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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의 서재 Dec 02. 2022

SOULMATE

1화 아줌마들은 대단해...!

집에서 콕 틀어박혀 곧 출간할 작품을 바쁘게 쓰고 있던 지호의 핸드폰이 책상 위에서 요란한 진동과 함께 간간한 벨 소리를 힘겹게 울려 댔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자신의 엄마인 일명 박 여사님(?)께서 동네 아줌마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친목을 다지는 중이었다. 


아줌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도 늘 얘기들이 새롭고 다채로웠다. 아이들 키우는 얘기... 학원은 어디가 좋은 지...? 명문대를 나온 과외 선생님은 얼마며, 우리 동네에서 핫한 선생은 누가 누가 있는지...?


한참을 얘기하며 정보를 다 교환했다 싶으면 그제서야 명절 때마다 며느리인 자신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시어머니와 시누이  얘기... 오래간만에 엄마의 집에서는 아줌마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아주 시끌벅적했다.


아무리 지호 자신이 글을 창작해서 쓰는 작가라고는 해도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는 이 아줌마들의 샘물 같이 솟아나는 다채로운 레퍼토리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자신의 얘깃거리는 고작 해봐야 그녀들의 앙증맞은 엄지발가락에 꼭꼭 숨겨져 있는 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역시 아줌마들은 다들 이야기꾼들이라니까.... 대단해... 대단해..." 


지호의 두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춤을 추고는 있었지만... 조금 전부터 자신의 온 말초신경은 그녀들의 재밌는 이야기에 쏠리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 후 한참을 박장대소를 하던 그녀들 틈에서 자신의 엄마인 박 여사가 정색을 하며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수미 엄마 남편이 그전과는 다르게 요즘에는 그렇게 변강쇠같이 힘이 남아돈다며...?"


엄마의 물음에 손뼉을 치며 하하호호 맞장구를 치던 아줌마들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수미 엄마에게 고정된 채로... 거친 숨소리만 내뿜으며 "빨리 알려줘 봐, 당장 오늘 밤에 써먹게...! 아니기만 해 봐, 그때는 알아서 해라, 수미 엄마야~~~"라는 무서운 얼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그녀는 마지못해 입을 뗐다.


"아니... 그게... 내가 얼마 전에 말이지....(쑥덕쑥덕...)"


지호는 귀를 기울이다 말고 결정적인 순간에 데시벨을 아주 확 낮춰서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기도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를 그 수미 엄마라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다 말고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아줌마는 무슨 얘기를 하길래... 큰 소리로 말을 하다 말아...? 그나저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집이 떠나갈 듯이 손뼉을 치고 즐겁게 웃던 아줌마들은 다들 어디를 가시고..."


지호는 작업을 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살금살금 문가 쪽으로 다가가서는 귀를 바짝 들이대고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아줌마들은 전원 단합이라도 했는지... 일체의 맞장구도 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경청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짝 엿들으려고 일어서서 문가에 귀를 바짝 대고 있는 자신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진 그녀는 강한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의자에 앉아 노트북에 작성해 놓은 글을 찬찬히 중얼거리듯 읽어 내려갔다.






"저... 선배... 오늘은 좀..." 얼굴이 붉어져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부끄러운 듯 말을 웅얼거리는 선우의 귓가에 그놈이 한층 더 가깝게 얼굴을 들이밀고는 중저음의 나지막하고 아주 끈끈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왜...? 네 녀석도 여자들처럼 한 달에 한번 걸리는 매직이라도 걸렸어?"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강한 팔뚝으로 야리야리하고 새하얀 얼굴의 조각 같은 선우의 넥타이를 안달이 난다는 듯이 자신의 몸 쪽으로 확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는데..."선우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귀까지 새빨개진 자신의 얼굴을 애써 감추려는 듯 그에게서 자신의 몸을 뒤로 빼며...... (야한 내용의 연속이니 이하 생략...) 


