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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주쌤 Nov 30. 2024

네가 왕인 세상을 거부한다.

주인이 엄마는 하늘 유치원이 처음 개원했을 때 입소한 첫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주인이 엄마는 유치원 운영위원장으로서 유치원의 모든 행사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변 엄마들과 아이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5살 때, 하늘 유치원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다. 이 아이는 화를 잘 참지 못하고 친구들을 때리는 일이 많아서 엄마들 사이 큰 화제의 중심이었다. 이렇게 다들 걱정하고,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 주인이 엄마가 나섰다.


"원장님! 어제 힘찬이가 주인이 밀친 거 아시죠? 저 더 이상은 못 참아요. 힘찬이 퇴소 안 시키면 저 무슨 짓이라도 할 겁니다."


"네... 주인이 어머니. 그런데 저희가 일방적으로 아이를 퇴소시킬 권한은 없어서요... 힘찬이 어머니께 상황 설명 드리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죄송합니다..."


"아뇨! 힘찬이 엄마 당장! 지금! 유치원으로 오라고 하세요!"


이렇게 유치원을 발칵 뒤집고, 힘찬이 엄마와 직접 만난 주인이 엄마는 결국 힘찬이의 퇴소신청서를 받아냈다. 이 소문은 하늘 유치원 엄마들 사이에 금세 퍼졌고 같은 반이었던 엄마들은 속으로 주인이 엄마가 너무 고마웠다.


"내가 진짜 퇴소신청서 받아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지금 감히 어디서 우리 애들을 건드려? 그런 것들은 내가 가만 안 놔두지! 저번에 힘찬이가 예준이 때렸다고 했을 때부터 내가 벼르고 있었어!"


