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미를 용서하소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에게 지게 하였다.
<다른 이의 십자가를 짊어질 자 누가 있더냐 >
인간의 대물림은 신기한 일이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인간은 왜 그토록 사랑하는 자식에게 자신과 같은 십자가를 물려주는 것인가.
먼저 나의 십자가의 이야기다.
내 엄마는 분노하는 마음 그 고귀한 십자가를 물려주었다. 하나에서 둘이된 각각의 분노하는 고귀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는 묻는다.
‘왜 나에게 이런 십자가를 주었소?‘
그러니 사회자가 말했다.
‘그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수없이 많은 사회자들만의 해석만 있을 뿐.
아 고귀하구나..
‘주여 그들을 용서하소서’
나에게 십자가를 선사한 내 엄마는 나에게 십자가를 자신과 같은 십자가를 물려주었단 사실조차 모른다 - <주여 그들을 용서하소서 >
자신에게 십자가가 존재한단 사실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다. 또는 믿지 않을 것이다. -<주여 그들을 용서하소서>
그렇다. 그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내 모든 생각과, 행동과, 말이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내가 가진 성질의 재료로 자식에게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단 사실은
정말 무섭고도 엄청난 일이다.
한 사람의 삶에 속한 시간에서 장기적으로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단
그 엄청난 추악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인간의 추악함에 대하여>
나는 엄마다 엄마가 되었다.
내 십자가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금세 주저앉아 버렸다.
안된다. 일어나야 한다. 내 아기에게 내 십자가를 물려주어선 안된다.
두 번째 오는 화살은 막으라 하였다.
나는 엄마다. 이 악물고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버텨내야 한다.
나는 엄마니깐
우리 엄마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눈을 떴다면 이제 십자가를 내려놓는 법을 익힐 법도 할터인데,
왜 짊어지고 가려하느냐?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님과 같이 죽었다 부활한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가능할 것이다.
인생에서 두 번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아주 흔하지 않지만 가끔은 보곤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수님과 같이 부활했는가?
아니다. 그저
피나는 노력만 있었을 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간으로서 부활만 있을 뿐.
.
.
.
.
[번외]
그러곤 사회자는 말했다.
‘그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요’
주여 뜻대로 하소서.
주여 그들을 용서하세요.
…
저 어미를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