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한이는 2학년이 되었다. 이한이 엄마는 윤이 엄마, 주아 엄마와 개인적으로 가끔 연락하고 지낼 뿐, 요즘은 동네 엄마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교류를 하게 되면 주인이 엄마와 계속 만나게 되고, 주인이 엄마의 이간질과 친절한 험담에 굳건하게 버틸 자신이 없었다. 흔들리지 않고 주인이 엄마와의 거리 두기에 성공해서 평온한 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2학년 때 이한이와 주인이가 같은 반이 되었다. 이한이 엄마는 이것도 이한이가 헤쳐나갈 몫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주인이 엄마의 미로를 빠져나온 것처럼, 이한이에게서 고민하고 성장할 기회까지 빼앗으면 안 되겠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 주인이 엄마 -
요즘 너무 바쁘다. 솔직히 기분 나빠서 할 일이 더 많다.
내가 유치원 때부터 그렇게 챙겨줬던 사람들이 조금 변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더니 애들도 버릇이 나빠지고, 엄마들도 이제 고마운 줄도 모르고, 웃기지도 않는다. 어차피 주인이가 학년 올라가면서 수준 맞는 더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줘야 해서, 내가 먼저 이 모임에 소홀하긴 했다. 다른 모임 챙기는 거 마무리되면 다시 좀 챙겨줘야지.
주인이가 2학년이 올라와서 학교일도 더 바빠졌다. 1학년 때는 학운위원을 했지만, 아이들 교육과 학부모들 활동에 더 참여를 할 수 있는 학부모회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학부모회 회장을 맡게 되었다. 단일 후보로 무투표 당선. 일은 착착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가 가고 싶을 때 언제든 도서관 봉사를 하며, 주인이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편하고 정말 좋다. 내가 이렇게 학교 자주 오니까 담임 선생님도 우리 주인이를 좀 더 챙기겠지. 아, 오늘도 도서관 봉사 끝나고 엄마들과 커피 모임이 있다. 서준이라는 애가 괜찮던데, 그 엄마를 좀 봐야겠다.
"안녕하세요. 주인이 엄마예요. 하하. 다른 엄마들은 워낙 다 친해서 알아요. 서준이 엄마시죠? 서준이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주인이가 서준이랑 친하더라고요. 하하하."
"안녕하세요. 아, 네. 저도 주인이 얘기 들었어요. 얼마 전에 서준이가 집에 이한이라는 친구 데리고 왔었거든요. 주인이랑 같은 유치원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한이 너무 잘 알죠! 이한이 엄마도 저랑 언니 동생하는 사이라. 이한이 엄마 제가 진짜 아끼는 동생이거든요. 저희 집에 매일 와서 놀고, 같이 밥 먹고 그랬어요. 하하하. 얼마 전에도 같이 봤는데! 그럼 서준이랑 언제 우리 집 오실래요?"
- 이한이 -
나와 주인이는 같은 반이다. 주인이와 나는 친한 친구다. 그런데 주인이가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가끔 헷갈린다. 속상한데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쉬는 시간이다! 우노 할 사람!"
주인이의 말에 친구들이 같이 보드게임을 하려고 모여들었다.
주인이와 서준이, 나 그리고 영현이가 함께 우노를 했다. 내가 마지막 장을 남기고 "우노!"를 외쳤다. 그때 주인이가 말했다.
"야! 박이한! 내려놓으면서 우노라고 해야지. 내려놓기 전에 우노라고 해서 안돼. 서준이도 한 장 남았잖아. 너가 반칙해서 서준이가 지잖아."
"이거 반칙 아니야. 우노라고 하면서 내려놓으면 되는 거야."
"너 때문에 서준이가 이기는 건데 지게 생겼잖아. 반칙하지 마."
"반칙 아니라고."
이렇게 난 반칙으로 서준이를 이기려는 나쁜 친구가 되었다. 주인이는 선생님께 이르기까지 했다. 난 진짜 반칙을 하지 않았는데 억울했다.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반칙을 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셨다. 속상했다. 억울했다. 너무 억울했다. 주인이는 서준이와 즐겁게 다시 우노를 했다. 난 다시 우노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엄마에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쭤봐야겠다. 난 아직 모르겠다. 주인이가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 주인이 엄마의 여왕벌 생활은 끝이 날까요?
주인이 엄마는 주인이에게 새로운 친구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전 유치원 모임에서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었고, 주인이의 친구 관계가 학교생활에서 더 확장이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선택한 방법이 첫 번째로 학부모 회장이죠.
모든 여왕벌이 이렇게 대외적인 활동을 하진 않지만, 초등학교 엄마 모임의 여왕벌 중 이런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학교 생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과시를 하고, 학교 관리자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여왕벌 성향의 학교 일을 하시는 부모님들은 이런저런 봉사 활동으로 학교 방문을 자주 하는 것에 대해 특권 의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사전 약속 없이 교실로 갑자기 찾아오기도 해요.
