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 베이커리

단편소설

by 설민


봄봄 베이커리


설민


쥐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면서도 도통 얼굴 보기 힘든 우리가 만난 까닭은.

요즘 세상이 어떤 때인데 쥐가 나오냐며 그건 무조건 나 때문이라는 퀼트 여자와 북 보이. 이름도 모르지만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기에 내 편의대로 그들을 그렇게 명명했다. 어쩌면 그들도 나를 파티시에라는 직업명이 아닌 빵 여자라고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나는 아무 관심 없이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랄 뿐이다.

셋이서 얼굴을 본 것은 임대 계약 날 외에는 없었다. 종종 만나 사무실 이용에 대한 회의를 하자고 하여, 북 보이가 단체 채팅방에 초대를 해놓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이가 없었다. 나는 사무실 채팅방 이름을 ‘봄봄’이라고 정했다. 내친김에 그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공동 사무실 이름을 ‘봄봄’으로 붙였다. 내심으로는 ‘봄봄 베이커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세상 아무것에도 관심조차 없던 내가 빵에 처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빵을 보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그것은 숨을 쉬는 또 다른 생명체로 다가왔다. 오븐에서 꺼낸 틀을 탁탁, 쳐가며 식빵을 분리해 내는 제빵사의 손놀림이 마치 아기를 받아내는 의사 같았다. 나는 인형놀이 하듯, 아기를 키우듯 이야기를 하고 원하는 대로 주물럭거리면서 빵을 가지고 놀았다. 내가 조물주가 된 것처럼 빵을 만들어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면서. 빵은 나에게 먹거리가 아니라 놀거리였다. 제빵 수업을 듣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빵 반죽을 마음껏 주무르고 발효시키고 가스를 빼는 일은 나의 살기를 누그러트리는 의식이 되었다.

라임색 니트 스웨터를 입고 있는 나에게, 그가 ‘봄봄’이라고 불렀다. 빵을 배우던 때, 내가 처음으로 경계의 눈초리가 아닌 제대로 쳐다보게 된 사람. 그가 나를 그렇게 부른 탓에 그 뒤로 ‘봄봄’이라는 말은 내 귓가에 맴도는 이명처럼 떠나질 않았다. 봄봄이라고 불러 준 단 몇 번으로, 병적으로 남자를 멀리하던 나의 마음이 어두운 방에 스위치를 켠 것처럼 환해졌다. 몇 번의 멋쩍은 인사 끝에 나를 왜 그렇게 불렀는지 용기 내어 묻자, 노란 옷을 입은 모습이 봄 같이 느껴져서 그랬단다. 그는 그게 다라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모든 여자 수강생에게 ‘봄봄’이라고 불렀단다. 그 뒤로 말도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 지금도 가끔씩 빵 반죽을 할라치면 그가 떠올랐다. 밀가루 반죽처럼 뽀얗고 매끈한 그의 볼이. 여자의 보드라운 가슴을 만지는 느낌 같아서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가. 날씨의 변덕이 심하고 꽃샘추위가 있는 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수년 째, 봄이 되면 늘 그를 떠올리며 혼자서 설레어했다. 그 썩을 놈의 ‘봄봄’.

그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아니,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름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그를 봄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더 이상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그게 다였다. 그는 한 번의 실수, 지나가는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그가 그러한 것처럼 나도 한 번의 실수였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실수로 가장한 계획. 일면식인 처지에 내 가슴을 그에게 맡겼다. 잘 반죽된 밀가루처럼 매끈하고 봉긋한 가슴. 그가 밀가루를 반죽하듯 굴리는 손놀림에 현혹되었다. 나도 그의 손에 새로 만들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잠시 생겼지만 고개를 저었다. 쥐새끼를 죽일 때처럼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함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내 가슴이 그의 손에서 둥글게 모여지고 부풀어 오르는 상상을 하니 황홀했다. 봄 같았던 손길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의도적으로 멀리하던 남자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면 표독스럽게 상대를 내쳤다. 나는 늘 주변에 눈에 보이지는 않는 방패막이를 했다. 어느 누가 다가와도 튕겨나가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러던 내가 봄봄이라는 말에 봉인해제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에게서 바게트가 수분이 적게 들어간 빵이라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 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특별한 재료를 보관하려고 선택한 육포에서 진일보한 정보였다. 늘 색다른 빵에 목말라했던 나에게 그는 가슴 뛰는 존재였다. 그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 나는 뜬금없이 온갖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뒤져보았다. 그가 없을 테지만, 애타게 그의 얼굴을 찾았다.