"언니, 진짜! 언니밖에 없어!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하늘 유치원엔 주인이 엄마 덕분에 평화가 찾아왔다. 주인이 엄마는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멋진 엄마였다.


~~~~따르릉~~~~


"선생님! 저 주인이 엄만데요. 죄송한데 제가 오늘 바빠서 주인이 하원 픽업을 못 갈 것 같아요. 저희 아파트 804동 앞까지만 주인이 좀 데려다주세요."

  



주인이가 7살 때였다. 주인이와 태욱이는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제일 친한 사이였다. 항상 초반엔 그랬듯이 주인이는 태욱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친구였다. 주인이 엄마도 태욱이 엄마에게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동네 동생이었다. 그런데 같이 노는 시간이 많아지자 당연히 둘이 싸우는 일도 늘어났다.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도 태욱이와 주인이는 서로 의견이 안 맞아 싸우는 일이 많았다. 태욱이는 운동을 잘하고 달리기가 빨라 몸을 쓰는 놀이를 좋아했는데, 주인이는 그런 모습의 태욱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니! 요즘 태욱이 너무 과격해. 좀 진정시키는 게 좋지 않겠어? 저번에도 몸으로 놀다가 주인이 다치게 했잖아."


태욱이가 다치게 한 게 아니었다. 주인이가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져서 다친 거뿐이다. 물론 태욱이가 달리기를 하자고 제안을 한 게 잘못이라면 주인이 엄마의 말이 맞겠다.


주인이도 엄마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태욱이를 공격할 틈이 아주 잘 보였다. 태욱이가 좀 빠르게 뛰거나 놀이터에서 점프를 하면 크게 소리쳤다.


"태욱이 또 위험하게 논다! 그러면 또 친구들 다치게 하잖아! 너 때문에 나 또 다칠 뻔했잖아! 나 너 무서워서 못 놀겠어! 예준아! 윤아! 지민아! 무섭지? 우리 저리로 잠깐 가 있자! 태욱아 진정하면 우리한테 와~ 알았지?"


"어머! 지금 들었어? 주인이 태욱이 진정시키려고 시간 주는 거 봐. 그러게 태욱이 요즘 너무 과격해. 좀 진정할 필요가 있어."


주인이 엄마가 거드는 이야기는 태욱이에게도,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도 잘 들렸다.


이렇게 태욱이는 점차 아이들이 노는 자리에서 뜸해졌다. 주인이가 거리를 두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주인이가 태욱이를 부른다. 주인이 엄마도 태욱이 엄마에게 살갑게 다가간다.


"언니! 잘 지냈어? 요즘 통 못 봤네! 태욱아! 안녕! 이모가 보고 싶었어! "


"태욱아! 우리 저기서 모래놀이 같이 하자!"


태욱이는 속으로 기뻤다. '주인이가 다시 나랑 친하게 친구를 해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긴, 주인이는 나를 싫어한 적이 없다. 내가 너무 거칠게 노는 게 무서워서 나에게 조금 시간을 준 고마운 친구다.'


태욱이는 이 이후에도 이러한 일을 여러 번 더 겪어야 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태욱이는 주인이 엄마의 걱정 어린 조언에 항상 귀를 기울이며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윤이는 성격이 소심하고, 겁이 많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학습에 자신감이 있는 아이다. 평소에 눈물이 많아서, 윤이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하게 보일까 봐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윤아! 또 울어? 이건 울 일이 아니야! 운다고 해결되지 않아! 어른들한테 와서 운다고 해결해주지 않아!"


윤이는 주인이 엄마의 말을 듣고 눈물을 닦으며 놀이터 구석으로 돌아간다.


"자기야! 운다고 다 받아주면 안 돼. 친구들 사이에서도 놀림 당해! 저거 고쳐야 돼. 받아주면 계속 울면서 온다. 혼자 있게 냅둬! 가지 마!"


"나도 걱정이지. 왜 저리 조금 속상해도 우는지..."


윤이 엄마는 혼자 울고 있는 윤이를 바라볼 뿐이다.


이런 대화도 아이들에게 다 들린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기들 이야기할 때, 듣는 능력이 몇 배는 향상되는 거 같다.)




이 때도 주인이가 7살 때 일이다. 지민이와 예준이, 서윤이는 요즘 셋이 티니핑 놀이를 하는 거에 푹 빠져 있다.


"티니핑 놀이 말고 다른 거 하자! 티니핑 놀이 재미없어."


"난 티니핑 놀이하고 싶은데..."(예준)


"티니핑은 너네만 좋아하는 거고! 다 같이 할 수 있는 놀이를 해야지!"


주인이는 티니핑에 관심이 없었다.


"아! 그럼! 선생님 놀이 하자! 내가 선생님하고 너네가 학생하고, 쉬는 시간에 티니핑 놀이할 시간을 줄게. 그때 너네가 하고 싶은 놀이하면 되지!"  


"하하하! 쟤 좀 봐! 저런 머리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진짜! 아이디어 좋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네!"


주인이 엄마의 말에 더 이상 친구들은 주인이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주인이의 선생님 놀이는 그 이후로 한참 이어졌다.


  



아이들이 1학년이 된 이후, 주인이 엄마는 민서가 참 마음에 안 든다. 주인이를 화나게 하는 일이 많고, 주인이의 잘못을 다른 어른들 앞에서 고자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민서를 가만히 두고 볼 주인이와 주인이 엄마가 아니었다. 이미 함께 많은 기술을 터득한 이들은 민서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태욱이에게 썼던 방법 중에서 마지막 단계인 거리두기 중이었다.

그런데 요즘 더 거슬리는 존재가 나타났다. 이한이 엄마와 이한이.


"주인아! 민서한테 전화해서 오늘 놀자고 해봐. 요즘 민서랑 좀 못 만났네. 예전에 너 민서랑 제일 친했잖아. 친구끼리 좀 멀어졌다가도 다시 친해지고 그러는 거지."


"어? 그래도 돼? 알았어!"


