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가 오래간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병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리에 힘이 없어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치료는 몹시 아팠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마취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고통을 그대로 견뎌야 했다. 그 경험은 내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저학년 시절 내내 절뚝거리며 다녔고, 다리가 다 나은 뒤에도 달리기는 늘 꼴찌였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달이도 나처럼 다리에 상처를 가진 존재다. 달이는 다리가 하나 없는 강아지로, 세 개의 다리로 살아간다. 나는 결국 완치되어 잘 걸어 다니지만, 달이는 끝내 치료될 수 없다. 그럼에도 달이는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지만, 네 발로 달리는 다른 강아지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달이는 네 발로 힘차게 뛰어다닌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꿈속에서는 가능하다. 그것은 달인의 간절한 소망이자, 어쩌면 나의 오래된 꿈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 학생들과 함께 안동으로 여행을 갔을 때 권정생 작가의 생가를 찾은 적이 있다. 작고 소박한 오두막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동화 작가가 왜 이런 삶을 선택했을까. 그때 그의 글이 지닌 진정성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권정생 작가의 동화는 《강아지 똥》으로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은 동화’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몽실언니》의 작가이며 수많은 작품을 남긴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비나리 달이네 집》은 아동문학 수업을 통해 처음 읽었는데, 짧지만 메시지가 강렬했다. 일상의 평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 종교와 현실 비판, 반전사상 등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이야기 속 신부님은 성당을 떠나 농부가 되어 자연 속 오두막집에서 산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 어디에나 계심을 전한다. 또 짐승들이 인간보다 훨씬 순수하다는 묘사를 통해, 인간이 저지르는 잔인함과 탐욕을 비추고 있다. 짐승들은 전쟁을 하지 않고, 총과 칼,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거짓말도, 도둑질도, 분노도 없다. 짐승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작가는 이런 대비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인간의 어리석음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 동화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강아지 ‘달이’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게 하면서도, 초현실적인 꿈의 장면을 절묘하게 녹여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달이는 꿈 속에서 네 발로 뛰며 자유를 누린다. 그 장면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21세기의 물질주의와 경쟁 속에 사는 아이들에게 권정생의 동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전쟁의 아픔, 소외된 이들의 고통,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남긴다.
“선명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가 오래간다.”는 속담처럼
그는 시골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고통 속에 조용히 글을 쓰며 살다 떠났지만, 그가 남긴 동화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살아 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시대정신을 일깨우며, 언제까지나 은은한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