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모라는 둥지에서 멀어져

단편소설 [베지터블 마스터] 中 7화

by 김서해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아빠에게 그를 소개해 드렸다.


처음 인사드리는 거잖아, 잘 보이고 싶어서, 라며 정장에 넥타이에 구두까지 갖춰 신은 그는 양손에 커다란 과일 바구니와 홍삼 한 세트를 들고 왔다.

엄마는 허름하고 좁은 집에서 그를 맞이할 수 없다며 근처에 유명한 한정식집을 예약했다. 버섯 요리를 메인으로 하는 그 식당에서 엄마, 아빠는 그를 처음 만났다.


엄마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딸의 남편감으로 합격이었는지 우리 사위, 우리 시위하며 연신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언제 봤다고 우리 사위래. 하여튼 엄마는.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자니 남자 친구는 엄마가 민망하지 않게 어머님, 어머님하고 능구렁이처럼 답했다.


아빠는 딸이 생전 처음으로 데려온 남자 친구가 마음에 드는 건지 안 드는 건지 밥 먹는 내내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그가 떨리는 손으로 어쩌다 밥을 한술 뜨면 아빠는 식사를 멈추고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식사 내내 왼손을 식탁 위로 올리지 않았다.

식사를 다 마치고 주차장에서 그가 다시 한번 아빠에게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인사 할 때, 아빠는 오른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짧게 고마워, 잘 부탁해, 라고 했다.


*


결혼 준비에 한창이던 무렵 집주인 할머니에게 이제 집을 비워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재개발 진행이 얼마 남지 않아 이 구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주 권고가 내려졌다고 했다.


나는 곧 신혼집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므로 엄마와 아빠, 동생은 새로 살 집을 보러 다녔다. 얼마 후 아빠는 지난 몇 년간 악착같이 일해 모은 돈으로 여전히 좁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구축 아파트 11층의 어느 한 곳을 전세로 계약하고 왔다.

이제 누나는 나갈 거니까 윤형이 네가 큰 방 써. 아빠와 엄마는 방 두 개짜리 그 집의 안방을 아들에게 내어줬다.


그 집으로 이사하던 날 밤 엄마는 거실의 난방을 절절 끓을 때까지 틀어댔다.

온수관이 유독 가까이 있는 것 같은 어느 한 곳은 밟으면 앗뜨거! 소리가 날 만큼 뜨거웠다.

뜨끈하게 데운 거실에 바닥에 앉아 나무로 된 샷시가 아닌 튼튼한 베란다 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눈발이 가늘게 뿌려지고 있었다.


“아빠, 이제 나 신혼집 가면 속 시원하겠어. 부려 먹는 딸도 없고, 그치?”


신혼집에 가져갈 물건들을 트렁크에 넣으며 물었다.

모로 누워 야구 중계를 보던 아빠는 내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대답이 없었다. 엄마는 요리에 서툰 딸이 남편하고 둘이 손가락만 빨고 살진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김치와 잡채, 갈비찜과 토란 조림, 어젯밤부터 열두 시간이 넘게 팔팔 끓인 곰국을 바리바리 챙기고 있었다.


옷가지를 다 챙겨 넣고 책장 쪽을 둘러보았다.

연한 하늘색의 가죽 커버로 된 다이어리가 보였다. 고등학생 때 쓰던 다이어리인데 몇 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 여름 넷이 근처 계곡으로 놀러 가 찍은 사진 몇 장이 나왔다.

막걸리를 마시고 벌겋게 취해 수박을 먹고 있는 아빠. 계곡에 발을 담그고 엄마와 둘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세상의 때와 고단함이 묻지 않은 통통하고 하얀 남동생의 사진까지. 이 사진들을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 트렁크 안쪽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화장품들을 챙겨 파우치에 넣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그 빌라로 이사 갈 때 화장대며 옷장이며 다 버리고 왔기에 내 방에 남은 것들은 싸구려 싱글 침대 하나와 거울 하나 놓고 화장대로 쓰던 작은 협탁 하나, 행거와 작은 책장 하나뿐이었다.


김이 조금 서린 하얀색 샷시 너머 창밖에 소복이 쌓여있는 눈을 봤다. 문득 한겨울에도 방 안에서 입김을 내지 않고 다시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음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빠, 나 이따가 데려다줄 거지? 짐 엄청 많아.


예비 남편이 데리러 오기로 했지만, 이날만큼은 아빠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가고 싶었다. 결혼식은 한 달이나 남았지만 부모라는 둥지를 떠나는 마지막 날 왠지 그들이 직접 둥지 밖으로 내 등을 힘껏 떠밀어주었으면 했다.


사위가 데리러 온다매, 아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방문 너머 반만 보이는 아빠의 검고 마른 어깨가 좀 전의 사진 속 그와 다른 이로 느껴졌다. 아, 아빠 딸 빨리 시집 가버리라는 거야, 뭐야, 서운하네, 김 씨! 목구멍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뜨거운 그것을 간신히 아래로 눌러내며 나머지 짐들을 대충 구겨 넣었다.


남편이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엄마, 아빠와 함께 내려갔다.

세 명 모두 양 손에 짐이 한가득인 게 딱 야반도주하는 사람들 같았다.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남편은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고 장모님, 하며 엄마 손에 들린 반찬통과 곰솥을 낚아채 들었다.

무거우니까 엄마 줘, 하며 남편과 씨름하며 걷는 엄마 뒤를 따라 걷는데 아빠가 말했다.


남편한테 잘하고 잘 살아. 그게 효도야.


생각지도 않았던 아빠의 말에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알았어, 하고 말았다. 내가 하고 싶은 효도는 남편한테 잘하는 게 아닌데. 아빠가 그러라고 하니 남편한테 잘하고 알콩달콩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리라 다짐했다.

집에 가면 냉장고에 반찬들부터 넣어, 곰국은 한 번 더 팔팔 끓이고.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에게 알았다구, 얼른 올라가셔, 여러 번 손짓하고난 후에야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백미러 속 엄마와 아빠가 점처럼 작아지고 시야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봇물 터지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엉엉.

엄마아,아빠아.

김치 냄새가 펄펄 나는 남편의 차 안에서 곰솥을 끌어안은 나는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작가의 이전글6. 나는 여기에 살아. 있잖아,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