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이 엄마가 주인이 엄마를 멀리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한이 엄마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주인이 엄마가 단톡에 말할 때 예의상 하던 대답은 이제 하지 않았다. 가끔 엄마들을 만나게 되어도 이한이는 데리고 가지 않았고, 주인이 엄마의 잘난 척에는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별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이한이 엄마는 아직 여왕벌과의 인연을 아예 끊어내지 못하고 미로에서 나오는 중이다. 윤이 엄마, 민서 엄마, 태욱이 엄마, 주아 엄마와의 좋은 관계를 함께 끊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미로에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한이는 미로에서 벗어났다. 주인이가 왕인 친구 관계에 이한이는 없다. 이한이는 주인이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주인이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들 땐 당당하게 말하고, 그 놀이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줄 안다. 지금 혼자가 되었다고 속상해하지 않는다. '지금 같이 놀이를 안 한다고, 친구가 아닌 게 아니야. 친구라고 항상 같이할 순 없지.'라고 형처럼 생각할 수도 있게 된 이한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모습이 아닌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평범한 8살, 하늘 초등학교 1학년 박이한이다.
- 최주인 -
우리 엄마는 엄청 대단하시다. 나를 낳아 주시고, 나를 키워 주시고, 나를 위해서 뭐든지 해주신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정말 힘들게 나를 키워주셨다.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줘야지!
우리 엄마는 내가 친구들과 놀 때 행복해 보인다. 친구들이 날 좋아해 주면 엄마는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친구들이 날 좋아하도록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친구들이 날 좋아하게 만들지? 아!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인기 많으니까 우리 엄마를 보고 배워야겠다!
친구들이 내 말을 잘 듣고 날 좋아하게 만드는 건 아주 쉽다. 나도 내 친구들이 좋다! 역시 우리 엄마는 최고야! 가끔 친구들이 나쁜 행동을 하지만, 그 친구들도 다 착해질 거다. 우리 엄마랑 내가 도와주고 있으니까. 나도 친구들을 위해 좋은 친구가 되어야지!
학교에는 이상한 친구들이 정말 많다. 난 정말 도와주려고 노력하는데 내 말을 안 듣고, 자기 멋대로 못되게 구는 아이들이 많아서 힘들다. 그래도 나를 좋아하고 내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 더 많으니, 그 애들도 정신 차리겠지? 너무 힘들게 하면 엄마한테 말해서 좀 혼내달라고 해야겠다.
선생님께서 교실 피구를 하자고 하신다. 난 피구가 싫다. 선생님은 왜 저러실까? 짜증이 났다. 동혁이가 피구를 한다고 신이 난 꼴이 너무 얄밉다. '지가 주인공인 줄 아나? 제까짓 게?' 동혁이가 던진 공에 내가 맞았다. '에잇! 이럴 줄 알았어!'
피구가 끝나고 청소 시간. 동혁이의 빗자루질에 내 손이 맞았다. 정말 동혁이가 때린 거다. 내가 일부러 맞은 게 아니다.
"아! 동혁아! 왜 때려!"
난 빠르게 손을 움켜쥐었다. 아이들이 몰려왔고, 내 손을 폈더니 엄청 빨갛게 할퀸 자국이 있었다. 동혁이는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며 나에게 화를 냈고, 나는 아파서 울었다. 정말 아팠다. 내 손으로 할퀸 게 아니고 정말 동혁이 빗자루가 내 손을 할퀸 자국이다. 친구들이 선생님께 동혁이의 나쁜 행동을 일러 주었고 동혁이는 선생님께 크게 혼났다. 나는 마음이 풀린 것 같기도 하고,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동혁이가 먼저 잘못했다. 난 잘못이 없다.
오늘 수학 덧셈 시험을 본다. 우리 엄마는 친구 엄마들을 만나서 자랑하는 걸 좋아하신다. 내가 수학을 잘한다고, 받아쓰기 시험을 잘 봤다고 자랑을 하신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잘하나? 엄마가 잘한다고 하시는 거 보면 잘하는 거겠지?
시험지를 받았는데 어쩌지? 모르는 문제가 잔뜩이다. 엄마가 실망하실 텐데 어쩌지? 오늘 친구들 만나서 자랑해야 하는데 어쩌지? 아! 내 짝꿍이 덧셈을 잘하지? 오늘만 짝꿍 답을 보고 해야겠다. 괜찮아. 난 원래 수학을 잘하니까 오늘만 친구 답을 보는 건 괜찮겠지. 엄마가 실망하는 것보단 낫지! 이렇게 오늘 시험은 백 점 받고 다음엔 내 실력으로 백 점 받으면 되는 거다! 휴! 다행이다. 엄마한테 혼날 뻔했네.
- 이한이 엄마와 이한이의 상황을 이해하시나요?
이한이 엄마는 미로는 나오는 중이고, 이한이는 미로를 벗어났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이한이 엄마는 아직 주인이 엄마를 의식하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를 알리려는 노력 또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이러한 끈조차 놓아야 자유로워지는 거죠. 이한이는 주인이가 본인을 싫어하는지, 본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관심 없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미로에서 벗어난 모습인 거죠. 물론 이한이가 벗어나기 쉬웠던 이유는, 다른 친구들처럼 주인이의 미로에 깊이 들어가진 않았거든요.
- 주인이의 마음을 어떻게 보셨나요? -
물론 어린 주인이는 저렇게 체계화해서 생각을 정리하진 못해요. 그냥 자연스럽게 습득되고 느끼는 거죠. 본인이 나쁜 행동을 하는 건지, 왜 이러는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상태인 거죠. 순진한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할까요? 주인이 엄마는 주인이를 위해 만들어 주는 주인이가 주인공인 세상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상은 주인이가 악역인 주인이가 가장 불행한 세상이 되는 겁니다.
피구 에피소드 읽으신 분들은 '에이, 무슨 어린애들이 저렇게까지 행동하겠어.'이러시는 분들도 계시겠어요. 상세한 종목, 다툼 과정은 다르지만 제가 직접 교실에서 아이들의 다툼을 해결하며 겪은 실화입니다. 친구가 주목받는 게 미워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해버리고 후회한 아이가 있었어요. 이렇게 본인이 주인공인 세상에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매일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거죠. 어떻게 항상 주인공일 수 있겠어요. 여왕벌의 영역이 어디까지 가능하겠어요.
동혁이의 입장은 또 얼마나 억울한가요. 아무것도 모르고 당할 수밖에 없죠.
방법은 본인의 입장을 억울한 상황에서도 설명하고, 사과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야 해요. 억울하죠. 그래도 벌어진 일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쿨함을 장착하도록 합시다.
"내 빗자루에 맞았어? 아! 야! 미안하다! 몰랐다! 같이 보건실 가줄까?"
여왕벌 같은 성향의 아이와 길게 다툼에 가지 않도록 하는 쿨함을 장착하는 것이 먹잇감이 되지 않는 좋은 방법이거든요.
수학시험 에피소드는 정말 흔한 일입니다. 여왕벌 엄마들의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의 눈치를 많이 봐요. 여왕벌 엄마들은 아이들을 매우 통제하는 특징을 갖고 있거든요. 아이들은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매우 노력합니다. 그래서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하죠. 엄마 앞에선 숙제하는 척하고, 엄마가 안 볼 때는 답지를 모두 보고 쓰기도 해요. 이 아이에게 중요한 건 엄마가 알게 되는 결과거든요.
여왕벌의 아이. 과연 행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