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의 왼손에 남은 생

단편소설 [베지터블 마스터] 中 1화

by 김서해


우리 아빠에 대해 말하자면.


1958년생.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출생. 키 175cm의 탤런트 뺨치는 외모에 말수는 적지만 의리 있는 스타일로 남녀 불문, 어디서나 인기가 많은 스타일.


환갑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한테 미소년이라는 단어는 억지로 갖다 붙이려 해도 붙여지지 않지만 내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아빠는 언제나 미소년으로 불렸다.

"잘생긴 아빠, 탤런트 정우성 닮은 수인이네 아빠." 이렇게.


딸인 나도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모이면 너희 아버지 아직도 잘생기셨냐느니, 아직도 그대로시냐는 둥 나보다 아빠 안부를 더 궁금해하곤 한다.


아홉 시 오십 분에 끝나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맞춰 언제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검은색 세단을 끌고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던 아빠.

언제, 어디서나 내 두 손, 두 발이 되어주던 우리 아빠. 멋에 죽고 멋에 살던 멋쟁이.




아빠의ᅠ왼손바닥에는 커다란 상처가 하나 있다.

화상자국처럼 피부가 서로 엉겨 붙어 안으로 흉하게 오그라들어 있다. 어렸을 땐 그게 그저 불에 덴 상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칼에 찔린 흉터라고 했다.

칼에 베인 상처가 아닌, 칼에 '찔린'.


ᅠ대대로 부자였던 친가와 외가 덕에 아빠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할아버지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다 못해 깡그리 무너져버렸다. 논과 밭밖에 없던 당시 경기도 성남시로 온 가족이 피난 가듯 둥지를 옮겼고, 삼촌들과 매일 두 시간씩 걸어서 중학교에 다녔단다.


ᅠ 어려서부터 호리호리한 체형과 눈에 띄는 외모로 동네에서 주목받았던 아빠는 시내의 남자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몰려다니며 조직 생활을 하는 선배들 눈에 들었다고 했다.

폐암으로 투병 중인 할아버지와 줄줄이 딸린 형제만 다섯.

그중 장남이었던 아빠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 일찌감치 공부 쪽은 포기했고 자연스레 건들거리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빠는, 성남시를 꽉 잡고 있던 도끼파에 조직원으로 스카우트 됐다.


성인이 되면 공장에 취직해 버는 족족 집에 월급봉투를 가져다줘야 했을 어린 가장인 아빠에게 조직 생활을 하면 다달이 공장 월급과는 비교도 안 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거절하기엔 너무나 달았다.

그렇게 그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유약한 나의 아빠는 겁도 없이 조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껏해야 3, 4개월 남짓이었지만.


"아빠는 거기 들어갈 때 안 무서웠어?"


ᅠ 편도로만 1시간 반이 걸리는 대학교까지 버스 타고 가기 힘들다는 핑계로 종종 아빠를 기사로 부려 먹던 어느 날이었다. 조수석에 눕다시피 앉아 눈화장을 고치며 물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아무 생각 없이 종환이 아저씨가 들어 가자니깐 간 거지. 에이, 나쁜 새끼."


ᅠ 아빠의 단짝 친구인 종환이 아저씨가 아빠를 꼬드겨 함께 도끼파에 입회했다고 했다. 거기 들어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면서.


ᅠ 생긴 것만 날라리처럼 샐쭉하게 생겼지 누굴 때리거나 겁박할 위인이 못됐던 아빠와 종환이 아저씨는 몇 달 안 되는 조직 생활을 내내 버거워했다.

안 맞는 옷에 억지로 팔을 욱여넣듯 걸치고 다니던 아빠는 조직 생활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친구였던 엄마를 만났고, 곧바로 내가 생겼다고 했다.


ᅠ 점점 배가 불러오는 아내와 곧 태어날 딸에게ᅠ당당한 남편이자 아버지의ᅠ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빠. 단체 생활에서 발을 떼고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고자 두목에게 탈퇴 의사를 밝혔다.

도끼파의 두목은 아빠가 처음부터 오래 생활을 할 만한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던지 쉽게 내보내 주겠다고 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걸면서.


ᅠ일종의 징벌과도 같았던 그 조건은, 조직과의 인연을 영원히 끊는다는 의미로 탈퇴자의 손바닥에 칼침을 놓는 것이었다.

시퍼런 칼날이 손바닥의 정중앙을 관통하던 순간을 아빠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 날밤 입고 있던 하얀 셔츠를 찢어 붕대 대신 왼손에 감은 아빠는 피를 뚝뚝 흘리며 엄마를 찾아갔다.


"엄청 아팠겠네?"

"아팠지, 그럼."


ᅠ 아빠는 손바닥 상처 이야길 하면 마치 까마득한 전생의 일을 이야기하듯 저 멀리 어딘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철없는 딸에게 아빠의 손바닥 상흔은 그저 직접 보지 못한 그의 이십 대 시절 하나의 에피소드, 단지 그뿐이었다.


ᅠ손바닥의 상처가 짓무르고, 덧나고, 새살이 돋아났다가 다시 곪고.


ᅠ 몇 번을 반복하고서야 간신히 손가락 다섯 개를 어정쩡하게나마 펼 수 있었을 무렵, 엄마와 아빠는 그들의 첫째 딸, 나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