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금을 찍어내는 집

종이의 집

by 설민

돈과 금을 찍어내는 집

종이의 집

설민


상상력이 아주 기발하다. 단순하게 돈이나 금품을 훔치는 것을 넘어선다. 평범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 과연 성공으로 끝날까? 조마조마하며 보게 되었다.

천재 교수와 범죄 전문가들이 벌이는 상상 초월의 인질극을 담은 [종이의 집]. 끝을 알 수 없는 반전과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틈이 없는 긴장감을 이어가면서 스페인의 조폐소와 중앙은행을 습격하는 내용을 다룬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교수라고 불리는 한 천재가 8명의 범죄자들을 모아 스페인 조폐국 금고를 터는 이야기로 시즌 1,2가 마무리되고, 시즌 3,4,5는 스페인 중앙은행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금을 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단순 강도가 아니다. 스페인 조폐국에 침투하여 지폐를 직접 인쇄해 탈출하고, 중앙은행에 있는 금을 녹여 밖으로 내보내는 것. 엄청난 기술과 계획아래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각 범죄자들은 본명 대신 도시 이름(도쿄, 베를린, 모스크바, 리오, 나이로비 등)을 코드네임으로 사용하며, 교수의 치밀한 계획 아래 움직인다. 아무리 천재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예상치 못한 인질과의 감정적 교류나 내부 갈등, 경찰과의 치열한 심리전 등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시즌이 거듭되며 이야기는 스페인 조폐국을 넘어, 국립은행과 사회 전체로 확장되며 더 큰 규모의 저항과 투쟁으로 이어진다.

KakaoTalk_20250912_084834623.jpg 출처 네이버

조폐국에 침투한 이들은 붉은색 점프 슈트와 달리 모양 가면을 쓰고 67명의 인질을 포획, 12일간 24억 유로를 찍어내려 한다. 본인들 뿐 아니라 인질들도 같은 옷을 입히고 가면을 쓰게 함으로써 경찰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인질 중에서도 협조적인 사람도 있고,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또 같은 목표로 의기투합한 강도들이라도 이해타산과 감정 대립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경찰과의 협상, 교수의 추리 싸움이 교차하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지만, 그들은 목표치를 달성하고 탈출에 성공한다

첫 탈출 이후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리오가 체포되자 교수와 멤버들은 또 한 번 작전을 감행한다. 이번 목표는 중남미 독재자의 비자금을 보관한 은행. 결국 교수팀과 전 세계 경찰, 군대의 대치가 극한으로 치닫으며 베를린의 희생, 리오와 도쿄의 이별, 교수의 정체 위기까지 다다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 불허의 묘수와 희생,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이 빛을 발한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특징인 이 드라마는 그 연출이 긴장감을 배로 증가시킨다. 조마조마한 순간 다른 전개로 눈길을 돌리게 해 놓고, 후에 그 실마리를 풀어주니 시청자들과의 밀당이 아주 대범하다. 또 사랑과 배신, 의리로 점철된 캐릭터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하게 된다.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인물 도쿄, 교수는 치밀하고 이성적인 두뇌로 조폐국 밖에서 범죄 전문가들을 조정한다. 대범하게 조폐국 인질 사건 담당 경감인 라켈 무리요에게도 개인적으로 접근하여 경찰들의 동태를 살핀다. 나이로비는 팀 안에서 힘차고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든다. 베를린은 교수의 형으로 냉혹함과 동시에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그 외에도 각각의 개성 넘치는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사랑과 배신을 하기도 하고 다시 의기 투합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나게 그려지고 있다. 강도들 사이에 흐르는 동지애 같은 감정 외에도 인질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도 아슬아슬하게 극의 재미를 끌어올린다.

이런 사랑과 배신은 경찰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시즌 3,4,5에서는 라켈 무리요 경감과 교수와의 사랑의 도피로 인해 라켈을 경찰을 배신한 샘이 되지만, 이는 부패한 경찰 내부를 고발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장치적 요소가 된다. 범죄자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묘하게 공감되고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사람들이었다. 끝내 종이의 집을 빠져나오지 못한 인물들의 죽음이 동료를 살리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종이의 집은 단순 범죄극을 넘어 저항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붉은 점프슈트와 달리 마스트는 억압에 맞서는 상징이고, 극 중 반복되는 벨라 챠오 음악은 혁명과 자유를 노래하는 상징적인 모티브다.

전략과 반전의 향연인 인간 군상 드라마.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가족, 연대, 배신, 사랑 등 보편적인 감정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부패 권력에 대한 저항과 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 담겨있다. 스페인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국민 강도들의 위상이 슬픈 현실이었지만, 부패한 권력 앞에서 그들을 비판하고 우롱하며 유유히 돈과 금을 싣고 나가는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통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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