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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서 Mar 02. 2022

새벽을 여는 사람들 1

환경미화원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인지 아침인지 모를 4시 반에 기상하였다.


거반 취한 몸으로 대충 얼굴을 닦고  먼저 일어난 아내가 준비해준 시리얼로 조반을 끝내고 5시 반에 대중교통에 몸을 싣는다. 몸은 아직 추위에 움츠러들고  손조차 꺼내기 싫다.


한 두어 정거장 지나니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이 이른 시간에 어디들을  가는 걸까?


한 번은 경전철 첫차를 탄 적이 있다. 승차역은  보국문 역이었는데 발 디딜 틈도 없는 더 이상 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디를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나 또한 저들 중의 하나이지" 생각하니 나 자신에 안쓰럽기까지 하다.


버스는 혜화를 거쳐 종로  그다음 소공동 롯데 백화점에서 나를 내려준다.  

운동이랍시고 소공에서 예원학교 까지 걷기는 하는데 천천히 눈과 입으로 세상 참견 다하며 묵묵히  걷다 보면 6시 20분경 만나는 사람이 있다.


덕수궁길에서  예원학교 올라가는 길,


희미한 누런  가로등이 비추어지는 가운데 구부러진 -인도와 차도가 아슬아슬한- 좁은 길에 발광 테이프가 부착된 형광 의복을 착용한 사람 하나!  발걸음을 계속하여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저 사람의 성별을 알 수 있었다.


남자인 줄 알았던 기존의 생각을 깬 한 여인!

능숙하다 아니 능숙하다 못해 기계적이다. 힘도 많이 들터인데 여인은 쉼 없이  왼손은 기다란 손잡이가 부착된 쓰레받기를 잡고 나머지 한 손 역시 긴 빗자루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널브러진 쓰레기를 담는다.

나라면 어설플 텐데 아주 능숙하게! 그것도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


가만있자, 좀 더 곁눈질해 보니 몸도 왜소하다만 숙달된 손놀림은  상당기간 이 업무에 종사한 분임에 틀림없다.


환경미화원,

나는 전부터 우리가 청소부라고 불던 그분들을 지금까지 "발음"은  비록 길지만 " 내 나라의 얼굴을 닦는 사람"이라고 "내 나라를 말갛게 씻어주는 사람"이라고 불러왔다.


이른 새벽에 외간 남자가 말을 걸으면 당황할 수도 있어 매일 인사를 드리다가 어느 날 바뀐듯한 느낌의

여인에게 물어보았다.

몇 시부터 나오시냐고,

언제까지 하시느냐고,

"5시에서 오후 세시 반"이라고 한 것 같다.

바쁘게 자리를 피하는 것 같아 더 이상의 물음은 스스로를 멋쩍게 만들기에 그냥 인사하며 돌아섰다.


남들에게는'단순하게들 살라"고 늘 말하면서도 이놈의  그 넓은 오지랖은 여지없이 정신을 헤쳐놓는다.

저 여인은 왜 이렇게 이른 시간 힘든 일을 할까,

남편 없이 홀로 자식을 키워야 하니 돈이 필요해서일까

갑자기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이 뭐라도 할까 해서 나왔을까,

혹시 나중에 자식이 판. 검사 의사가 될 것이니 그때를 위해서 지금 자식의 학원비라도 보태려 함일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걷다가 머리 한번 흔들고 나니 또렷하게 결론을 짓는다.

"무슨 사유가 있든 간에 저 여인은 현재 최선을 다하고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라고,


한겨울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좀 수그러진 거 같지만,   그래도 아직 콧속을 파고드는 바람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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