그러다가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웃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취지는 이러했다. 혼자서 빌려 쓰기에는 임대료가 비싸고, 사무실이 필요하지만 매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자는 것. 꼭 내 가게를 내고 싶은 욕심은 없었지만, 비좁은 집에서 근근하게 과자를 만들어 파는 것보다는 수강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에 없던 용기였다. 매번 죽기를 결심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생활을 해야 하는 게 매일의 고통이었다.

자격증을 딴 후에 동네 빵집과 새벽부터 저녁까지 앉아서 쉬는 틈 없이 바쁜, 브랜드가 있는 베이커리를 전전하면서 남은 건 도넛모양 같은 배 둘레와 알레르기 비염과 이명이었다. 한 직장에서 일 년을 못 넘길 정도로 적응을 못하니 늘 허드렛일과 뒷정리가 나의 일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밀가루 먼지 속에서 늘 코가 매캐했다.

마흔이 되어가면서 몸에서 먼저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건강의 이상을 느낀 건 몇 년 전부터였지만 늘 이대로 죽기를 바라던 생활을 하면서 병원을 가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태도였다. 언제든 쉽게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며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않았었다. 면역이 더 약해지는 환절기가 되면, 비염이 심해져 맑은 콧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서 있을 기력조차 없을 때까지 버티다가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는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그 뒤로 쉬면서 내가 만든 제과와 빵 사진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렸다. 서비스 계정 이름을 ‘봄봄’으로 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직접 만드는 수제 빵과 제과라는 해시태그를 누르고 들어와 사진을 보고 ‘좋아요’라고 누르면서도 직접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내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한두 사람 팔로우가 늘고, 선물한다며 개인적인 주문으로 이어지면서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목돈을 들이지 않고 적은 관리비로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임대료가 저렴한 만큼 고충도 있었다. 번화가와는 조금 먼 변두리에 있고, 상가는 외벽 타일이 떨어질 정도로 무척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에 만족한 우리들은 사무실만은 깨끗하고 세련되게 꾸미자는 것에 합의를 했다. 비교적 그 의견을 잘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 오픈을 한 뒤, 먼저 알게 된 북 보이에게 인사치레로 봄봄 바게트 빵을 선물했다. 자신의 사무실을 구하면서 공동으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어 광고를 한 사람이 북 보이였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감사하다, 어떻다고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는 체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선의의 선물이 그런 사단을 이끌 줄은 몰랐다. 초코 컵케이크를 구워서 퀼트 여자의 책상 위에 선물로 남기기 전까지는. 마음에 없는 호의는 베푸는 게 아니었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사무실 중앙에는 6인용 탁자가 놓여 있다. 그에 맞게 의자도 구비해 놓았다. 비록 등받이가 없는 원형 간이 의자지만, 파스텔 톤의 엉덩이 받침이 사무실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집기 중에서 제일 돈을 많이 들인 게 탁자가 가 아닌가 싶다. 문을 열자마자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므로 개인 생활 보호 차원에서 파티션으로 입구를 가려놓았다. 두 개의 가리개는 필요에 따라 이동하며 사용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북 보이의 독서 모임 때는 퀼트 여자 자리와 나의 작업장을 가려서 그들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자는 것. 현관문의 맞은편은 퀼트 여자의 공간이다. 벽면에는 장식장을 놓아두어서 아기자기한 미니 소품들을 전시해 놓았고 늙은 호박모양의 앉은뱅이 의자는 핼러윈 파티에 등장하는 호박처럼 속이 비어서 집기나 여분의 천을 넣어두는 함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퀼트를 닮은 부엉이 쿠션도 특색 있었다. 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북 보이의 공간. 작은 책장과 책상이 전부였다. 사무실의 책꽂이에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왼쪽 벽면은 간단한 취사나 차를 준비하는 곳으로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는 간이 싱크대와 재료 준비대가 놓여있다. 그 옆으로 두 칸짜리 수납장을 이용하여 내가 사용할 재료들을 보관했다. 작은 냉장고와 오븐도 나란히 놓았다. 수납장 위에는 스테인리스 볼과 전자저울을 두었고, 왕골로 짠 바구니에는 실온에 놓아야 하는 버터와 달걀을 넣어두었다. 거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가 이름 붙인 나만의 빵인 [봄봄 바게트]도 잘 말려서 서너 개 장식해 놓았다. 거품기와 실리콘 주걱, 스파출라 같은 도구들은 벽면에 깔끔하게 걸었다.