자신의 글을 읽던 지호는 이내 재미가 없는지 머리에 깍지를 낀 채 머리를 의자 뒤로 젖힌 상태로... 긴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쭈욱 뻗고는... 심통을 부리는 어린애같이 툴툴거렸다.


"아니 아줌마들은 정작 얘기를 들을 만하면 꼭 이렇게 자기들끼리만 조용히 얘기하더라...? 진짜 치사하게... 그나저나 엄마는 아빠랑 같이 살지도 않으면서 뭘 그렇게 숨소리까지 같이 줄이고 듣고 있는 건데...?"


사실 앉아서 마감이 다가와 초조한 마음으로 습관적으로 의자에 앉아 자판을 치고는 있었지만... 며칠 전부터 쓰고 있는 내용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전부 다 갈아엎을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아줌마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혹시나 자신에게 놀라운 아이디어라도 번뜩이지 않을까 싶어 나름 온 신경을 곤두세워 듣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아줌마들은 낮 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라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들 만의 룰이 확실히 있는 지성집단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역시 아줌마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어...? 대단한 사람들이야...! 어떻게 저런 얘기를 할 때마다 저렇게 고요할 수가 있는 건데...? 남들이 절대로 들으면 안 되는 비밀 얘기라도 하는 것 마냥..."


지호는 혀를 끌끌 차다 말고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한번 핸드폰의 진동이 요란하게 울리며 지랄발광을 떨고 있는 모습 그 자체였다. 그녀는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전화기를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에는 늘 익숙한 친구 희정이가 "야아~~ 이 계집애야~~ 전화를 하면 좀 받아라... 뭐 하고 있길래 이 언니가 이렇게 안달이 나게 만드는 거냐...? 이것아...!"


지호는 전화기 너머의 희정이 목소리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 말고 한마디 툭 건넸다.


"그러는 너는 잘 지냈냐...? 얼마 전까지 남자 친구 만나느라 바쁘다며 우리한테 전화를 당분간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시더만... 어떻게 됐냐...? 그 소중한 남자 친구분은...?"


전화기 너머의 그녀는 늘 그래 왔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김지호... 뭔 소리야...? 내가 언제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그래... 그러길...! 이 언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희들 밖에는 없단다."


지호는 얼렁뚱땅 넘어가는 희정이의 말을 듣다가 예의상 물었다.


"그럼 위로해 달라고 전화를 한 건 아니라는 판단하에... 오늘은 왜 이렇게 행차를 하셨데... 우리 희정 양께서...?"


지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희정은 안달을 내며 대답했다.


"시간 되면 예슬이랑 우리 지호랑 술이나 한 잔 할까 해서... 괜찮지...?"


그녀의 백 프로 확신에 가까운 말투에 지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늘 만나는 술집에서 볼까...?"

"거기가 제일 낫지 않냐...? 대학 다닐 때부터 지호 네가 가장 좋아하는 술집이잖아? 푸짐하다고..."

"그렇긴 하지... 그럼 몇 시에 만날까, 우리...?"

"예슬이랑 나는 회사 끝나고 곧바로 가면 8시 30분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너는 어때?"

"응... 나도 좋아... 여기는 우리 집하고도 가까운 거리니까... 그럼 이따 보자."

"그래... 이따 보자, 지호야!"








지호는 운동복 차림에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동여맨 상태로 모자를 쓰자마자 거실로 나갔다. 조금 전에 장을 보러 나간다며 나갔던 엄마는 번개같이 들어와서는 배추 한 통을 곱게 갈라 겉에 붙어 있는 배추로는 배추 된장국을 끓이면서... 샛노란  배추 속을 빼서는 빛깔이 새빨간 고춧가루와 새우젓을 알맞은 비율로 버무려서는 겉절이를 무치다 말고 밖으로 나가려는 지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가시나...?"


마치 범죄자를 취조하는 눈빛을 가진... 게다가 엄청난 내공을 지닌 늙은 노형사의 포스를 풍기는 엄마가 급하게 나가려는 지호에게 이리로 오라며 강한 손짓을 했다. 그녀는 그대로 나가려다 말고 쭈뼛쭈뼛 거리며 엄마에게 다가가며 볼멘소리로 물었다.


