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이 엄마는 주인이 엄마를 좋아했다. 첫인상은 안 좋았지만, 몇 번의 만남 이후 정이 많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꾸밈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주인이도 이한이와 잘 맞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가끔 동네 엄마들에 대한 안 좋은 푸념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동안 동네 사람들 챙기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이한이 엄마는 주인이 엄마를 만나는 게 너무 힘들다. 솔직히 이한이가 주인이와 가까이 지내는 것도 싫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런 피곤함에 지친 이한이 엄마는 주인이 엄마와 거리를 두기로 마음을 먹고, 만남을 최대한 피하며 지내고 있었다.
- 어느 날 -
날씨가 너무 좋은 주말이었다.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에 나와 놀고 있었다. 민서와 주아, 이한이, 주한이가 함께 미끄럼틀에서 '지탈 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는데 민서의 전화기가 울렸다.
"우리 엄마가 떡볶이 먹으러 올 사람 같이 와도 된대!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떡볶이 먹고 다시 나오자!"
"우와! 진짜? 나도 갈래!"
이한이도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렇게 넷이 민서네 집으로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그 사이 놀이터엔 주인이 엄마와 서윤이 엄마가 주인이와 서윤이, 윤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왔다.
"다들 놀이터에 있다더니. 어디 갔지? 안 보이네? 너넨 놀이터 가서 놀아. 엄마들 여기 있을 테니까. 싸우면 다 들어가는 거야!"
"하하. 역시 언니 카리스마! 아! 애들 다 저기 있네. 민서야! 이한아! 애들 저기 있어! 가 봐!"
"너희들 어디 갔다 왔어? 우리 지금 ‘선생님 놀이’할 거야. 선생님 하고 싶은 사람 없지? 내가 선생님 한다!" (주인)
"우리 집에서 떡볶이 먹고 왔지롱! 근데 난 ‘선생님 놀이’하기 싫은데. 너만 또 선생님 할 거잖아." (민서)
"나도 떡볶이 먹었지! 히히. 엄청 맛있었어!" (주한)
"그럼 너넨 빠져. 너네끼리만 떡볶이 먹고 오고. 배신자들. 윤아! 서윤아! 이리 와. 우리끼리 놀자."
"최주인!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너넨 그때 없어서 같이 못 간 거잖아."
"이한이 너한테 말한 거 아닌데 왜 끼어들어? 그리고 너네끼리 떡볶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거든? 지금 민서가 기분 나쁘게 놀리면서 얘기하고, 주한이도 약 올리고! 우리가 속상해서 그런 거거든? 쟤는 원래 말을 저렇게 맨날 기분 나쁘게 해. 그렇지? 서윤아? 그래도 난 맨날 참아주고 놀아주고 그랬거든?"
"너네 또 싸워! 정말! 오늘은 같이 놀지 마! 최주인! 윤이! 서윤이! 너희는 이리 와서 도너츠나 먹어!"
"네."
이한이, 주한이, 민서, 주아는 주인이 엄마의 눈치를 보며 다른 놀이터로 갔다.
"어휴. 정말. 쟤들 또 저런다. 민서 쟤는 저렇게 주인이를 건드려. 주인이도 아무리 마음이 착해도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저 성격을 다 받아주냐고. 주인이가 또 서윤이 속상해하니까 더 화가 난거지. 주한이 쟤도 민서랑 놀다 보니 주인이 계속 건드리잖아. 그리고 보면 주한이도 워낙 성격이 세. 원래도 주인이가 좀 힘들어했거든. 주한이랑 놀아주는 거. 이한이 엄마가 좀 성격이 본인 자식들한텐 허용적이잖아. 난 옆에서 진짜 답답하지. 하, 진짜. 오늘은 못 봐주겠다. 서로 좀 떨어뜨려 놓자."
서윤이 엄마는 주인이 엄마의 말을 들으며 아이들에게 도너츠를 나눠주고 있었다. 물론 아이들도 주인이 엄마의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그날 저녁, 주인이 엄마는 단톡에 글을 올렸다. (주아네도 얼마 전 단톡에 초대되었다.)
"오늘 놀이터에서 애들 또 싸움 났어~ 요즘 자주 이런다~ 그래서 내가 이럴 거면 다 놀지 말라고~ 오늘은 같이 못 놀게 했어~ 오해하지 말라고~ 떡볶이 먹고 온 애들이 배고픈 애들 약 올리고 그랬나 봐. 윤이랑 서윤이가 많이 속상해 보여서 주인이가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다가 싸웠다고 하더라... 그래서 애들 그냥 서로 좀 따로 있으라고 했어~" (주인 엄마)
"아~ 나도 얘기 들었어~ 그런 이유도 있었겠구나~ 민서랑 이한이 얘기 들으니 주인이가 선생님 놀이를 하자고 했는데 주인이만 항상 선생님을 하니까 속상했대. 그래서 선생님 놀이를 하기 싫다고 했더니, 주인이가 화를 냈다고 하더라~ 서로 기분이 나쁜 이유가 다른 거 같아~ 아이들 싸움이니 그렇게 큰 이유도 아닌 거 같고~^^ 엄마들이 오해할 일도 없는 거 같아~ 다음에 만나면 또다시 잘 놀겠지~^^" (이한 엄마)
엄마들의 이런저런 카톡이 더 오가고 이야기는 잘 마무리가 되었다.
