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민 Aug 16. 2024

미스터 선샤인

씨유 어게인

미스터 선샤인

씨유 어게인


설민


   모든 장면이 인상 깊지만 이번에 드라마를 다시 보고 난 이후에는 유진 초이의 마지막이 자꾸 눈에 밟힌다. 애신을 무사히 떠나보내기 위해 남은 한 발의 총알을 열차칸을 끊는 데 사용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보면서 죽음을 택하는 자의 절절한 눈빛, 그리고 기차 밖으로 떨궈진 반지 낀 손에 흐르는 핏줄기…….

   재회한 애신이 대의를 위해 결혼을 제안한다. 반지를 나누어 끼고, 결혼사진을 찍고, 그 둘의 사랑이 위장 결혼으로나마 위안을 얻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유진초이의 마지막은 너무도 애절하다. 슬픔은 남아있는 자의 몫이라지만 한 번도 품어준 적 없는 조선에서 내쳐진 그의 삶, 다시 돌아온 나라에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멀리 떠나버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내가 있어 울기보다 내가 없이 웃길 바란다’는 그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당신은 당신의 조선을 구하시오. 나는 당신을 구할 거니까.”

   불꽃으로 살아가려는 애신에게 한 말을 지킨 유진 초이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는 한 번도 큰 뜻을 품지는 않았지만, 그의 길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것이 곧 대의와 같이한다. 


   <미스터 선샤인>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애달픈 사랑, 한 여인을 둘러싼 세 남자의 간절한 마음, 격변기 개화기에 이름 없이 조국을 지켰던 의병들의 뜨거운 분투를 줄거리로 다루고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엄중한 사명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쾌하고 애달픈 항일 투쟁사다.  들꽃처럼 살다 간 이들의 통쾌하고 묵직한 이야기다. 

   미국의 이권을 위해 조선에 주둔한 검은 머리의 미 해군장교 유진 초이와 조선의 정신적 지주인 고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애신의 쓸쓸하고 장엄한 모던 연애사다. 

   2018년 7월 7일부터 9월 30일까지 방영된 주말 드라마. 정규 방송을 할 때는 보지 못했다. 그 후로 다른 채널에서 방송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인상 깊고 또 재미있었다. 

   이 드라마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번에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의 [선샤인 스튜디오]를 다녀와서이다. 본 지 오래되었지만 뇌리에 남아있는 장소와 대사가 있긴 했었는데 그곳에 가보니 새록새록 그 추억이 되살아났다. 

   유진 초이, 고애신, 구동매, 김희성, 쿠도 히나 등 주요 인물들이 거닐었던 한성 거리를 재현한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감흥이 너무 좋아서 집에 돌아와서는 제대로 정주행을 해서 보았다. 24회의 긴 드라마를 한 편의 영화처럼 보고 말았다.

   그들이 거닐던 세트장 안을 다니니 마치 나도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드라마를 보고 갔으면 더 구석구석 살펴보고 재미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어떻게 드라마를 찍었을까 싶었다. 다시 드라마를 보면서 그곳을 생각해 보니 더욱 드는 생각이다. 그렇게 넓어 보였던 한성시내. 곳곳에 위치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이웃하고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독립된 개체로 멋지게 재현되었으니 말이다. 그곳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난 분명히 보았다. [해드리오] 간판을. 그런데 무심코 지나치면서 ‘뭘 해드리오? 뭘 해준다는 거야?’ 하면서 유유히 출구를 빠져나왔다. 

   다시 드라마를 보니 그 [해드리오]는 유쾌한 해결사들이 온갖 물건을 다 팔고 문제를 덜어주는 곳, 그리고 김희성이 신문을 만들어 내던 장소였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두 가지다. 매소표에서 나눠주는 안내서를 잘 살펴볼 것과 덥고 지치더라도 호기심은 남겨두지 말고 다 둘러볼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또 가본다면 김희성이 묻어둔 사진들이 아직 그곳에 있는지 파보고 싶을 지경이다.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 선샤인]. 유진 초이가 처음 맡은 임무와 고애신의 지령은 같은 사람을 저격하는 일이었다. 한성의 점등식 행사로 사람들이 들떠있는 홍예교. 그곳에서 그 둘은 거사를 마치고 처음 마주치게 된다. 그 만남이 그들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복선 같다. 같은 일을 했지만 그 의미가 다르고, 결과는 같으나 의도가 다른 일을 하는 애신과 유진 초이. 

   1907년 대한제국 시대 의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개화기를 거치는 조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인물들과 배경이 다른 사극들과는 달리 이질적이지 않은 이유다. 지금과 비슷한 복식과 머리, 문화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 살아있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 무엇보다 고애신과 유진초이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재치 있기까지 하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조차도 위트가 넘친다. 그것이 드라마를 이끌고 나가며 집중하게 하는 힘이다. 개화를 거치고 신분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그들의 사연은 극의 긴장감을 더 높인다.

   애신이 그 시대의 여느 양반가 자녀처럼 조신한 사람이었다면 총을 들고 나라의 일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애신. 비록 그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정신이 흐른다고 볼 수 있다. 고사홍 또한 나라의 일을 걱정하는 인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장포수를 시켜 애신이 자신의 몸이라도 보존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한 것이다. 

   수나 놓고 아녀자로서 지아비의 보호를 받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또 나라를 지키는 일을 선택한 애신은 총을 들고 학당에 나가 영어를 배운다. ‘러브’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러브’하자는 애신. 그것을 재치 있게 받아들이는 유진 초이는 그 순서를 알려준다. 통성명, 악수, 허그 그리고 그다음은 그리움인가 보라고. 나중에 그 뜻을 알고 당황해하는 애신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이 드라마의 제목인 ‘미스터 선샤인’은 햇빛, 햇살, 행복이라는 뜻으로 애신에게 유진 초이는 햇살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또 한글을 몰라 읽지 못하는 서신을 받아 들고 난처해하는 유진 초이, 하나하나 글자를 배워 한약방의 ‘어성초’함에 서신을 주고받는 로맨틱한 장면도 재미있다. ‘기다림’이라는 꽃말처럼 그들의 사랑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이다. 

   유진 초이는 9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고,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녹록지는 않았지만 군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살길을 빠르게 깨닫는 총명한 아이였다. 조선에서의 ‘최유진’의 이름을 버리고 ‘고귀하고 위대한 자’라는 의미의 ‘유진 초이’가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애신의 눈에 ‘햇살같이 빛나는 사람’으로 다가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 이미 죽은 목숨을 살려 준 애신을 잊지 못하는 백정의 아들 구동매의 일편단심과 꽃, 바람 등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는 김희성,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 일로 부자로 살고는 있지만 마음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한 여인으로서의 자신으로 살아보지 못한, 삶이 애틋한 쿠도히나의 슬픈 서사는 극의 재미와 긴장을 준다. 부모 없이 자란 고애신, 노비 출신의 유진 초이를 포함하여 각자의 인생이 딱하고 서럽다. 그들 모두는 시대의 비극이고 역사인 것이다.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 들꽃처럼 이름 없이 살다 간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독립된 나라에 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준 것은 뺏지 못하지만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노비, 백정, 아녀자, 유생... 신분은 다르지만 자기 나라의 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름 없는 영웅들의 투쟁사. 조국을 빼앗기고 이름을 빼앗긴 이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렬히 죽어가던 상실의 시대. 그들이 원한 것은 돈도 이름도 명예도 아닌, 제 나라 조선의 ‘주권’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지만 과연 그 시대의 나라면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미스터선샤인 #드라마 #의병 #씨유어게인 #극

작가의 이전글 내가 죽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