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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의 서재 Nov 26. 2022

"당신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마트에서 잔뜩 장을 보고 온 여자는 점원이 빼곡하게 넣어 준 비닐봉지 안에서 물건들을 차례대로 꺼내서는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했다


식탁 한편에 아무렇게나 놓인 작은 수첩을 펼쳐서는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서 찬찬히 살펴보며 밑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유통기한을 확인한 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스파게티의 유통기한은 2025. 06.09

명란 파스타 소스 유통기한은 2023.02.13

스위트콘 유통기한은 2025. 01.10

파래김 유통기한은 2023.03.12

구운 새우 유통기한은 2022.11.30.


이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먹어 없애야겠네...! 

    

참치캔의 유통기한은 2023.01.15.

라면의 유통기한은 2023. 01. 23

와인의 유통기한은 2023.02.03.

식빵의 유통기한은 2022. 11.23.


이건 삼일이나 지났으니 아까워도 버려야겠지...?     


*

*

*     


한참을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자신이 장을 봐 온 물건들을 정리하던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컴퓨터 화면이 켜질 때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는 잠시 서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컴퓨터의 전원이 켜지지도 않았는데... 화면이 활짝 켜진 상태로 시끄럽게 알람을 울려 대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상황에 화들짝 놀라 다시 한번 전원을 확인했다역시나 전원은 꺼져 있는 상태였그러나 묘하게도 컴퓨터의 화면은 제 스스로 켜진 채 그녀에게 한통의 메일이 왔다며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그녀는 찜찜한 마음은 잠시 접어둔 채로 자신에게 온 메일을 클릭했다그러자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장난스럽게 적혀 있었다.   

  

당신의 유통기한 내역서를 알려드립니다.     

당신의 간 : 2025.01.02.

당신의 심장 : 2024.03.05.

당신의 콩팥 : 2023.07.08.

당신의 시력 : 2025.01.06.

당신의 청력 : 2024. 02.05.

당신의 췌장 : 2028. 09.11.

당신의 심장 : 2025.07.09.

*

*

*


한참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는 그 기괴한 내용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미소까지 지으며 읽어 내려가다가... 맨 마지막에 적혀 있는 유통기한을 본 순간 기분이 몹시 나빠져 혀를 내둘렀다그곳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최종 유통기한은 뇌가 정지하는 내일까지 입니다부디 다른 물건들의 유통기한을 정리하는 것에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는 의미 있는 일들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쓰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그 익명의 메일에 콧방귀를 뀌며 그럴 리가 없잖아 라는 강한 손사래까지 치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난 메일을 보냈어...정말 할 일도 더럽게 없는 인간들이네...!"     


그녀는 잔뜩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컴퓨터의 전원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린 후... 그대로 서재 방을 나와서는 다시 차분하게 수첩 위에 다른 물건들의 유통기한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입해 온 물건들의 유통기한을 병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작업을 마치자마자 이번에는 그 물건들이 흐트러질세라 각까지 칼같이 잡아서는 찬장 위에 날짜별로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정리를 마쳤다


정리를 완벽하게 마치고 기분이 아주 좋아진 그녀는 유통기한이 바로 임박한 통조림을 따서 대충 요리를 해 먹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친 그녀는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서는 늘 그렇듯 자기 전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쓸데없는 물건들을 쇼핑하다가... 엄마와 남자 친구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엄마의 부재중 전화 5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의 부재중 전화 10

     

'아니 왜 오늘따라 이렇게 부재중 전화가 많이 온 거지...? 나 지금 엄청나게 피곤한데?'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서 엄마랑 남자 친구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조금 전까지 물건의 정리정돈에 너무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은 나머지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해 봐야겠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그녀의 무거워진 눈꺼풀이 그대로 아래로 내려앉았다결국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모든 시간들을 쓸데없는 일들에 허비하느라 정작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소리는 영영 듣지도 못한 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혹시 당신의 귀한 시간을 정작 쓸데없는 일들을 하느라 지금 당장 소중한 일들에는 뒷전 아니신가요...?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들을 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당신의 유통기한은 바로 내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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