하지만 현직 교사로서 말씀드리자면, 학교 봉사는 아이들을 위해 같은 학부모로서는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는 전혀 영향이 없어요.
오히려 아이가 "엄마가 교장선생님이랑 밥 먹었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굳이 아이에게 저런 말씀을 하셨을까 오해가 생길 순 있겠죠.
하지만 주인이 엄마 같은 여왕벌에게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다른 엄마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자리이니 그걸로 충분하죠.
두 번째는 평판 좋은 새로운 내 편 만들기입니다.
주인이 엄마에게는 서준이 엄마가 새로운 내 편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다른 만만한 엄마들을 미로에 끌어들이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하는 존재죠. 이 엄마와 친해지면 다른 엄마들에게 내 이미지도 좋아지는 효과를 주는 존재. 그리고 주인이와 친해지면 주인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친구. 새로운 미로를 만들 때는 그런 정성을 들이는 존재가 항상 있어요.
서준이 엄마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데 이한이 엄마까지 이용하는 뻔뻔함은 여왕벌들의 능력이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인맥을 과시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여왕벌은 또다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갑니다.
본인이 스스로 나의 행동이 나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멈추겠죠.
거짓된 인간관계 속에서 언제나 남을 질투 하며, 불안해하는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해요. 그 불안이 그대로 제일 사랑하는 나의 자녀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나의 자녀가 남과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교하고, 질투하는 삶을 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제발 본인의 불행과 남의 불행을 정성 들여 만드는 행위를 그만두길 바랍니다.
- 주인이는 이한이에게 왜 그럴까요?
주인이는 이한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주인이 엄마가 이한이네를 싫어한다는 것을 주인이도 알고 있거든요. 항상 그래왔어요. 엄마가 안 좋아하는 친구들은 주인이도 싫어했죠. 그리고 이한이는 주인이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거든요.
주인이에게 이한이는 어려운 존재입니다. 마음대로 되는 존재가 아닌 거죠. 심지어 이한이 엄마도 우리 엄마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고, 이한이 엄마는 날 혼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한이가 서준이라는 친구를 좋아하는 게 느껴집니다. 서준이라는 친구가 주인이도 마음에 들어요. 주인이는 서준이라는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놀이에서 서준이가 이기도록 도와주고, 서준이와 같은 편을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은 동원합니다. 서준이가 체스를 한다고 할 때는 심판을 하겠다고 나서서, 서준이가 유리하도록 편파 판정을 해줍니다. 서준이가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할 때는 그림 점수를 주겠다며 서준이를 우승시켜 주고, 이한이만 꼴찌 접수를 줍니다. 이렇게 이한이와 서준이의 사이를 갈라놓고, 서준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서준이를 차지하기 위한 순수한 우정입니다. 주인이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서준이에게서 이한이를 떼어 놓을 겁니다.
주인이는 얼마나 피곤할까요? 지금 주인이를 도와주지 않으면 주인이는 이렇게 차지하고, 빼앗으며 엄마처럼 살아가야 하겠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본인의 마음을 거절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할 겁니다. 인관 관계를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주인이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넌 그 자체로 빛나는 아이라고. 그러니까 마음 놓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 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때로는 지고,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외면받아도 너는 그 자체로 주인공인 거라고.
- 이한이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요?
이러한 여왕벌의 괴롭힘이 오해가 아닌 확실한 상황이라면, 여왕벌의 심리를 아이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주셔도 됩니다. 아이에게 아름다운 세상만 보여줄 순 없어요. 주인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그래서 네가 힘든 이유를 아이에게 담백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엄마 생각엔 주인이가 모든 상황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 같아. 서준이라는 친구를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서 이한이를 속상하게 하나 보다. 그렇게 서준이의 마음을 쉽게 차지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엄마는 그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을 친구들도 결국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 이한이가 주인이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주인이의 잘못된 방법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주인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았으니, 앞으로 그런 속상한 상황이 되었을 때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
아이와 함께 상의해 보세요. 아이도 여러 이야기를 하겠죠. 그런 상황일 때 주인이와 이한이가 반칙으로 다투는 것처럼, 여왕벌이 만든 상황에 이끌려 가면 여왕벌이 원하는 대로 분위기가 흘러갑니다. 상황이 아닌 여왕벌의 의도를 대화에 넣도록 해보세요.
"너가 날 속상하게 해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거구나?"
"너가 날 따돌리면서, 서준이랑 더 친해지고 싶은 거구나?"
"너 지금 이러는 거 나 속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이렇게 여왕벌이 만든 상황이 아닌 여왕벌이 상황을 만드는 의도를 대화에 넣어, 내가 지금 속상하다는 감정을 표현하면 여왕벌도 점점 조심스러워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