한 동안은 사무실을 꾸미고 가구의 자리를 잡고 집기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번듯한 새 가구를 들이면 손쉬운 일이었을 테지만, 돈을 적게 들이면서 인테리어를 한다는 것은 두 배, 세 배 아니 그 이상으로 일거리를 불리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같이 모이지 않았었다. 각자 자신이 사용하는 날 나와서 사부작사부작 자리를 잡아갔다. 마들렌이나 마카롱 같은 제과를 직접 만들어 포장까지 해서 가지고 간다는 강좌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주기적으로 올렸다. 포토 존으로 활용할 간이 테이블에 은은한 스탠드 조명과 소품을 따로 준비했다, 그럴듯한 사진을 찍어 올리기 위해서. 사진을 찍을라치면 반드시 나만의 [봄봄 바게트]도 어느 각도에서든 나올 수 있도록 장식을 해놓았다. 무엇보다 나의 주 장기는 육포 가루를 넣어 만든 봄봄 바게트였으므로. 다른 빵도 만들어 보았다.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보관해도 거의 실패를 보았다. [봄봄 바게트]만이 성공적이었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로 인해 빵 재료를 아껴가며 써야 했다. 특별한 재료가 곧 소진될 거라고 생각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두 번 정도 구울 양만 남아 있었다. 다시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갑자기 모이게 된 날, 아침 댓바람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깨톡깨톡. 말라비틀어진 줄기가 꺾이면서 깨가 떨어지는 게 연상되었다.

왜. 지저분. 하게. 음식물을. 흩. 트리고. 갔냐,는 퀼트 여자의 일곱 개의 문자와 사진 한 장. 그렇게 해서 총 여덟 번의 깨가 순식간에 쏟아졌다. 긴 글은 아니지만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데 숨이 가빠졌다. 잠이 덜 깨어 몽롱한 나는 사진을 확대하여 보았다. 지난 저녁 두 개의 초코 컵케이크를 영문이 새겨진 고급스러운 비닐에 넣고 예쁜 리본으로 묶어서 퀼트 여자의 간이 책상에 올려놓았었다. 반쯤 뜯긴 케이크가 담긴 비닐은 말 그대로 쥐가 파먹은 듯 보였다. 쥐코 조리한 퀼트 여자 같으니라고. 그래도 그렇지 그동안 그녀가 흘리고 다닌 잔돈이며 아기자기한 천 조각들, 보기에도 값나가 보이는 흩보드르르한 가죽을 주워서 준 것에도 말 한마디도 없던 자가 나의 성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드니 당장에라도 전화를 걸어 악다구니를 하고 싶었다. 한 사무실을 셋이서 요일별로 나누어 사용하니 자기가 안 나오는 날은 깔끔하게 정리하자며, 모델하우스처럼 해놓았으면 좋겠다는 퀼트 여자의 비유에 처음에는 엄청 깔끔한가 보라고 여겼었다. 그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항상 ‘나 여기 지나갔어요.’라는 발자국을 남기는 듯했다. 하다못해 실밥이라도 흘리고 다녔다. 처음에 한두 번은 고개를 까딱거리더니만 그 이후로는 찾아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퀼트 여자는 한 땀 한 땀 천을 연결하고 수놓는 바느질만 꼼꼼한 듯했다. 그런 주변 정리를 싫은 내색하지 않고 한 이유는 퀼트 여자의 손 때문이었다. 오동통한 손. 발효가 잘 된 스틱모양의 빵처럼 먹음직스러운 손가락. 그런 손으로 나에게 따지듯 문자를 하다니. 언젠가 그 손가락도 빵으로 만들어 똑똑 부러뜨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난 드시라고 선물한 건데.”

내가 곧바로 전화를 걸자 퀼트 여자가 당혹스러워했다.

“그래요? 아무튼 지금 나와 보셔야겠어요. 주변도 엉망이에요.”

누군가가 헤집고 다닌 것 같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외출준비를 하고 사무실로 가는데, 그제야 핸드폰을 확인했다며 북 보이도 사무실로 오겠다고 했다.

퀼트 여자는 수강생들과 주에 두 번 정도 수업을 하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프리마켓에서 판매를 하여 수익을 냈다. 수강료와 판매, 거기다 최근에는 커피숍으로 마카롱과 봄봄 바게트 샌드위치, 마들렌 등을 납품하기 시작하여 근근부지로 살아가는 나와는 달리, 북 보이는 딱히 수익의 근거가 보이지 않았다. 부동산 아저씨 말로는 책을 낸 작가라는 소문도 있고 아니라는 말도 들리지만 좋은 차에 말끔하게 옷도 잘 입고 다닌다고 했다. 북 보이의 사생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내가 건성으로 듣자, 여자들과 몰려다닌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만의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사무실. 그 생뚱맞은 느낌은 한 달 여 간이나 지속되었다. 넓고 환한 공간이 좋아서 나는 가리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가정집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대신 내가 사용하는 요일의 아침이 되면 사무실 안에서 하나의 의식을 치렀다. [봄봄 바게트]를 아이처럼 안고 다니면서 사무실 정경과 북보이와 퀼트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 속에서 반복적으로 버터와 계란을 실온에 놓아두고, 밀가루와 설탕 등을 전자저울에 달아 계량했다. 미세한 무게에도 오르락내리락 호들갑을 떠는 전자저울을 보니 피식, 풍선에 바람 빠지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주변의 작은 진동에도 반응하는 내 마음 같아서.

