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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 Aug 09. 2024

내가 죽던 날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죽던 날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설민


   내가 죽은 날도 아니고 내가 죽던 날이라니……. 제목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름이 그 사람의 브랜드를 나타내듯이 영화나 글의 제목은 그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과연 ‘내가 죽던 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니…….


   태풍이 몰아치던 밤, 외딴섬 절벽 끝에서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소녀가 사라진다. 

   ---유 서--- 중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랐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해지는 풍경 말고는 아무런 아쉬움이 없습니다. 부디 파도 사이로 사라져서 돌아오질 않기 바랍니다.’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는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소녀의 실종을 자살로 종결짓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소녀의 보호를 담당하던 전직 형사,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구슬려서 증거를 찾으려고만 했던 수사관. 연락이 두절된, 가족이라 믿었던 새엄마. 아무도 소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럴 애가 아니라는 그 한마디조차 없다. 그리고 소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마을 주민 순천댁을 만나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소녀가 홀로 감내했을 고통에 가슴 아파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몰두하게 된 현수는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 앞에 한걸음 다가서게 되는데…….


   [내가 죽던 날]은 실종된 소녀의 흔적을 좇는 한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형사 현수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소녀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단서를 찾는다. 당일 소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인물인 마을의 순천댁은 동생의 자살로 충격을 받아 농약을 마시고 목소리를 잃어 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녀와의 대화는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복직을 앞두고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현수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상처와도 마주하게 된다. 한때는 잘 나가던 형사였지만 후배 경찰관과의 사내 스캔들, 이혼 소송 준비, 출동 중 접촉사고로 인해 팔이 마비되는 사건으로 휴직을 한다. 이혼을 하려면 한 사람의 끝의 봐야 한다더니 그 스캔들을 빌미로 외도한 남편이 직장까지 와서 소란을 피웠다니 정말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살고 있다고 믿었던 그때, 현수는 한순간에 무너진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살아보려고 복직을 원하지만 경찰서 내부에서는 그녀를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당시 현수에 의해 경찰서가 제법 시끄러웠던 일로 인해 징계위에 회부될 예정이었지만, 그녀의 상황을 안타깝게 본 상사가 하나의 사건을 잘 마무리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강력계로 복귀할 수 있게 힘을 써주겠다고 제안한다.

   현수가 맡게 된 사건은 경찰과 검찰이 보호하고 있던 한 증인의 자살 사건이다. 외딴섬에서 보호되고 있었던 한 고등학생 소녀가 태풍에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고, 시신을 찾지는 못했지만 소녀의 자살 정황이 확실했다. 검찰 경찰 상부에서는 누구도 그 일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으니 조용히 사건을 정리하고 소녀의 짐까지 챙겨 와 유족에게 넘기고 사망 관련 보고서만 작성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부유하고 편안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 정세진. 어느 날 아버지의 밀수 사건과 오빠의 범죄로 한순간에 인생이 바뀌어버린다.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고 자신 또한 검찰과 경찰의 주요 증인이 되어 보호 차원에서 외딴섬으로 홀로 보내진다. 

   사건 경위를 살피고 조사를 하며 CCTV를 보면서, 분노에 찬 그 소녀 눈빛에서 죽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현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왠지 자살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사건을 더 파헤치는 현수.

   결국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사건을 마무리해야만 할 것 같은 그 순간에 소녀가 숨겨둔 앨범과 쪽지 하나를 발견하며 예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각기 다른 인생의 아픔을 겪은 세 여자의 고뇌와 절망의 평행선 그리고 그들이 빚어내는 하모니는 애잔하고 슬프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들이 절망 속에서 죽으려고 했던 것, 그것은 바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발버둥이었다. 

   삶의 큰 사건은 부지불식간에 생긴다. 그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시간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또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다. 생각보다 인생은 길다. 

   서울로 돌아가라는 순천댁의 말에 세진은 갈 곳도 없고, 이제는 아무도 안 남았다고 울부짖는다. 그러자 순천댁은 ‘네가 남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띄엄띄엄 어렵사리 말을 잇는다.

   “인생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길어. 나가서 우리 몫까지 살아”

   또 말한다. 아무도 안 구해줘. 네가 너를 구해야 한다고.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타인에 의해서 완벽하게 인생이 무너진 사람들. 나름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아버지와 오빠에 의해서, 남편에 의해서, 동생에 의해서 남겨진 아픈 조카딸을 키우는 세진과 현수와 순천댁.

   “왜 이렇게 됐을까?

   몰랐던 게 변명이 될까? 난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몰라서 벌 받나 보다. "

   세진과 현수가 데자뷔처럼 하는 말이다. 


   방안에까지 있는 CCTV. 보호인가 감시인가? 소녀 혼자 외딴섬에서 홀로 느꼈을 외로움과 상실감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현수. 상처를 안고 그것을 숨기고 혼자만 가지고 있는 마음 여린 세진,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밝게 웃는데 혼자 있을 때는 서늘한 표정을 보면서 현수는 속상해한다.

   현수는 소녀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면서 그저 현실을 피하고 숨으려고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타인에 의해 무너질 위기에 놓인 자신의 인생을 다잡을 수 있는 의지를 되찾게 된다.

   벼랑 끝에서 자신과 마주한다. 내 안의 나를 만난다. 

   “내가 죽은 걸 내가 보고 있는데 꿈속에서 나는 계속 그 생각만 해. 누가 좀 치워주지.”

   삶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듯하면서도 어쩌면 혼자다. 아무도 넘어진 나를 세워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진에게 현수와 순천댁이 그러하듯 ‘무언의 손을 내미는 자’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삶도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에게 힘을 받아서 나도 내일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삶의 절망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게 된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무언의 손을 내미는 목격자.

   남과 다른 시선으로 이 사건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절망 끝에서 만난 삶의 위로와 연대를 느낀다.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내가 죽던 날.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사건의 종결이 아닌 시작. 다 끝난 사건이지만 누군가 그것을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현수에게는 이 사건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좀 더 주체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성장의 계기가 된다.

   첫 장면부터 피폐 초췌한 현수. 또 문득문득 보이는 연약함과 슬픈 인상의 현수가 당당하게 남편에게 찾아가서 말한다. 이혼 문제에 도망치려고만 했지만 끝까지 해볼 거라고. 

   죽음의 문턱 앞에서 더욱 당당해진 세 여자. 그녀들의 행보에 잔잔한 응원을 보낸다. 힘든 상황이어도 그것 또한 자신의 인생임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 #내가죽던날 #죽음 #절망 #희망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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