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스토너
장편 소설 스토너
설민
작가는 서문에 이 책이 픽션임을, 여기에 묘사된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이미 죽은 사람이든 살아있는 사람이든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여전히 소설을 쓰며 헤매는 나로서는 어리둥절하다. 사실 픽션으로 소설을 쓴다고 해도 전에 보았던,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장소, 사건 등을 참고하지 않고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는 데,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구 못지않게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이 책의 띠지에 있는 문구이다. 요즘 다시금 나의 화두에 오른 ‘도중’. 계속 평범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굳건하게 마음을 다지려고 ‘그런데도 걷는 도중이다’라는 말을 스스로 되뇌는데, 이 문구를 보고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책의 뒤표지에 있는 이 말 또한 너무도 공감되었다.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출간 50년이 지나 비로소 전 세계를 매료시킨 아름다운 소설로,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 작가 존 윌리엄스의 대표작인 [스토너] 이야기다.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는 열아홉 살 때 농업을 공부하려고 미주리대학에 입학하지만,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문학도의 길을 들어가 교수가 된다. 가정적이고 성공에 뜻이 없는 조용한 스토너지만,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은 마음, 학문에 있어 진지한 태도가 오히려 그를 고독하게 만든다.
작가 존 윌리엄스는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을 진실하고 강렬하게, 인간에 대한 연민을 품고서 펼쳐 보인다. [스토너]는 그 자체로서 문학의 힘에 바치는 찬가이며, 슬프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따듯한 위안이다.
대학에 입학하여 문학에 매료되고,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스토너는 전쟁 때문에 대학의 일들이 중단된 것에 화가 났다. 자신의 내면에서 강렬한 애국심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또, 스토너는 부당한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강의실을 지키고 매일매일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성실히 싸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치열하고 어려운지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이 질문은 자책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해방감을 준다. 대단한 걸 이루지 못했어도, 넘어졌을지라도, 그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일깨워준다.
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1956년 미주리대학 교수로 재직 중 암 선고로 인해 퇴직하고, 그해 삶을 마감한 허구의 인물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실패작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삶이었지만, 그의 삶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부모의 권유로 농학 대학을 들어가 나름 고학하며 고집스럽게 영문학을 공부하여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평생 조교수 이상의 직함을 얻지 못했다. 첫눈에 반한 소녀에게 구애하여 결혼했으나 그들의 결혼에는 애정이 없었다. 결혼 후 이상하리만큼 변해버린 아내와 그런 어머니로부터 해방을 갈구했던 사랑하는 딸을 구해주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결혼과 전쟁에서 죽은 사위로 인해 술에 의지해 살아가게 된 딸 그레이스의 불행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하는 여인 캐서린을 알량한 교수 직함을 지키려 떠밀 듯이 떠나보내야 했던 비열함. 그리고 미련할 정도의 고집으로 동료 교수인 로맥스와의 일생을 건 다툼. 그런 삶에 대해 스토너 자신은 죽음의 순간 몇 번을 되뇌며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는 무엇을 기대하며 65년이란 세월을 살아왔을까? 죽음 앞에서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답을 찾지는 못한다. 스토너의 삶이 슬프고 지친 실패한 삶인 것 같지만 나름 성공적인 삶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영문학에 관심과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영문학 강사가 되고 평생을 영문학 연구와 제자 교육에 바쳤다. 또한,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모두가 국가적인 의무감으로 입대를 했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학교에 남아 공부하기로 한다. 결혼, 육아, 직장 생활, 타인과의 갈등, 불륜 등 사람이 살면서 겪는 이 모든 중대한 결정을 스토너는 이상하리만큼 우직하게 자신의 삶을 관조적으로 대하며, 타인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며 살아간다. 결국, 스토너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오롯이 살아낸 승리자로 남게 된 것이다.
한 남자의 인생을 진실하고 강렬하게 묘사하는 모습에서 스토너에게 공감했다. 누구나 철저히 혼자라는 인생의 진리를,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가 스토너임을, 우리의 일생에 인생의 모든 빛나는 순간이 담겨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바로 이것이 스토너의 삶에 귀 기울이는 이유이자 뜨거운 감동의 근원이다.
스토너는 늘 이기는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런 자기 삶을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이 쓴 책을 펼치고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추는 그 순간, 방의 침묵 속에 떨어지듯 떠나는 그의 모습마저도 눈부신 일생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삶을 살아온 그대, 무엇을 기대했는가? 나이 들수록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스토너로 인해 문득 우리 모두, 개인 하나하나가 평범하지만 특별한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축적’이 아니라 ‘ 과정’ 그 자체라는, 먹먹하면서 묘한 위로를 받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화려한 훈장이 없어도, 당신이 하루하루 버티며 지켜온 그 고요한 고집과 사랑이 바로 당신의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