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인상주의 화가
인상주의는 파격적이다.
종교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을 그리던 관습을 벗어나 일상의 인물과 풍경을 그렸고,
건물 안 화실에서 화가의 상상을 붓으로 옮기던 것을 벗어나 외광을 직접 느끼며 야외 작업을 하였고,
세심한 붓질로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던 화풍을 벗어나 햇빛이 전하는 찰나의 변화를 두터운 터치로 담아냈다.
이들의 실험은, 당연하게도, 기존의 아카데믹 평단으로부터 무시당해 ’ 살롱전‘에 초청되지 못하였고, 이에 클로드 모네를 위시한 30여 명의 예술가는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의 익명 협회(Société anonyme des artistes peintres, sculpteurs, graveurs, etc.)‘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 파격적인 전시회에 또 다른 파격을 더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유일한 여류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이다.
베르트 모리조는 1841년 파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 있던 그녀는 언니 에드마와 함께 당시 바르비종파의 거장인 카미유 코로를 스승으로 삼아 야외에서 빛을 관찰하는 법과 생동감 있는 색조를 부드럽게 조화하는 화풍을 배웠다. 당시 여성의 그림을 고상한 취미로 치부하는 편견을 벗어나 자매는 ’전문적인 화가‘ 가 되기를 꿈꾸었고, 둘은 ‘살롱전’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니 에드마가 결혼과 함께 예술을 포기해야 했고, 베르트는 언니를 뮤즈 삼아 자신만의 화풍을 이어간다.
1868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에드와르 마네를 만난 베르트 모리조는 그의 화풍에 매료되어 인상주의자로서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에드와르 마네는 그녀에게 ‘외광파’의 기술을 전수했고 그녀는 에드와르의 색감이 밝아지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깊고 검은 눈동자와 지적인 분위기의 베르트는 이후 마네의 여러 그림에 등장하였고, 자칫 사랑의 교류를 나누는 것에 가까웠을 그들의 관계는 묘하게도 베르트가 에드와르의 동생인 외젠 마네와 결혼하여 한 가족을 이루는 것으로 지속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그녀는 ‘요람’을 비롯한 여러 개의 작품을 출품하게 된다. 당시 에드와르 마네는 베르트에게 이 전시에 참여하지 말라고 강권하였다. ‘낙선자’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살롱전’에서 입선한 그녀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화풍을 유지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참여하였고, 그 후에도 꾸준히 출품하여 인상주의 화풍을 지키려 노력한 그룹의 핵심 멤버로 남게 된다.
‘그녀는 인상주의 화가 중 가장 인상주의자다’ _ 비평가 귀스타브 제프루아
‘요람’은 화가의 언니 에드마와 그 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살롱전에서 인정받을 만큼 고전적인 화풍을 가진 베르트가 선보인 거칠고 굵은 붓터치는 여느 인상파 작품들과 같이 당시 비평가들을 당혹하게 하였다. 유일한 여성인 그녀에게 차마 험한 말을 던지지 못해 ‘모리조는 자신의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상주의의 광기를 실천한다 _ 루이 르루아(’인상파‘ 단어를 만든 비평가)‘ 정도의 평가를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 젊은 여성은 찰나의 순간을 포한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아기 머리 위의 투명한 베일은 마치 공기가 그려진 것 같다 ‘라는 찬사를 듣기도 하였다.
‘투명한 공기와 빛의 산란’ 은 인상주의 화가로서 그녀의 가장 특징적인 화풍이다. 베르트는 흰색 물감을 아주 묽게 해서 캔버스 전체를 살짝 덮는 듯한 ‘베일링(Veiling)’ 기법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마치 우리 눈과 대상 사이에 투명한 공기층이 있는 듯한 깊이감을 주고 있다. 그녀는 동시에, 알프레드 시슬레가 하얀 눈을 그릴 때 그리하듯, 단순한 흰색이 아는 푸른, 분홍, 노란색을 얇게 겹쳐 바르면서 빛이 투과되는 천의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창가에서 책을 읽는 소녀의 드레스와 여인이 널고 있는 하얀 빨랫감에서 투명한 빛의 산란을 볼 수 있다.
‘수국’은 베르트의 말년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화가의 언니, 남편, 딸과 같은 가족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겨 그리던 그녀는 딸 줄리와 조카 쟌느와 함께 탐스럽게 피어있는 수국을 담았다. 초기작보다 좀 더 뭉개진 형체의 표현을 통해 원숙한 인상주의 화풍을 보여주며 사물의 ‘모양’을 넘어 빛을 반사하는 ‘색채의 인상’을 남기려 한 화가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수국의 푸른빛은 여인들의 옷과 피부 위에 은은하게 반사되며 그림 전체를 관통하는 빛의 효과를 보여주는데, 특히 일정한 방향성의 거친 붓질 사이사이 캔버스의 흰 바탕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마치 빛과 공기가 그림 안팎을 통과하는 듯한 청량함을 선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수국의 꽃말이 ‘처녀의 꿈’ 이라고 하니, 저신과 언니의 꿈을 딸과 조카를 그림으로 아련히 다시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
* 어느새 ‘정원의 인상’ 한권을 모두 채우게 되었습니다. 다음글은 ‘정원의 인상 2’ 권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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