몇 분 뒤 이한이 엄마의 핸드폰이 울린다. 주인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야! 오해하지 마! 난 이한이나 주한이가 뭘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오해한 거 아니지? 아니, 민서가 요즘 말을 진짜 세게 해. 아까 자기가 못 들어서 그래. 그걸 그대로 주한이가 따라 하더라고. 약 올리고 싸움을 걸더라. 그래서 윤이랑 서윤이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데, 주인이가 그거 말리다가 오히려 주인이랑 싸움이 붙은 거라니까? 주한이야 원래 그런 애 아닌 거 난 알지!"
“아, 응. 괜찮아. 민서도 그럴 애가 아니지. 응. 괜찮아. 애들 일인데.”
“~~~~~~~~~~~~~~~~~ ~~~~~~~~~~~~~~~~~~~”
"근데 미안, 나 지금 애들이랑 뭐 좀 하고 있어서 다음에 얘기하자. 응. 끊어."
주인이 엄마는 요즘 이한이 엄마가 거슬린다. 연락을 피하는 거 같기도 하고 무시하는 거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설마 나를 감히? 제까짓 게 상담사랍시고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이것 봐라? 가만두면 안 되겠네. 지금?'
이한이는 성격도 워낙 얌전하고 친구들과 문제는 없는데 주인이랑은 좀 안 맞는 거 같기도 하다. 주인이가 이한이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 친하게 지내도록 해주고 싶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같이 놀 때 보니 이한이는 주인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 같아 보이진 않았다.
- 며칠 뒤 -
주인이 엄마는 주아네가 떠올랐다.
"언니! 요즘 바쁘지? 주아 오늘 뭐 해? 주인이가 주아랑 놀고 싶다고 아주 노래를 불러. 오늘 주아 피아노 끝나고 우리 집에 오라고 해서 같이 놀면 안 돼? 어휴, 난 괜찮아. 주인이도 심심한데 너무 좋지! 그럼, 주아 내가 픽업해서 데리고 올게!"
이렇게 주인이는 또 주아와 단짝 친구가 되기 위해 가장 친절한 친구의 모습으로 주아와 함께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세상 둘도 없이 친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언니! 주아 성격 너무 좋다! 주인이도 주아 너무 좋아해! 난 이한이네 얘기 듣고 주아가 좀 예민한가 했거든. 주인이한테 더 세심하게 챙겨줘야 하는 친구라고 말해줘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네! 이한 엄마 걔가 상담사라서 다른 애들을 보면서 좀 자기도 모르게 평가하게 되나 봐. 직업병인가? 하하하~ 주아가 힘들게 할 때 걔한테 물어봐. 상담 잘해줘. 내가 진짜 좋아하고 뭔가 의지하게 되는 동생이거든. 진짜! 하하하~ 근데 이한이랑 놀 때 주한이가 꼭 있잖아. 주아는 워낙 착해서 속상해도 말도 못 하고 주한이 잘 챙겨주지?"
- 이한이 엄마는 주인이 엄마와 헤어질 결심을 했습니다.
여왕벌과의 관계를 끊어 낼 각오가 먼저입니다. 여왕벌이 날 미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후 "네가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거짓이구나. 너의 아이를 여왕벌로 만들기 위해 주변의 소중한 아이들을 감히 이용하고 있구나."라고 신사적으로 계속해서 여왕벌의 영역 안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세요. 이한이 엄마가 카톡에서 말한 것이 사소해 보이지만 그 시작입니다.
-주인이는 주변 친구들의 감정을 잘 이용합니다.
주인이는 누군가와 대립하게 되었을 때 절대 혼자 싸우지 않습니다. 여왕벌 아이들은 절대 혼자 싸우지 않아요. 혼자 싸우면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서의 ‘너만 선생님 하냐.’는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그 말에 기분이 나빴다고 하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주인이는 민서와 주한이의 말투를 꼬투리 잡고 판을 흔듭니다. 그리고 윤이와 서윤이를 끌어들이죠. 우리라는 표현을 쓰며 속상했다고 피해자 행세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여왕벌 아이의 친구로 지낸다는 건 나도 모르게 속상해야 하고, 나도 모르게 성격이 센 나쁜 아이가 돼야 하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부하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내 아이에게 불필요한 위로를 자주 하는 친구, 내 아이를 위해서 대신 싸웠다는 친구, 내 아이를 챙겨 준다고 표현하는 친구, 내 아이가 다른 친구들이랑 놀 때 계속해서 미안한 감정이 들게 하는 친구. 어떤가요?
아이에게 말해주세요.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너의 마음을 정해주려고 한다면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아.>라고 당당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인이 엄마가 아이들이 듣는 곳에서 다른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어떤가요?
여왕벌들은 본인의 생각이 정답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하는 기술이 탁월합니다. 여왕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우리 엄마가 가만히 듣고만 있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여왕벌의 말을 그대로 믿게 되고 여왕벌이 대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왕벌의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기죠. 여왕벌이 다른 아이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걱정하는 척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지 마세요. 특히 내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그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그럴듯해 보여도 어떠한 일관성도, 명분도 없습니다. 여왕벌의 기준은 '자신의 시녀 역할을 잘하느냐. 혹은,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그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