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정과 냉정 사이]
열정과 냉정 사이
설민
10년 뒤 자신의 생일날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서 만나자고 했던 약속.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오갔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또 지금은 상대를 배려하려다 놓쳐버리기 쉬운 사랑의 이야기.
사랑은 변한다. 상황이나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을 사랑하기도 어려운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열정이 계속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다만, 세월과 함께 변화해야만 지속할 수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복원하는 일을 하는 준세이. 강직하고 한 우물을 파는 전형적인 인물로 보인다. 보석점에서 일하는 아오이는 반짝이는 외모와 예민한 감성을 지녔다. 하나의 사랑, 두 사람 그리고 10년의 러브 스토리. 서로 다른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엿듣고 싶어진다.
미술품 복원을 배우기 위해 피렌체에서 유학 중이던 준세이는 오래전 헤어진 연인 아오이가 밀라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이미 새로운 연인이 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지만, 그녀의 행복을 빌며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다.
그가 공방으로 돌아왔을 때, 복원하던 작품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일로 공방의 이미지가 추락하고 문을 닫게 된다. 준세이는 일자리를 잃고 아오이와의 추억이 가득한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아오이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과 상의 한마디 없이 아이를 지웠다는 이유로 분노한 준세이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준세이와 아오이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독특한 구조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다시 피어나는 순간의 미묘함이 설레는 영화다. 일본 영화 특유의 절제된 감정선과 잔잔한 영상미가 돋보인다. 이태리 피렌체 골목골목을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술품 복원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간과 기억, 그리고 사랑의 복원을 함께 이야기한다. 준세이는 다소 고지식하고 한 우물을 파는 인물이다. 과거를 잊지 못하고 오래된 작품을 재생하는 일이 어쩌면 그의 성격과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다. 그런 일편단심인 성격이 준세이를 사랑하는 두 여자에게 상처를 준다. 공방 선생님은 준세이가 복원하던 작품을 찢는 행위로, 유학생이었던 여자는 왜 나는 안되냐며 절규하지만 준세이는 아오이를 사랑한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10년 전, 오해와 상처로 인해 멀어졌던 두 사람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를 지운 듯 살아가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감정이 준세이를 다시 그녀에게 향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런 미련이 오래전 오해를 이해로 풀 수 있었던 이유이다. 또 준세이를 사랑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떠난 아오이 또한 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기에 10년 후, 약속을 지킨다. 연인이 그곳에 같이 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두오모 성당에서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사랑이 시작되었던 첫 키스의 순간 들었던 첼로의 선율을 피렌체에서 다시 듣게 된 것은 아오이의 계획이었다. 부드럽지만 격정적인 첼로 선율처럼 다시 과거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사랑을 나누며 서로 잊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지만, 그 둘은 또 기약 없이 헤어진다. 그녀에게는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준세이, 그와 헤어졌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아오이로 인해 그 둘이 또다시 헤어지게 되는 결말이 안타까웠다. 솔직한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 싶다. 결국, 브로셔를 통해 다시 거리 공연을 했던 첼리스트를 찾아가 아오이가 그 곡을 부탁했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떠난 밀라노로 가게 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제목은 두 사람의 대비된 감정선을 명확히 드러낸다. 아오이는 차분한 태도를 통해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만, 준세이는 열정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붙잡으려 한다. 그 둘의 사이가 10년 뒤 재회하는 두오모 성당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르네상스의 중심이자 ‘부활’의 의미를 가진 장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과거의 상처와 오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감정의 균형을 찾아가는 상징적인 장소가 두오모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감정이 어떻게 변하고 미화되고 다시 돌아오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두 사람은 사랑을 잃고서야 그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다시 만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순수했는지를 깨닫는다.
누구나 마음속에 남겨 둔 ‘사랑’이나 ‘잊지 못한 약속’이 있기에 다시 봐도 공감대 형성이 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끝은 계속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담은 이야기가 아름다운 배경과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헤어진 연인을 가슴에 담아둔 채 각자의 삶을 사는 두 사람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늦가을에 더 진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