주인이도 민서를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 민서를 멀리 해야만 할 것 같고, 민서가 나쁘게 말하는 걸 고쳐줘야 하니 같이 못 놀고 있었다.


"민서야! 너 오늘 뭐 해? 우리 같이 놀까? 나 오늘 학원 없어!"


"어? 최주인! 너가 어쩐 일이야? 그래! 놀자!"


민서는 주인이가 먼저 전화해서 놀자고 하니 은근 기분이 좋았다. 요즘 주인이가 나를 멀리 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친절하게 대하는 거 보니 조금 안심도 되었다. '미움받고 있지 않구나...' 하는 안심일까?


주인이와 민서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본 주아와 윤이가 달려왔다. 윤이와 주아도 역시 민서와 노는 게 좋았다. 주인이 엄마와 주인이가 요즘 민서를 걱정해 주고, 혼내던데... 이제 민서가 다시 착해진 건가 싶어서 윤이와 주아도 마음이 놓였다.

주아가 뭔가 떠오른 듯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 이한이한테 전화해 볼까? 이한이도 전화번호 생겼어! 나 저번에 이한이 번호 저장해 놨어!"


"아냐. 이한이는 주한이랑 놀아줘야 하잖아. 그냥 우리끼리 놀자. 아! 태욱이 부를까? 주한이 고집부리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같이 놀면 조금 힘들어. 그치? 윤아? 너도 저번에 힘들었잖아. 내가 오늘 편의점 가서 하나씩 간식 사줄게. 엄마한테 허락받았어. 오늘은 우리끼리 가서 사 먹어도 된대!"


주아와 윤이의 마음속에 무엇인지 모르는 안도감과, 속상함이 쓰윽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친구들과 주인이, 주인이 엄마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이한이 엄마와 이한이가 먼저 주인이가 왕인 세상에서의 고립을 선택했다는 것을...




- 주인이 엄마는 처음부터 여왕벌이었을까요?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여왕벌은 나르시시스트와 거의 같아요. 자존감의 공백으로 스스로 가치를 높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짓밟으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는 부류들이죠. 유치원의 그 사건으로 대단한 성취감을 맛본 주인이 엄마는 점점 본인이 대단한 사람이 된 거 같은 우월감에 심취했을 겁니다. 기관에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고, 본인이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우월감에 점점 중독되어 갑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학부모라는 스펙 하나로 학교 학부모회, 운영위원 등을 하며 교사들을 상대로  갑질을 통해 '자아실현'하려는 여왕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답니다. (물론 훌륭한 학부모님들이 더 많아요.)


-주인이와 주인이 엄마가 친구들을 길들이는 방법, 어떤가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비난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리는 행위를 잘도 포장합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일을 수도 없이 보고, 들으며 생활했을 겁니다. 그렇게 서서히 주인이게 잘 맞는 친구로 길들여지고 있는 겁니다. 주인이 엄마의 조언은 상대를 위해 걱정해 주는 척하고 있지만, 주인이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주인이를 위해주는 좋은 친구로 만들어주기 위한 조언입니다. 주인이가 좋아하는 놀이를 해 줄 친구, 주인이의 말을 잘 듣는 친구, 주인이에게 양보를 잘해주는 친구 등등... 주인이를 위한 조언인 거죠.


- 윤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윤이의 훈육을 주인이 엄마가 하게 두어선 안 되는 겁니다. 주인이 엄마는 저 자리에서 윤이를 훈육할 자격이 없어요. 윤이 엄마가 했어야 합니다. 주인이 엄마가 나서려고 했을 때 "너의 아이와 관련된 일도 아니고, 내 아이이니 내가 이야기하겠다."라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고 그 자리에서 나와 둘이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주인이 엄마의 말도 안 되는 훈육을 듣고 혼자 울고 있는 윤이를 그저 바라보고 있는 엄마는 윤이에게 제일 큰 상처입니다.


-주인이는 왜 주한이를 공격할까요?


여왕벌들은 약점을 잘 찾아내 공격합니다. 그때 완전히 거짓을 말하진 않아요. 사실 1%와 거짓을 섞어 100%로 만들어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로 믿도록 합니다. 주인이 엄마는 이한이를 공격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리고 언뜻 보면 문제가 있어 보일 수도 있는 개구쟁이 주한이를 이한이 대신 공격대상으로 정한 겁니다. 주한이는 이한이의 분신 같은 동생이니까요.   


-그러면 도대체 주인이 엄마의 주변 엄마들은 왜 주인이 엄마 곁에 있을까요?


이야기에 나오는 엄마들이 어리석어서 당하는 게 아니에요. 저런 순간은 반복되지만 짧고, 같이 노는 시간은 항상 화기애애하며, 주인이의 말투는 항상 친절하거든요. 그리고 주인이 엄마는 반찬, 먹을거리도 자주 갖다 주고, 내가 힘들다고 할 때 제일 먼저 와주는 동네 사람입니다. '오늘은 나한테 조금 함부로 대하는 거 아닌가' 싶을 땐 바로 나에게 따로 연락이 오고, 마음을 녹여줘요. 그렇게 야금야금 조금씩 길들여져 가거나, 그냥 주인이 엄마의 여왕벌 성향은 알고 있지만 '쯧, 악한 사람은 아니지' 하는 마음으로 참고 지내고 있는 겁니다. 내 아이에게 물어보면 주인이를 좋아한다고 하니 또 참는 거죠.

내 주변에 여왕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이가 진짜 주인이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주인이를 좋아해야 한다고 세뇌되어 스스로도 주인이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미 내 아이는 긴 시간을 통해 길들여졌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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