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뭔데 내 정신력을 폄하해
우리 까놓고 얘기를 좀 해봅시다. 정신력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잖아요.
그저 습성이나 행동을 보며, 혹은 내뱉는 말들이나 몇 가지의 추상적 근거를 놓고 이렇게 저렇게 조합할 뿐이지 않습니까. 길이를 재어 본다거나, 넓이나 깊이를 측정해 본 적이 없지요? 부피나 무게를 어떻게 따지겠습니까. '력'이라고 해서 그 힘을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는데 어째서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공황장애가 있다는 말을 하면 10중에 9명은 '마음 단단히 먹어'라고 한다. 밥도 아니고 뭘 먹어.라고 말을 하고 싶다만 그냥 흔하게 듣는 말이니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 뒤돌아서 곰곰이 곱씹으면 내가 방금 먹었던 게 단단한 마음인가 더러운 기분인가 싶은 참이지만 빠르게 털어내는 편이 이득이다. 물론 지금은 약을 먹지 않는 단계까지 진입했지만 이게 과연 하등 도움되지 않는 그 조언 덕은 아닐 것이다.
약해빠진 사람이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울증과 공황 장애 등의 정신적 질환이 마음의 질병이라 생각한다. 시발점은 마음의 문제였을지언정 결과적으로 중추신경계 신경 전달 문제라는 것을 몇 번을 되짚어줘도 결국 이겨내란다. 이런 것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단다.
공황 장애가 발생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많은 환경이나, 이유 없는 강박과 반복적인 행동 또는 나의 평온함이 유지되지 못할 것 같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껴왔다. 처음에는 그저 숨을 편하게 쉬기 어려운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어지러웠다. 지하철을 타면 모르는 사람이 나를 칼로 찔러서 죽일 것 같았다. 새벽의 깨끗한 도로에서 갑자기 음주 운전 차량이 나에게 돌진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는 콘서트장, 웨딩 홀처럼 항상 통제하는 인원이 상주하는 공간이 더 편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공황 장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었다. 상담을 통해서 나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고, 상담하는 동안에는 편했다. 내가 "아직 3시밖에 되지 않았네요"라고 말하면 선생님은 "그러게요~ 어서 퇴근하고 싶은데 말이에요"라고 하셨고, 내가 "벌써 3시나 됐네요"라고 말하면 선생님은 "그러니까요, 오늘은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라고 말씀하셨다. 전적으로 내 말에 동의를 해주는 사람과의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나는 업무적인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인데, 공교롭게도 그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효율이 올라갔다. 모순적이면서도 나는 새벽까지 깨어야 하고 주말에도 일을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마음이 편했다.
"저는 진짜 출근하기 싫거든요, 일 하면서도 하기 싫다는 말 정말 많이 해요. 그런데 일을 안 하는 게 더 불안해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본인이 통제할 수 있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무료해지잖아요. 그 시간을 전혀 통제할 줄 모르는 사람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통제 범위를 벗어난 것이죠."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요?"
"바쁘지 않은 시간을 바쁘게 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이 방법을 찾는다고 100% 좋아지지는 않는다.
알고 있었다. 무기력한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온몸의 근육을 물에 풀어버린 계란처럼 흐물거리게 만드는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던 이유는 이 상담, 원인을 찾아낸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황 장애는 뇌가 스트레스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하는 기능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우울증 역시 신경 전달 물질의 이상 때문이라고 한다. 시발점이 어디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결론적으로 '뇌의 질환'이다. 그러니 정신적인 질환은 상담과 더불어 약물의 처방이 필수적인 것이다. 상담으로는 원인을 찾아내고 문제를 분석하며 그 점을 개선해 나가며, 동시에 약을 사용해 떨어진 기능을 되돌리도록 하거나 대체한다.
그러니까 정신 질환이 대부분 '뇌의 질환'이라는 것이다. 몇 번이나 강조하는 이유라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 강박 장애 등 다양한 문제들이 마음이 불안정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만으로는 나아지지 않아 병원을 다니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약은 먹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마음이 나약해져서 그렇다고 한다. 원인이었을지언정 낫지 못하는 주요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4명 중 1명 꼴로 정신 질환이 생긴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리 성능 좋다는 기계도 10년 이상을 쓰면 부품 결함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람도 기계로 치면 몇십 년을 쓰는데, CPU에 해당하는 뇌도 한 번쯤은 고장이 나겠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CPU를 고쳐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이에 대한 어떤 칼럼을 읽고 나서야 딱히 우울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굳이 약까지 먹으면서 병원을 다녀야 하나 싶었던 생각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