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설민
코로나 19가 다소 소강상태였던 2022년 9월, 멈추었던 시장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던 즈음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지만, 극장에 갈 수 있었으니까. 그 무렵, 서울에서의 1박 2일 일정이 있어서 행사에 참석하고 동대문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모텔에 가는 것보다 낫겠다는 판단이었는데, 돈을 더 들여서 비즈니스호텔로 갈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방에 이 층침대까지. 무슨 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물 자체가 너무 무서워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충무로에 일이 있어서 갔는데, 내 뜻과는 상관없이 미팅이 취소되었다. 비록 담당자와 식사하는 시간을 간단하게 가지긴 했지만, 지방에서 온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 서운했다. 버스표를 바꿔 바로 내려와도 되었지만, 왠지 그러기 싫어 그 근처에 있는 ‘대한극장’으로 갔다. 어느 영화든 차 시간대와 맞는 것을 보리라 마음먹고.
그 영화가 바로 [인생은 아름다워]다. 제목과 포스터가 맘에 들었다. 한창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던 상황이라 그랬나 보았다. 2022년 가을, 내 인생도 아름답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었다. 마침 시간도 딱 알맞아서 현장에서 표를 구해서 들어갔다. 일찍 자리에 앉아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충무로에 왔으니 영화는 봐야지, 하는 마음이 컸다. [라라랜드]를 본 이후에 처음 보는 영화였다. 벌써 수년이 지났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물론 평일 낮이기도 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암전 되니 순간 덜컥 무서웠다. 넓은 극장 안에 나 홀로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잠시 쉬어가도 되는 상영관이 돌아가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미 영화는 시작되었다.
서울에서의 1박도 아주 기억할 만한 일이었는데, 그 넓은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까지 보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흔치 않은 특별한 기회였다.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준 1박 2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큼, 마치 영화관을 대관한 듯 편하게 영화를 보기로 했다.
뮤지컬 영화라고 하더니 염정아, 류승룡 두 사람이 인생 스토리에 맞는 대중가요를 불렀다. 이문세, 이승철 등의 대표곡 등을 불렀다. 마치 아바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든 ‘맘마미아’처럼. 그 상황에 맞는 노래와 춤으로 볼거리를 주었다. 또 내 또래의 부부가 아이들 키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라서 무척 공감도 되었다. 마음 놓고 혼자 울다가 웃다가 했다.
무뚝뚝한 남편 진봉과 무심한 아들, 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세연이 어느 날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 서글퍼진 세연은 마지막 생일선물로 문득 떠오른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막무가내로 우기는 아내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여행길에 따라나선 진봉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이름 석 자만 가지고 무작정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시대 때도 없이 티격태격 다투던 두 사람은 가는 곳곳마다 자신들의 찬란했던 지난날 소중한 기억을 하나둘 떠올린다.
과연 세연의 첫사랑은 어디에 있으며 그들의 여행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결론은 만나지 못하고, 첫사랑의 처참한 진실을 알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시켜 주는 과정에서 씁쓸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웃기기까지 했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세연이 왜 죽기 전에 첫사랑을 만나고 싶었을까? 그때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라 여긴 것일까? 하지만 세연도 알 것이다. 무뚝뚝했지만 무모한 소원을 이루어주려고 여행길에 나서 준 남편의 사랑을. 결혼 생활 동안 함께 하지 못하고 잊었던 소중한 감정을 다시금 서로 깨달았을 것이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지금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감정은 아리다. 지나고 나서야, 죽고 나서야 깨닫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혼자 남겨질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 둔 세연의 살뜰한 배려에도 남은 가족들은 허둥지둥 댄다. 그녀의 빈자리에 허망해하고 슬퍼한다.
지금의 내 자리, 나의 처지와 빗대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던 영화여서인지 공감지수가 거의 만점에 가깝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데면데면해진 식구들이 엄마의 죽음 앞에서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게 극 중 세연이 아니라 나라면 어떠할까?
나는 죽더라도 삶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져본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을 노래한다는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상황에 맞는 명작 가요들이 많이 나온다. 함께 즐기며 노래를 부르다가도 눈물이 쏙 나오는 영화였다고 기억된다.
2022년 그때도 마찬가지였듯 2024년 지금의 가을, 언제나 나의 인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