처음에는 사무실을 북 보이와 둘이서 반반 사용하기로 했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기를 바랐지만 퀼트가 나중에 합류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천 조각을 이어 만든 듯한 풍덩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퀼트 여자가 상황을 보존한다는 미명아래 손 하나 까딱도 안 하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퀼트의 손가락을 보니 다시 한번 마른 바게트같이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무실을 오픈하고 나서 청소는 거의 내 담당이었다. 내가 어지르는 일이 제일 많았기에 혹여 재료를 보관하며 냄새라도 날까 봐 손에서 물이 마를 날이 없이 쓸고 닦으며 청결을 유지하려고 했다.

퀼트 여자의 작업대 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금방 사태가 파악되었다. 그다음은 빵을 만드는 내 공간 쪽을 보았다. 순간 당황했다. 퀼트를 내보내기 위한 계략은 거기까지였지 내 수납장 쪽은 아니었다. 설탕과 밀가루 등 배분해서 재료를 넣어 둔 비닐에 구멍이 나고 가루들이 흩어져있었다. 익숙한 풍경.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만 아닐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예닐곱 살 무렵, 엄마와 둘이 단독주택에 살았었다. 집에서 오십 미터도 안 되는 곳에 전통시장이 있었는데 잡곡이며 나물은 물론 꾸들꾸들하게 말린 생선과 고기 같은 것을 팔던 옆집 할머니의 투정으로 아침이 시작되고는 했다. 채소가 안 팔리면 채반에 말려서 팔기도 했는데 때로는 생선이나 고기 같은 것도 말려서 우리 집까지 늘 고린 냄새가 배어 있었다. 한동안 냄새가 진동하면 고기를 말려 육포를 만들 형편이 안 되는, 말하기 좋아하는 동네 여자들에게서 사람을 죽여 말리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어느 때부터인지 방탕한 아들이 보이지 않자 그 소문은 더 흉흉하게 퍼져나갔다. 핏물이 흥건한 고깃덩이. 핏물을 빼서 얇게 저며 채반에 너는 할머니의 피 묻은 손. 검붉은 핏물이 서너 갈래로 수돗가로 흘러내렸다. 역한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동물의 내장인지 가죽인지 모를 것들이 담벼락에 널려 있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놈의 쥐새끼들, 다른 데 가서 쳐 먹지 왜들 지랄 이겨. 나 묵고 죽을래도 없는데.”

어떤 때는 그 쥐새끼가 진짜 쥐에게 하는 투정인지 며칠에 한번 꼴로 집에 들르는 아들을 보고 하는 말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 때문에 우리 집에도 쥐들이 들끓었다. 마룻바닥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이 쥐인 지 인형인지 헷갈릴 정도로. 밤에 자다가도 천장에서 설사하는 소리처럼 우루룩 꾸르륵 거리는 것은 다반사고 방까지 진출한 용감한 쥐가 내 발 위를 내달리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느닷없는 쥐의 등장으로 엄마와 둘이서 소리를 지를라 치면 집에서는 쥐새끼 취급을 받던 옆집 아들이 달려와 정의의 용사가 되어주었다. 간혹 방 안에 쥐를 가둬서 잡아야 한다며 나 보고는 문 밖에서 야용이 소리를 내고 있으라고도 했다. 한동안 나오지 않는 엄마와 옆집 아들이 걱정되어 나는 문 밖에서 계속 야옹거리고 있었다. 찍찍 소리도 나고 가끔은 비명소리도 났다.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집과 팔아야 할 곡식이 줄어 늘 속상해하는 옆집. 그 무렵, 엄마와 나는 쥐똥과 잡곡과 구린내와 옆집 아들과 함께 범벅된 버무리 삶을 살았었다. 죽이고 싶었던 쥐새끼는 제대로 잡지 못하고.

그렇게 몇십 년이 흘러 내 생에 처음 얻은 사무실, 그것도 내 작업실에 쥐가 나타난 것이다.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북 보이가 말을 걸었다. 잠시 넋 놓고 있는 사이, 그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다.

“이 사무실에 쥐가 돌아 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없었는데.”

북 보이가 말꼬리를 흐렸다. 마치 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쥐새끼가 나 때문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제가 밤에 한 이틀 정도 늦게까지 작업하는데 저 쪽에서 소리가 나더라고요.”

