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폭싹 속았수다
설민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운동기구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서너 명이나 되었을까? 어느 중년의 여자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통화를 시작했다. 운동하는 공간에 배경처럼 노래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 여자의 목소리가 음악보다 더 도드라졌다.
“우리 남편은 양관식이고, 언니 남편은 학씨잖아.”
‘양관식’과 ‘학씨’가 무슨 대명사인 것처럼 이야기는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마침, 그 드라마를 본 뒤라서 더 그랬다.
한 가족의 사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통 총량의 법칙”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는 저마다 정해진 기쁨, 슬픔, 걱정, 고생, 즐거움을 갖고 태어난다는 의미다. 인생은 희로애락이 얼기설기 얽혀있으나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보다는 슬프고 아팠던 나날들이 더 오래 기억나기 마련이라 고통을 강조한 이야기다. 결국, 죽어가는 인생은 어디로 보나 행복한 결말은 아니다. 다만,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어떻게 채워가느냐가 중요하다.
누가 더 힘들고 행복한지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애순과 그녀의 엄마, 할머니가 살아낸 시절을 생각하면 유독 더 고달팠으리라 짐작된다. 전쟁을 겪었고, 나라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너무나 가난했고,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먹고 살아가기 위한 투쟁을 해야 했던 시대였으니까. 지금은 가히 짐작할 수 없는 어려움일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 사람들의 고충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힘듦의 종류가 달라졌지만, 그 고통의 질량은 같으리라 생각된다.
고생 중에도 애순이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든든한 남편, 양관식이 있어서 고통을 나누어 가졌고, 그 또한 아내와 자식들에게서 기운을 받으며 힘든 바닷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을 터였다.
1950년대 제주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2020년대까지 이어지는 가족의 서사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제일 먼저 무슨 뜻인가를 유추해 보았다. 무엇엔가 속았다는 말인가 싶었는데 ‘매우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이라니. 살아가는 그 자체가 수고스러운 일이거늘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이 ‘수고했다’라는 표현보다 더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대 간의 감정과 인생의 반복성이라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니까.
부모를 일찍 여인 까닭에 작은집 눈칫밥에, 아빠가 다른 동생들 키우는 식모살이에, 육지로 가서 대학에 가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무엇하나 이룰 수 없었던 시대를 견뎌낸 오애순.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여자라서, 가난해서 하지 못한 억울함을 가진 여자다. 사회적 혼란과 가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 단단한 인물이다. 아니, 견고하게 진화해 나갔다는 게 더 정확하다. ‘양배추 사세요’라는 말조차도 하지 못하는 새침한 문학소녀가 시장 좌판에서 생선을 팔고 손질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갔으니…….
정말로 힘들고 끝이 안 보일 때 할머니를 찾아가 울기만 하는 애순이는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고달프냐?”라고 묻는 말에 울기만 한다. 그 장면이 지금도 뭉글뭉글하게 기억에 남는다.
애순이에게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아군이 두 명이나 있었다. 남편과 할머니. 사람이 살면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2~3명의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이 힘으로 애순이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시를 쓸 수 있었나 보다.
무쇠 같은 남자 양관식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오애순이라는 인물을 살뜰히 챙긴다. 자신의 여자를 지키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일 때마다 얼마나 강하고 따뜻한 사람인지 드러난다. 애순이가 하고 싶어 하는 ‘대학, 육지, 시인’ 이 셋 다는 못 해줘도 한 가지만은 꼭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양관식은 솔직하다 못해 우직하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애순의 조기를 챙겨주며 우산이 되어준다.
“애순이가 나랑 살러 우리 집에 왔지, 시집살이시키려고 데리고 온 게 아니다. 다시는 애순이 못 볼 줄 알라”며 금명과 애순을 데리고 집을 나가는 관식의 호기는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의 장녀 양금명. 금명에게만큼은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하려고 없는 형편에 집을 팔아 유학을 보내주지만, 그녀는 장녀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고 산다. 상대적으로 누나에게 부모의 관심을 모조리 뺏겼다고 생각하는 은명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라는 것을 알지만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동생 동명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어린 자식들의 고통을 알고서야 다시 힘을 내는 관심과 애순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이 드라마는 관식과 애순의 사랑 이야기 못지않게, 딸 금명이의 사랑과 결혼이야기도 흥미롭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성인이 되었지만,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첫사랑과의 혼인을 그만두고, 충섭과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는 마치 품의 자식을 떠나보내는 듯한 아련함이 남는다.
한국적 가족이라는 본질을 잘 드러내는 이 드라마는 가난해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시는 부모, 죄송한 줄은 알지만, 표현은 못 하는 자식 등 서로를 사랑하지만 엇갈릴 수밖에 없는 세대 간의 감정을 잘 포착해 낸다.
어린 애순이 혼자 남았을 때부터 제주에서 살아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되어준 세 명의 이모들의 궁합도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한 아이는 마을이 키워낸다는 말이 실감 난다. 묵묵히 애순과 관식을 지켜보고, 그 자식들을 응원해 주는 이웃들이 없었다면 힘듦 속에서 살아가는 재미가 덜했을 것이다.
가족에게는 무뚝뚝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부상길이라는 인물은 과거 세대의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있다. “학씨”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지만, 그 말에는 시대의 무게와 아버지라는 이름의 책임이 모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나약함을 거칠게 표현하면서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처럼 말이다. 그토록 호기롭던 부상길의 위상도 나이 들면서 사그라진다. 어찌 보면 그 속내는 아내의 사랑 한번 받아보고 싶고,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서로 우애 좋고 사랑하는 양관식과 애순을 질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겉모습만 나이 들어가지 속은 여전히 어린아이인 게 사람이 사는 모양새인듯하다.
가족에게는 잘 못 했지만, 꼭 필요한 말. 오늘은 이 말을 꼭 해보련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