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 페이크 우울증인가요
고리타분한 소리들을 늘어놓는다.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올드한 고정관념을 가진 시각이 비단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신경/정신의학에 대한 전문가들이 나서서 이 시각을 바꿔보려 부단히 노력하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우울증은 의지박약이라느니, 나약한 마음 탓이라느니, 정신력이 약해서라느니 이런 소리를 해댄다.
나 우울증인 것 같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죽상인 표정을 하고 이렇게 말을 한다. 요즘 부쩍 SNS에 감성적인 문장을 나열하더니 기어이 그렇게 되어버렸구나. 코스프레식 정신 질환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환멸이 날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 같은 질환은 검사만 받아도 이력이 남을 것이라고 벌벌 떨더니 이제는 너도 나도 손을 들고 자기가 이렇게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조금 먹고 나서야 밝게 웃으면서 다음엔 뭘 할까 고민하는 친구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우울증은 아닌 것 같네, 참 다행이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네가 지금 말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는지 일목요연하게 짚어주고 싶다가도 설마 진짜 우울증이면 어떻게 하나, 오히려 속상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 싶어 참았던 말들은 그냥 마음에 담아 두기로 했다.
대부분의 내 주변인들은 내가 공밍아웃을 하기 전까지 내 공황 장애 사실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통제되지 않는 환경의 두려움은 피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뿐더러 약을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만큼 긴장되지 않기에 매체에서 소개하는 공황 장애의 특징인 '갑자기 쓰러지거나 숨을 못 쉬겠다고 하던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공황 장애라고 하면 오히려 "네가?"라고 할 정도다. 굉장히 오랜 시간 약을 먹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겨우 믿어주는 수준이다.
동경하고 선망하는 대상들이 우울증으로, 공황 장애로, 모종의 정신 질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던가 자신의 괴로움을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들은 사람들이 '결함'이라고 지적하는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을 것이었다. 어쩌면 대중의 이해를 바라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한 편으로는 굉장히 가련해 보이고, 비련의 주인공처럼 보이게 해주는 장치 역할을 했을 줄이야.
어느 순간부터 우울함과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고 고려하는 자신의 모습이 굉장히 멋있다는 것에 취해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이 어떤 약을 먹는지 나열하며 이렇게 약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말한다. 물론 대부분의 정신과에서 약을 즉각적으로 처방해주지는 않지만, 정신과 약물도 어느 정도 급여로 전환된 상황이라 이제는 예전보다 약을 처방받기 쉬워졌다. 문을 두드리고 찾아와서 '제가 뇌 질환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환자에게 어떻게 처방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나.
우울함과 우울증은 구별하기 쉽다.
누구나 다양한 요인으로 우울함이 느껴진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 패배감, 내 존재에 대한 부정이나 가치를 잃어버리는 등 말이다. 우울증은 기억력이나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우울함이 가득 차 하루하루 눈물을 흘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내가 우울증이 있어 나를 돌봐줘'라고 하지 않는다. 우울함이 가득 차있는 자신의 모습을 티 내고 알아봐 주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그냥 그래'다.
전두엽과 변연계 회로에서 감정,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도 그저 그래서 이고, 신체에서 간절히 원해 욕구를 증폭시키지 않는 한 식욕을 느끼거나 수면욕을 느끼기 어려워한다. 때로는 본능을 억제하지 못해 미친 듯이 먹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기도 한다. 외부에서 다가오는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둔감하게 굴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목적도 의미도 의식도 느껴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내가 요즘 왜 이렇게, 모든 자극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지?'라는 회고에서 겨우 우울증을 인지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 또한 공황 장애에 대해 인지한 것은 '요즘 어떤 환경에서 숨도 못 쉴 만큼 답답해서 담배를 엄청 펴요, 아무래도 폐 CT를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그 얘기를 심각하게 듣던 누군가가 '정신과 먼저 가보는 게 어때?'라며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나를 포장하는 용도로 쓰지 말아야 한다. 우울증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 한번 찾아보지 않은 채, 그저 우울한 감정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혹은 내가 타인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멋대로 판단하고 진단하지 않아야 한다. 세간에서는 우울증이 감정적인 요인으로 발생할지언정 뇌의 질환으로 이어지는 만큼 명확한 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단순히 감정적인 상황인 것인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순간인 것인지 알아두어야 한다. 정말 내가 우울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나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면 병원을 찾아가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 우울증을 사칭하는 것도 불쾌하지만 우울증을 인지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것도 보기에 속상한 일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온라인에서 받을 수 있는 무료 마음 진단 이런 것은 차선이다.
공황 장애나 우울증이나 결국 신경적인 이상이다.
뇌 질환이고, 감정적인 것들은 이러한 질환을 부추기는 자극체 역할을 할 뿐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고 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들을 많이 접하고 본다고 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나아지지 않는다.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에 대한 경험을 밝힌 누군가에게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고 하지 말자. 그게 됐으면 진작 했을 것이다.
상담은 보조의 역할이고, 긍정의 힘은 정말 미미하다. 질환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지하는 것이 첫 번째, 약을 잘 먹으면서 뇌가 못 해주고 있는 것들을 약이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두 번째다. 스트레스 요인이나 우울함을 유발하는 요인을 찾아냈다고 한들 그게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사람 같은 것. 사람한테서 오는 스트레스와 우울을 어떻게 없앨 수 있나. 그냥 덤덤해지는 것뿐이지만, 이왕 덤덤해질 것이라면 내가 약을 먹으면서 뇌가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낫다.
나는 여전히 옷이나 수건은 색깔별로, 밝은 것부터 시작해 어두운 순으로 정리해야 한다. 매일매일 청소기를 돌릴 정도로 깔끔하지 않지만 난잡하게 어질러진 환경을 보는 것은 여전히 나를 숨 막히게 한다. 내가 보낸 업무 메일이나 내가 작성해 올린 보고서를 다 끝난 이후에도 몇 번씩 다시 살펴본다. '이 문장 이렇게 쓰지 말 걸'이라는 짜증과 함께. 그래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멍청하게 모니터를 쳐다보는 일보다는 낫다.
아직도 곁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 지하철을 타는 것은 영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도 약은 먹지 않는다. 2년 동안 수 없이 약을 늘리고 조절하고 줄이고 다시 늘리다가 줄이며 점차 나아졌다. CPU가 완전히 새것처럼 고쳐지지는 않았겠지만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우울이나 공황은 재발이 쉽다고 하는데,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을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 또 힘이 들면 약을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을 강하게 먹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정신력을 길러보고자 하지 않았다. 그냥 '그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했다. 까짓 거 약 좀 먹으면 어떤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출근을 못 하거나 일을 못 할 정도의 문제도 아닌데. 타인의 무례함이나 날 죽일 것 같은 망상을 괜찮다고 수용한 것이 아니다. 아픈 나를 괜찮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어쩌겠어, 뇌가 아프다는데.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으니까, 소화가 안 되는 날엔 소화제를 찾는 것처럼, 우울감이나 공포감이 나를 잠식하려 드는 날에는 약을 먹고 깊게 잠을 잘 것이다. 이겨내기보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 상황을 그냥 나의 일부로 두기로 했다.
그러니 당신은 내가 정신력이 약해서,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라, 독하지 못해서 이렇게 약을 찾는다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정신 질환이 쉽게 나을 수 없고 재발이 잦고 왜 지속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러한 순간들을 겪어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정신력을 폄하한 것을 사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당신이 깎아내렸던 나의 것이, 우울증 없는 당신의 것보다 강할 테니까.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니 확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