북 보이가 내 자리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영락없이 내가 보관하고 있는 재료들 때문에 쥐가 들어온 것이라는 소리였다. 먹을거리는 나밖에 없었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화가 치밀었다. 퀼트 여자가 자기는 쥐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앙다문 입을 하며 나를 응시했다.

북 보이가 작업한다며 늦게까지 있었다는 날 나는 그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쥐 문제뿐만 아니라 나도 퀼트 여자나 북 보이에게 따지고 싶은 게 있었다. 퀼트 여자는 혼자서 흘리고 다니는 거라서 그나마 어이없으면서도 귀엽게 봐줄 수 있는데, 북 보이는 차원이 달랐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나도 벼르고 있었다. 쥐 나오는 게 내 탓이라고 나를 다그칠 형편은 아니었다. 어느 늦은 밤에 불이 켜져 있어서 상가로 들어가 보았었다. 불을 끄지 않고 퇴근했나 보다 했다. 가끔 부동산 아저씨가 불을 켜고 간다는 소리를 했던 탓이었다. 문의 비밀 번호를 누르려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쥐새끼가 내는 것 마냥. 철컥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신음소리 같이도 들렸다. 소름이 돋아한 발짝을 떼려다 그대로 멈췄다. 나와 수강생들이 빵을 만드는 작업대, 퀼트 여자가 예쁜 천들을 늘어놓고 바느질을 하던 그곳에 하체가 드러난 여자가 두 다리를 천장을 향해 올리고 누워있었다.

엄마는 인형과 옷을 사주겠다는 말로 울고 떼쓰던 나를 달래어 병원으로 갔다. 살이 찢기는 듯한 통증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오줌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피가 흘렀다. 나를 담요로 칭칭 감은 엄마.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 엄마는 잠시만 참고 치료하고 나오면 내가 갖고 싶어 하는 마른 인형을 사주겠다고 했다. 엄마에게서 나를 강제로 떼어낸 간호사들이 내 팬티를 벗기고 수술대 위에 눕혔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웠다. 본능적으로 오므리는 다리. 피로 얼룩진 내 다리가 보였다. 의사들이 다리를 벌렸다.

여자의 허연 다리. 브이자 모양으로 벌려진 한쪽 다리에는 봉춤을 추는 무희처럼 팬티가 빙그르 돌았다. 무릎 춤으로 바지가 내려간 북 보이의 허리띠가 사정없이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갓 구워 나온 식빵 같은 북 보이의 탱글탱글한 엉덩이가 보였다. 문득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이번엔 엉덩이 모양의 바게트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그들의 정사를 숨죽여 지켜보다 문소리가 나지 않도록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야옹 소리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나를 봄봄이라고 부르던 그 남자의 손길이 떠올랐다. 빵 반죽을 하듯 부드럽게 가슴을 주무르던 그의 따뜻한 체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살포시 안겨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는 상상을 했다. 심장소리를 들으며 건포도 같은 그의 젖꼭지도 만지고 싶었다. 먹어보고 싶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그와 흔들의자에 포개어 앉아 있는 상상을 하면 나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런 상상 뒤에는 한동안 나 자신을 혐오했다. 쥐새끼를 죽이고 싶었다. 목을 뜯어먹고 싶었다.

친구들이 초경을 하던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뒷감당을 못하여 의자며 옷에 핏물을 묻히고 다니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보통 사람이 평생 흘리는 생리혈을 어릴 적 다 쏟아낸 거였나 보다. 신기하게도 생리는 안 하면서도 주기적으로 통증을 느꼈다. 묵직하고 무엇엔가 찢기는 듯한 통증. 그런 증세가 있는 날이면 내 속에 있던 독기가 품어 나오는 듯했다. 살의를 느꼈다. 정의의 용사를 죽이고 싶었다.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그럼, 쥐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해 볼게요.”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무뚝뚝한 말투로 내가 말을 했다. 같이 앉아 있으면 화를 낼 것 같아 내 작업실 쪽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사과한 알을 꺼냈다. 과도와 접시도 챙겼다.

“이렇게 모인 김에 사무실 청소와 사용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사항을 의논했으면 하는데 어때요? 가끔 퀴퀴한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퀼트 여자가 삐약거리듯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 서로 이름이라도 알죠?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계속 귀에 거슬리는 퀼트 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나는 사각사각 사과를 깎았다.

“그냥, 예명으로 부르는 게 어때요? 우리 동호회 사람들은 재미로 그렇게 하는데.”