"왜요...? 금방 나갔다가 올게."


엄마는 지호의 금방이라는 말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나가기 전에 이 겉절이 간이 맞나 먹어 봐."


지호는 엄마가 겉절이 간을 보라는 말에 이내 퉁명스럽게 말했다.


"엄마... 안 먹어봐도 엄청 맛있게 생겼는데... 나 지금 바빠서 나가봐야 돼... 갔다 올게." 라며 등을 돌리자마자 그녀의 강한 스매싱 한 방이 "쫘악~~"등짝을 후려쳤다. 


갑자기 봉변을 당한 그녀는  잔뜩 입을 내밀며 "왜 그래...? 아프잖아...!"


잔뜩 약이 올라 툴툴거리는 지호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엄마는 한 손으로 자신이 만든 겉절이를 한 움큼 잡아서는 그대로 지호의 입 안으로 꾹꾹 욱여넣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었다.


"어때...? 맛있냐...?"


지호는 엄마가 자신의 입 안으로 욱여넣어준 겉절이를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우걱우걱 씹으며 말 대신 엄지 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그런 지호의 모습을 보던 엄마는 다소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술을 마시고 오는 건 성인이니까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다만... 제발 필름이 끊겨서 외박은 하지 말아라... 김지호. 이건 당부가 아니라 경고다."


지호는 엄마의 경고를 듣는 둥 마는 둥 급하게 슬리퍼를 끌고는 밖으로 나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도대체 저분은 나의 친엄마가 맞기는 한 걸까...? 무슨 딸한테 날마다 등짝 스매싱을 밥 먹듯이 날리지를 않나...? 무서운 얼굴로 경고를 날리지를 않나...? 나는 저 아줌마 딸이 아니라 그냥 개천에서 주워온 게 확실해~~~ 아휴~~ 정말 서러워서 아주 살 수가 없어, 내가!"








집도 제일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지호는 다른 두 친구들보다 늦게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예슬이 지호를 바라보며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러자 예슬이 맞은편에 앉아서 자작을 하고 있던 희정이 살짝 몸을 돌려서는 주먹을 불끈 쥔 손으로 그녀에게 보란 듯이 높이 쳐들었다. 


그녀는 그러든지 말든지 배 째라 라는 표정으로 희정이와 예슬이가 앉아 있는 구석자리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그러자 예슬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희정의 겉옷을 치우며 지호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작가님, 오셨습니까...? 어서 이리로 앉으십시오...!" 라며 농담을 섞어 지호를 맞았다. 그런 예슬을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희정이 잔뜩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야아~~ 예슬아."

"응? 왜? 안주 더 시킬까?"

"아니 그게 아니고... 네가 맨날 시간 약속도 잘 지키지 않는 지호한테 작가님 이리로 앉으십시오...라고 하니까... 이 녀석이 기고가 만장해서는 맨날 늦는 거 아니냐...? 집도 제일 가까우면서..."


희정이 말에 예슬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지호를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리다 말고 물었다.


"이번 작품은 잘 쓰고 있어? 지호야?"

"그게... 사실은... 마감이 내일 모레인데... 맘대로 안 써지네. 예슬이 너는 잘 살고 있지?"


지호의 물음에 예슬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야 늘 그렇듯 집과 회사를 오가며 아주 잘 살고 있지. 그나저나 김지호 너 장정우랑 연락은 하고 살아?"


지호는 예슬의 정우라는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킨 채로 바로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서는...갑자기 목이 타는지 벌컥벌컥 시원하게 마신 후 대답했다.


"아니... 그건 왜...?" 


다소 긴장한 표정의 지호를 바라보던 예슬과 희정은 서로 무언의 눈빛을 교환하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지호의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며 말했다.


"우리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 집어치우고 신나게 한 번 달려보자... 지호야!"


"그러자...! 김지호 작가님의 이번 신작도 대박을 치기를 기원하며...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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