶이고 진짜 공부다.

그렇다고 무조건 기다리기만 하라는 뜻도 아니다. 속담에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말은 힘들여서 일하기보다 뜻밖의 행운을 바라기만 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뜻한다. 감나무의 잘 익은 감을 직접 따지 않고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요행만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력보다 요행으로 좋은 결과만 기다리는 사람을 비꼴 때 사용하는 속담이다. 그건 기다림이 아니라 게으름이다.

요즘은 즉각적인 쾌락즉 도파민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가 뭔가를 원하면 다음 날 문 앞에 떡 하니 놓여 있고, 뭔가를 하고 싶으면 곧바로 손안에서 화면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어져 있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원하는 것하고 싶은 열망이 올바른 기회를 얻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인내다. 긍정적인 것들이 기회를 얻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다림 끝에 큰 보상이 온다는 것도 안다. 기다림의 미학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기다림은 인생 최고의 가르침이라 말하는 이유다.

     

사람도 자식도 성공도 투자도 농사도 교육도 사랑도 심지어 질병과 고통까지 세상만사가 기다림이 시작이고 끝이다. 기다림의 미학으로 그들의 때를 맞추며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세상은 끌어당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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