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빠, 메로나가 먹고싶어.

단편소설 [베지터블 마스터] 中 2화

by 김서해

새카만 머리숱에 양수에 팅팅 불어 못생긴 얼굴.

아빠는 나를 처음 보고 저거 커서도 저렇게 생겼으면 어쩌지, 하고 내심 걱정했단다.


아빠와 엄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고물 트럭 하나를 구해다가 전국 팔도를 돌며 내복 장사를 하기도 하고 이 일, 저 일을 하며 간신히 모은 돈으로 내가 4살이 되던 해에 작은 치킨집을 열었다.


간절하게 그리고 억척스럽게.


아파 고꾸라지는 한이 있어도 가게 문은 열어야 한다는 엄마와 아빠의 성실함에 치킨집은 곧 대박이 났다.

손님들이 물밀듯 밀려왔고 가게는 항상 만석이었다.

문 앞 테이블에 앉아 아빠 친구들이 올 때마다 사다 주신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으로 그림을 그리며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리던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때부터 그들의 곳간이 조금씩 풍족해져 갔다.


ᅠ내가 8살이 되던 해, 남동생이 태어났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우리 집안의 장손. 사촌들까지 줄줄이 딸인 집안에 경사가 났다.

할머니는 눈에 띄게 동생의 탄생을 기뻐했고, 고모, 삼촌들과 이모들, 모두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렸다.


나는 그런 동생이 얄밉고 싫어서 엄마 몰래 토실한 고 팔뚝을 꼬집어 울리곤 했다.

동생을 괴롭혀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 울고 있으면 아빠는 엄마 몰래 다가와 웃으며 나를 달래주었다. 예뻐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선.


ᅠ아이고 우리 공주. 하면서 말로 사랑 표현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나를 보는 아빠의 눈엔 언제나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딸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한밤중 아빠, 메로나가 먹고 싶어. 그러면 아빠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갔다.

문을 열고 돌아온 그의 손엔 메로나가 열댓 개 들어있는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김윤지 학생. 계절학기 수강료 미납되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대학교 졸업반을 지나고 있을 무렵, 집안의 무언가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며칠 전에는 엄마가 비상시에 쓰라고 준 신용카드가 거래 정지된 카드라고 뜨더니 이번엔 수강료 미납이다.


엄마에게 물어봐도 깜빡했다, 금방 돈 넣어놓을게, 라며 어딘가 얼버무리는 대답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졸업 논문 준비만으로도 바빠 집에 잘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집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것 같다는 감각만 있을 뿐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누나, 바빠?"

"아니, 왜? 말해."


ᅠ 간신히 급한 과제를 끝내놓고 한숨 돌리며 동기들과 낮술을 하러 가던 어느 날, 남동생이 생전 하지 않던 전화를 걸어왔다.


"누나."

"왜. 뭔데. 뭔 일 있냐? 학교에서 핸드폰 써도 되냐?"

"아이, 괜찮아. 누나…. 엄마가 사기를 당했대."


ᅠ 사기? 엄마가?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자 나란히 걷던 동기 두 명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야, 그게?"


ᅠ 호기심 어린 얼굴로 쳐다보는 동기들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한 후 근처 벤치에 앉았다. 겨드랑이에서 축축한 땀이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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