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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도 감성'충' 인가요?

감성이라는 단어가 참 어렵다 그렇죠?

by Acquaintance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맨 뒷자리에서 책을 읽다가 걸리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내가 만화책이라도 보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를 유심히 지켜보셨다가 그저 시답잖은 소설책들, 그것도 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책을 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신 이후로는 그렇게 크게 혼내지는 않으셨다. 어느 날은 나를 불러내서 생일 축하한다며 유명한 책을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이미 읽은 책이었지만 내 책을 가진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으니까 좋았다.


멋진 문장을 보거나 마음에 드는 표현을 찾아내면 기어이 그러한 표현을 써보겠다고 펜을 들었다. 당시에는 이제 막 온라인으로 소설을 쓰는 문화가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알지 못하는 대단한 소설이 유행이었다. 이모티콘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심지어 소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소설은 대부분 가련하지만 당찬 여자 주인공, 특징은 외모가 특출 난 것도 아니고 엄청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닌데 희한하게 남자 주인공들이 그 애만 바라보는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절절한 10대의 연애 일지로 가득했다. 요즘 시기에 웹 소설과 웹툰을 장식하는 내용이 이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 유행이라면 당시에는 눈물 찔끔 흘릴 수 있는 비련의 사건 여러 개를 섞고, 질투에 뒤섞인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소설 작가나 시인, 글을 쓰는 사람이 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도 멋진 환상과 상상이 가득했으며 나도 멋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가련한 여자 주인공이고 싶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조금씩 나는 나의 상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고, 자기 전에는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세계관을 탄탄하게 가져가는 판타지가 존재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그냥 시를 쓰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꿈에서 막 깬 상태에서 꿈의 내용이 너무 생생해 열심히 공책에 소설을 쓰고는 친구들에게 뿌듯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흑역사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짧게 쓰는 게 유행이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독성을 위해서 모든 문장을 풀어내야 한단다. 예전처럼 멋들어진 은유나 비유로 나의 심경이나 상황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해줘야 한단다. 조금 더 감정이 섞인 표현은 '감성적'이라는 단어로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게 말이나 되나.


누구나 한 번쯤은 중2병이라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밤만 되면 감성이 가득 차올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상대에게 연애편지를 작성하는 시기 말이다. 그런 시기에 펜을 들고 소박하지만 벅찬 마음을 써 내려갔던 내가 있기에, 나는 지금도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한다.


글을 길게 썼더니 감성'충' 이란다.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뭣하나. 제대로 읽어줄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에 와서 웹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비난하고 그 글을 읽는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글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그 절절한 감정과 눈 시리게 아프던 상처들을, 마음을 울리는 사랑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기쁨을 이제는 감성이라는 조금 아쉬운 단어로 덮어 씌우며 '있어 보이는 척'이라 치부한다.


긴 문장은 읽기 싫고, 짧은 문장도 비유나 은유는 덜어내라고 한다.

조용히 내린 눈을 바라보며 고즈넉한 어느 곳에서 조심히 적어 내려갔던 시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요즘 유행한다는 숏-폼 콘텐츠도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자꾸만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다가 내가 머무는 곳도 언젠가 '긴 글은 재미가 없어, 그런 표현은 너무 오글거려'라는 말들로 얼룩덜룩해져 버린다면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말들을 그저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아는 누구에게도 이 공간을 열어주지 않았다. 내 감정이나 내가 느낀 것들을 꺼내보이고 싶었지만 나의 지인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조롱을 받을 내가 싫어서, 오글거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말 마저 못 하게 되는 내가 싫어서.


당신도 혹시 감성'충'인가.


오글거린다는 말이나 감성적인 척한다는 말로써 그저 나 혼자 주절거리는 이야기들에 대해 평가하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또 무슨 생각으로 말하기를 멈추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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