북 보이의 말에 나는 동의했다. 그들의 이름을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나는 바게트가 되었고, 퀼트 여자는 그냥 퀼트라고. 사실 부엉이라고 하고 싶었으나 말도 꺼내지 못했다. 튀어나온 눈을 부릅뜨고 당연한 듯 먼저 퀼트라고 불러달라고 단정 지었으므로. 북 보이는 북맨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예명을 정하는 이야기가 끝나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은 이유를 그들은 모를 터였다. 퀼트는 그대로, 북 보이만 어른으로 성장시키면 호칭정리는 되는 셈이었다.

“사과 좀 드세요.”

깎은 사과를 먹어보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먼저 집어 들어 씹어 먹는 퀼트와는 달리 눈길도 주지 않는 북맨에게 사과를 권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북맨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요. 저는 생과일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어요. 컨디션 안 좋으면 바라만 봐도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다니까요?”

북맨은 어릴 적부터 있었던 생과일 알레르기에 대한 고충과 멋모르고 생과일주스를 마셨다가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한 이야기를 했다. 또 한 번은 생크림 케이크에 있는 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 입 먹었다가 기도 속에서도 두드러기가 나서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쏟아냈다. 생일날 골로 갈 뻔했다면서.

“그나저나 왜 우리 사무실 이름이 봄봄인 거죠?”

자신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퀼트를 보며 머쓱해진 북맨이 화재를 돌렸다. 퀼트는 우리 사무실에 이름이 있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싫으신가요?”

사과 깎은 껍질과 칼, 접시를 치우며 내가 말을 했다.

“별로면 벌써 이야기했죠. 나름 괜찮아서 그냥 있었어요. 바라 봄, 마주 봄 뭐 이런 의미에서 우리 조합과 유사하다고 여겼어요. 반반보다 아주 시적이니까요.”

반반이라는 말에 퀼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봄봄’을 바라보고 마주 본다는 의미로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삶은 각자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니까. 비교적 화기애애해진 분위기가 되었지만 차마 북맨의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또 퀼트의 수업시간이 가까워져서 바로 헤어졌다.


다음날 북맨에게서 개인 문자가 왔다. 생각보다는 빠른 전화였다. 쥐가 있다고 생각하니 혼자 있기가 두렵다는 말을 몇 차례나 한 결과였다. 내가 헤어지면서 애절한 눈빛으로 쥐가 너무 무섭다고 도움을 청했다. 사실 쥐새끼 따위는 무섭지도 않았지만, 시간 날 때 도와달라고. 북맨과 단둘이 만나기 위한 계획이었다. 근무가 오전에 끝난다면서 쥐를 몰아내는 일을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남자로서 의무와 책임감이 든다나? 어제 사무실 앞에서 헤어지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투잡으로 작가를 한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오전에 수강생들과 상투과자 만드는 일을 마치면 별다른 일과가 없었기에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오전 수강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북맨을 찾아보았다. 1인 출판을 해서 ‘지금은 독서 중’이라는 책을 냈고,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는 사진들이 꽤 많이 있었다. 주저리주저리 긴 글도 올려놓았지만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다. 북맨이 책을 냈다는 사실보다 팔로우 수가 꽤나 많은 것이 더 놀라웠다. 1분 낭독을 한다며 어떤 글인지 모를 책을 읽는 목소리도 들어 보았다. 사석에서 듣던 소리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꽤나 진지했다. 그렇게 북맨의 일상을 훔쳐보는데 문소리가 났다.

북맨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왠지 분위기가 서먹해졌다. 한 발짝씩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철컥철컥 허리띠의 버클이 부딪히는 것 같았다. 그와 스치듯 지나가면서 쥐덫을 좀 사가지고 온다며 내가 밖으로 나왔다. 팬티의 봉춤과 올록볼록한 식빵, 허리띠의 잔상이 아직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서 북맨을 오라고 한 것에 시기상조인가 싶었지만 오히려 스릴 있었다. 빨리 북맨의 엉덩이 식빵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걸로 쥐가 잡히겠어요?”

북맨이 사무실을 구석구석 살피며 건성으로 말을 했다.

“그래도 일단 쥐덫을 놓아 봐야지요.”

끈끈이에 붙어있는 쥐. 쥐약에 고통스러워하는 쥐. 끈적임에 몸부림을 칠수록 더 달라붙고 지쳐서 죽어버리는 것을 어릴 적 본 적이 있다. 찍찍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펄떡이다 지쳐 체념한 쥐의 까만 눈동자. 쥐를 잡아준다는 명목아래 우리 집을 들락거리던, 옆집 아들이 또다시 떠올랐다. 지워야지 잊어야지 할수록 문신처럼 각인이 되어가는 쥐새끼. 그런 쥐가 무서워서 울먹이는 나를 안아주며 내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던 거친 손이. 칼로 째는 듯한 통증이. 몸서리가 쳐졌다.

