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걸 빨리 알아채고 그만두는 것도 재능

영화 커미션

by 설민

못하는 걸 빨리 알아채고 그만두는 것도 재능

영화 커미션


설민

다크앱에서 커미션이 왔다. 그리고 그 그림이, 살인으로 재현되었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미술 강사 단경. 현실에선 자신의 재능에 의기소침하고 무시당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필요한 사람’이 된 공간이 다크웹이다. 그녀가 재능을 발현한 곳. 익명의 의뢰인, 알 수 없는 메시지. 그리고 시작된 커미션, 그림 하나로 지옥의 DM이 열렸다.

미술학원 보조강사 강단경은 천재 웹툰 작가 다다익순 강주경의 동생으로 언니의 빛에 가려진 만년 작가 지망생이다. 어느 날 동료 강사 김세은이 웹툰 회사 네오툰에 낸 원고가 채택되어 계약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시기심이 불타오른다. 단경은 그날 밤 일러스트 플랫폼 사이트에서 19금 그림 의뢰 건을 받는다. 홧김에 김세은이 그린 웹툰 캐릭터를 적나라한 19금 이미지로 그려 의뢰자에게 보낸다.

사건의 발단은 여기서부터다.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고 돈을 벌게 되니 단경은 그 세계에 서서히 빠져들게 된다. 교보넷은 불법적인 주문을 받아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받는 사이트로, 이때의 의뢰를 커미션이라고 한다.

교보넷에서 큰 인기를 얻은 단경은 자신감이 생겨 언니 주경이 소개해 준 화방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목진필 화백의 칭찬을 받게 된다. 목화백의 인정과 교보넷에서의 재능에 취해, 자신이 그림을 그려준 대로 살인이 일어나는 등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지만, 이를 모른 척한다.

상대의 진심을 모른 채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화풀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단경의 성급한 태도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게 끔찍하다. 그림이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단경은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는 언니의 백으로 어시를 하게 된 단경은 질투와 부러움으로 주눅 들어있었지만, 교보넷에서 알게 된 자신의 재능에 취해있다. 이에 공방에서 함께 일하는 늦깎이 웹툰 작가 지망생(언니인 주경에게 밀려 등단하지 못해서 단경 또한 못마땅해한다) 해건은 말한다.

[백 명 중의 한 명만 살아남는다. 네가 그 한 사람일지 생각해 보라고. 우린 99명이야. 우리는 대체 왜 필요할까? 그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한 비료다. 퇴비다. 똥이다. 그래도 죽도록 열심히 한다. 내가 그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그 개 같은 희망 때문에.

열심히 해라.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다. 너를 속이고 기만한 거다. 우리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한테 속은 거다. 목진필 화백이 말하는 만손(만화그리는 손)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다.]

폐부를 찌르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희망에 들떠 불나방처럼 불빛에 달려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을 알면서도 그 대열에 낄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을 잘 대변해 준다.

목진필은 주경에게 네 재능이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넌 언제나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 같다고. 재능이 영원하지 않을까 조바심 내는 제자를 향해 조언한다.

주경 또한 말한다. 일인자의 자리에 있으면 늘 표적이 된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천재란 이유로 질투한다. 선생인 목진필이 자신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아 불안해하는 찰나에 단경의 교보넷 그림을 보게 된다. 자신의 받아주지 않는 목화백에 화가 나 그리던 그림을 차마 완성하지 못했던 단경의 작품을 주경이 완성시킨다. 단경에게 의뢰를 하던 한냐군은 그대로 목화백을 죽이지만, 이후 자신이 본 그림이 단경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주경을 찾아간다. 하지만 실랑이 끝에 주경에 의해 죽고 만다. 주경은 목 화백의 뒤를 이어 그가 만들던 작품을 완성해 성공한다. 단경은 경찰 조사 이후에야 마지막 그림이 언니가 한 짓임을 알게 되지만, 단경이 교보넷에서 닉네임 타이지라는 증거가 없어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 사회봉사를 한다.

하지만 단경은 언니를 찾아가 이미 바닥난 그녀의 실력을 짚어 비난한다. 이에 주경은 자신처럼 사회적 지위나 명성을 가진 자의 말을 믿을까, 단경의 말을 믿을까 생각해 보라며 냉정하게 말한다. 이에 교보넷에서 주시한다는 경찰을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사이트에 들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해 자신을 증명하고 결국 잡혀가게 된다.

KakaoTalk_20251205_084822745_01.jpg 출처 네이버

영화 제목인 커미션은 여러 뜻이 있지만, 뉴스나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뜻으로 수수료 또는 보상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주로 뒷돈의 의미라 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의뢰라는 뜻으로 설계나 그림 등의 제작을 주문하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는 천재 웹툰 작가 다다익순인 언니 강주경에 대한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시달리던 만년 작가 지망생 강다경의 재능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불러일으킨 사건을 다룬다. 어릴 적 처음 받은 미술대회 최우수상조차 언니가 그려주었던 것이라는 치욕에서 벗어나 언니를 이기는 일인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광기로 변질하여 버린다.

목 화백은 말한다.

“꿈은 살아남으려고 꾸는 게 아니야. 살아가려고 꾸는 거지.”

단경은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에게 묻는다.

“꿈을 이룬 삶은 어떠냐고?”

경찰은 단경의 말에 단호하게 말한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다 너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아.”

모든 꿈과 끔찍한 사건이 끝난 뒤에야 단경은 깨닫는다.

‘애초에 내가 어울리는 곳은 무대 위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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