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으로 주어진 숫자의 운명

에이트 쇼

by 설민

랜덤으로 주어진 숫자의 운명

에이트 쇼

설민


지금, 부채와 빚 독촉에 시달리고, 삶이 벼랑 끝에 몰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은 기분이 드는 상황에 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 있다며 참여하려는가 의사를 물어 온다면 당신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은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일상의 감사함과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 그 기분을 잠재우기 위해 행복한 상상도 해보지만, 반대로 힘든 상황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열어나가기도 한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부정적으로 흐른다. 정신을 바로잡지 않으면 단 1분도 안 되어 수렁의 문 앞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 앞에서 손을 내미는 유혹은 달콤한 쿠키처럼 현실의 고통과 상황을 야금야금 먹어 치운다. 실낱같은 기대와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바삭거리는 소리에 넋을 잃고 먹다 보면 어느새 게임을 시작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에이트 쇼]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쇼에 초대된 사람들은 랜덤으로 숫자를 고른다. 철저한 규칙이 존재하는 쇼에서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 가는가? 생각하게 된다. 친절하게 게임의 규칙을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상황에 적응해 가면 터득해 가는 사람들. 한정된 공간에서 어떤 쇼가 펼쳐질까?

게임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원하는 숫자를 고른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자신의 상황과 선택에 따라 원하는 숫자를 정하면 된다. 입실이 완료되어 층별로 있는 방에 들어가자 아무것도 없다. 인터폰과 배송을 하는 기구뿐이다. 입체적인 옷이 아니라 주머니와 넥타이가 그려진 옷. 건물 내에 있는 것들도 평면적인 그림뿐이다. 똑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영문도 모른 채 있다가 깨닫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돈이 된다는 것을,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들은 그 돈으로 사야 한다는 것을. 생필품뿐만 아니라, 용무를 보는 모든 것을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먹고, 자고, 싸는 모든 것들을 시간에서 버는 돈으로 사서 생활해야 한다.

쇼의 시스템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도시락과 물은 꼭대기 층인 8층으로만 전달되며 배송구는 밑으로만 갈 수 있다. 분당 버는 돈도 층마다 다르다. 1층은 1만 원, 2층은 2만 원, 3층은 3만 원, 4층은 5만 원, 5층은 8만 원, 6층은 13만 원, 7층은 21만 원, 8층은 34만 원이 분마다 축적된다. 이 수열은 황금비라고 불리는 공식인데 1층과 2층을 더한 돈이 3층, 2층과 3층을 더한 돈이 4층, 3층과 4층을 더한 돈이 5층 이런 식이다. 이 공식은 이렇게 끊임없이 올라가다 보면 연속하는 두 숫자의 비율이 1:1.6으로 수렴한다고 한다. 이 1.6에 인간은 안정감을 느껴서 황금비라고 부른다. 신용카드의 가로세로 비율이 1:1.6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카드를 쓰면 불안한데 안정감이 느껴지는 비율이라니.

동일한 장소에서 제한적인 볼거리로 여덟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참가자들인 위층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그것의 당연시한다. 그들의 지배로 반란을 일으키려는 아래층 사람들. 돈을 더 벌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격투를 하며 노력하는 쇼. 서로 치고받는 고통으로는 오래 버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돈을 벌기 위한 다른 방법을 알아낸다. 바로 재미다.

남보다 더 잘 살려는 인간의 욕망과 계급 차이 안에서 자본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주는 쇼!

죽기로 결심한 8명의 막장 인생들이 정체 모를 주최자들의 힘에 이끌려 한 군데 모인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에 따라 쇼가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어떤 층을 택했느냐에 따라 다른 시급을 받는다. 쇼 안에서의 물가가 바깥세상의 1000배. 버는 액수가 많다 해도 결국 바깥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

출발선상이 다른 참가자들은 공존과 화합을 추구하지만, 점차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그에 따는 서열이 생긴다. 같은 공간에서 삶의 양식이 달라지니 처음에는 평지에 나란히 앉아있던 참가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높낮이가 다른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8층을 고른 사람은 풍족한 돈으로 자신의 공간을 사치스럽게 채우고, 1층을 고른 사람은 가난과 다리를 저는 신체적 열세 때문에 위층에서 쓰레기와 배변 봉투를 받는 것으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한다.

배정된 층에 따라 권력과 서열이 정해지고 시간의 가치가 돈으로 평가되는 구조는 처절한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주최자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극단적인 고통을 가하며 온갖 쇼를 펼친다.

위층 사람들의 독단에 반란을 일으켜 쇼를 끝내려 하지만, 돈을 더 벌고 싶은 욕망에 1층은 위험한 줄타기 곡예를 하다 죽게 되어 쇼가 종료된다.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다룬 드라마. 8층으로 된 수직적 공간에서 참가자들 간의 계층 이동 욕망과 경쟁을 보여 준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생존 본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드러내는 모습이 안타깝다. 돈을 벌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고문하고 잠을 재우지고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평범한 사람도 극한에 처하면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같은 시간, 공간에서 쇼를 시작했는데,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돈을 버는 규모나 속도도 다르고 누리고 사는 생활이 다르다면 억울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더 벌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경제적 위기나 빚에 시달리던 참가자들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 협력과 배신, 극단적인 선택을 반복하며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참가자들은 상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거나 배신하며,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에이트쇼]를 보면서 자꾸만 현실을 빚대어 생각하게 된다.

잘 사는 것은 ‘돈’만 많이 있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렵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내 삶의 가치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그릇이 제대로 되어야만 돈이 담겼을 때, 빛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지만, 또 한 해의 시작이 열렸다. 과거의 환경이나 능력을 탓하기 전에 ‘행복해질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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