북맨이 서류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하마터면 아는 체를 할 뻔했다.

“이거 내가 낸 책이에요. 사인해서 한 권 선물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책의 겉장을 열고 사인을 하면서 괜찮은지를 물었다. 허세 같았다. 군소리 말고 내가 사인해 줄 때 받으라는. 굳이 사양할 이유를 찾지 못한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북맨이 말을 이었다.

“저 원래 관종이어서, 저에 대해 궁금한 거 다 물어보셔도 돼요.”

인터넷 용어로만 보던 관심종자. 제 멋에 글 쓰고, 책을 내고 작가라고 독서 모임하면서 많은 여자들 틈에서 헤벌쭉 웃고 있었던 사진 속의 북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나마 직접 대놓고 관심 끄는 것을 좋아한다니, 아닌 척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북맨은 사진 찍는 각도에 따라서도 꽤나 달라 보였다. 잘 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간혹 고뇌하는 지식인의 폼이 드러나게 연출을 하는지라 그럴듯했다. 대놓고 자신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느냐고 하니 도무지 물어볼 것이 없어서 내가 화제를 돌렸다. 만약을 대비해 모든 준비는 해놓았지만 잠시 다른 때를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생각해 보니 오늘 바게트 만들 게 있었네요. 봄봄 바게트.”

할 일이 있으니 가보라는, 북맨을 내보내기 위한 말이었다.

“그래요? 그러지 않아도 지금 쓰려고 하는 책 주인공이 파티시에라서 바게트한테 인터뷰 부탁하려고 했어요. 오늘 시간도 되는데 저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시죠?”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온몸의 피가 수런거렸다.

북맨이 바로 재킷을 벗고 흰 셔츠 소매를 접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할 기세였다. 열기가 오른 내가 볼에 계량한 강력분과 물, 소금, 이스트를 넣어 탁자로 가져왔다. 맨손으로 반죽을 치대야 하니 북맨에게 손을 닦고 오라고 하면서 냉장고에서 육포 가루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바게트에 고기가 들어가냐고 묻는 북맨에게 특별하게 내가 만든 레시피라고 설명했다. 몇 년 전 특별하고 좋은 고기가 생겼는데, 처리하기가 어려워서 고민하다가 어릴 적 옆집 살던 할머니가 육포를 만들던 것이 생각나서 만들어 보았더니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고. 고기의 핏물을 잘 빼서 청주와 설탕을 섞어 표면에 바르면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채반에 널어 말리면 육포가 된다고. 간장과 후추, 청주, 설탕 등을 넣어 만든 육포는 주변 사람들과도 나눠 먹고, 그래도 남은 고기로는 양념을 빼고 말려서 가루를 내어 빵에 적용해 봤다고. 마지막으로 빵에 넣기 위해 바싹 건조해서 가루를 내어 밀가루랑 썩어서 봄봄 바게트를 만드는 거라는 이야기까지, 북맨이 묻지도 않는 말을 계속 덧붙였다.

십 여 분간을 밀가루를 치대면서 자기가 빵 만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달라는 북맨. 주문도 디테일하게 반죽하는 손을 클로즈업해서 찍고, 얼굴 옆면이 나오도록 상반신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한 컷 한 컷 찍어주었다. 카메라 속에 담긴 북맨의 모습을 보니 나를 ‘봄봄’이라고 부르던 그가 불현듯 그리워졌다. 그럴수록 쥐새끼도 빨리 죽이고 싶어졌다.

“이제 따뜻하게 1차 발효를 해야 해요. 발효를 해서 부피가 빵빵하게 커지는 것을 보면 아주 마음이 흡족해져요. 그래서 제가 빵을 만드나 봐요.”

조금 더 빠른 발효를 위해 중탕을 하듯 뜨거운 물을 넣은 큰 볼 안에 반죽한 작은 볼을 넣어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면포로 덮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며 바게트를 발효시키는 동안 내가 북맨에게 차를 대접했다. 몸에 좋은 한 방 차니 한 번에 들이켜라고. 천남성의 뿌리, 부자를 말려 끓인 차. 거기다 북맨이 오기 전 갈아놓은 사과즙까지 첨가했다. 북맨은 홀짝 마셔보며 한약 같다고 마시기를 꺼려했다. 북맨과 몸이 밀착될 만큼 가까이 다가간 내가 잔을 들어 북맨의 입으로 가져갔다. 북맨의 팔이 내 가슴이 닿았다. 얼결에 차를 꿀꺽 마신 북맨이 다소 당황한 기색으로 말을 걸었다.

“바게트가 하는 인스타에 들어가서 봤어요.”

순간 비밀을 들킨 것 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구나 보라고, 공유하자고, 나를 내보이고, 포장하고, 나의 분신 같은 빵과 쿠키들을 올려놓았는데 면대 면으로 이야기를 하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도 북맨 것을 보았다는 말을 하기가 좀 그래서 머줍게 웃고 말았다.

1차 발효를 마치고 동글리기를 했다. 손 안에서 굴러가는 반죽의 느낌이 좋았다. 기포가 터지면서 폭폭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바람 빠진 에어 캡을 눌렀을 때의 촉감이었다. 북맨도 너무 보드랍다며 동그랗게 밀가루 반죽을 굴렸다. 잠시 벤치 타임을 가졌다. 내가 북맨을 계속 뚫어지게 보았다. 아직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발효를 마친 육포가루를 넣은 적갈색의 밀가루. 같은 크기로 떼어놓고 북맨에게 빵 성형 시범을 보였다. 가슴골이 보일 수 있도록 일부러 허리를 깊숙이 숙여 밀대로 밀가루 반죽을 타원형으로 밀어서 편 다음, 위아래로 접어가며 사람 팔뚝만 한 길쭉한 바게트 모양이 되도록 성형을 했다. 손으로 둥글고 길쭉하게 더 모양을 다듬었다.

“이렇게 해서 바게트 모양의 빵이 나오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바게트를 반죽해서 발효시켜 놓은 게 있어서 2차 발효를 준비하며 젖은 면포로 성형된 빵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내 빵 선생 봄봄은 동글리기 할 때 여자 가슴 만지는 느낌이라 황홀하다고 했는데, 나는 바게트를 성형할 때 흥분돼요.”

밀대로 밀가루를 미는 북맨의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서서히 그의 목도 붉어지면서 두드러기 같은 수포가 조금씩 올라오는 게 보였다. 마치 발효된 빵에 가스가 차여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어서 눌러서 공기를 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데 사무실이 좀 덥지 않은가요? 좀 답답하네.”

북맨이 숨이 찬 듯 한숨을 내쉬며 걷어붙인 셔츠 소매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북맨에게 다가가 셔츠 단추를 풀었다. 싫지 않은 내색이었다. 북맨의 건포도 같은 젖꼭지가 보였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내가 그곳에 입을 맞추었다. 흠칫 놀란 듯 나를 보는 북맨에게 웃어 보였다. 북맨의 젖꼭지가 탱글 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가 2차 발효를 마친 빵 가운데에 칼집을 냈다. 원래 보통은 사선으로 칼집을 서너 번 내지만 가운데를 내는 것은 순전히 나의 취향이었다. 생살이 틑어지듯 쫘악 갈라지는 반죽. 짜릿했다. 북맨도 그 과정을 잘 따라 했다. 조금 더 발효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바로 굽기로 마음먹었다. 오븐 틀에 바게트를 올려놓았다. 띡띡거리며 예열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오븐. 마지막 봄봄 바게트를 오븐에 넣어 굽기 시작했다.

“빵이 숨을 쉬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러나 오븐에 들어가는 순간, 15분 후 얘네들은 바로 죽음이지요. 사람들은 빵의 시체를 먹으며 맛있다고 하는 거고요.”

북맨은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하니 소름 끼친다고 했다. 생각보다 길고 힘든 과정이라며 자리에 앉는 북맨. 전보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의 뒤로 가서 발효를 시키느라 사용한 젖은 면포에 주머니에서 꺼낸 클로로포름을 묻혔다. 만약을 대비한 준비였다. 내가 더 가까이 북맨에게 다가가서 그의 무릎에 앉았다. 셔츠의 단추를 다 풀어헤쳤다. 전보다 더 붉어진 북맨의 얼굴. 팔 여기저기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나의 유혹에도 생각보다 착실하게 빵 만들기에 집중하는 북맨. 다음 차례로 오븐에 들어갈 바게트에 칼집을 내려는 북맨에게 키스를 했다. 북맨 손에 들려있던 빵 칼이 떨어지며 쇳소리가 났다. 돌변하여 나의 가슴을 만지며 더 격렬하게 키스하는 북맨. 나는 면포로 북맨의 코를 막았다. 잠시 후 북맨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는 서서히 그의 숨통을 조였다. 헐떡이는 숨이 잦아들었다.

북맨은 나의 마지막 재료로 만든 [봄봄 바게트]의 배를 가르고, 나는 머지않아 [북 바게트]라는 이름의 새로운 빵을 만들게 될 것이다.

오븐에 넣어 둔 마지막 봄봄 바게트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고소한 빵냄새가 진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