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베지터블 마스터] 中 6화
패딩으로 온몸을 꽁꽁 감싸도 입김이 뿜어져 나오던 1998년 2월의 어느 날, 내 대학 입학 설명회가 있었다.
혼자 갔다 올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엄마와 아빠는 굳이 나를 따라왔다.
막상 가니 거창한 설명회라기보단 과끼리 모여 하는 작은 오리엔테이션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같이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자꾸만 사진을 찍어대는 엄마, 아빠가 창피해 이제 가라고 한껏 이를 깨물고 복화술을 해도 그들은 웃으며 강의실 맨 뒤에 우뚝 서 있었다. 매끄러워 보이는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학과장님의 간단한 환영 인사와 함께 30분 만에 설명회는 끝났고 엄마, 아빠는 마치 그들이 신입생이 된 것처럼 내내 들떠있었다.
“엄마 대학교 처음 와봐. 강의실도 크고 너무 좋네.”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도 아쉬워 학생회관과 학생 식당까지 풀코스로 구경을 한 뒤 정문을 빠져나오며 볼이 한껏 상기된 엄마가 말했다.
옆에선 아빠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꽉 다문 입꼬리가 연신 올라가 있었다. 그날 우리는 학교 밑의 닭칼국수 집에서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엄마는 칼국수 집을 꽉 채운 대학생들이 다 자기 딸, 아들 같았는지 눈이 마주치면 많이 먹어, 너무 예쁘다,며 자꾸만 말을 건넸다. 엄마 그만 좀 해, 하면 요즘 대학생들은 다 너무 예쁘네, 하며 젓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집이 무너진 이후 아주 오랜만에 다시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빠는 국자로 국물을 휘휘 저으며 옆 테이블에 앉은 남학생이 의자에 놓아둔 [영문법의 기초]를 자꾸만 흘끔거렸다.
*
내가 결혼 할 남자 친구가 있다고 집에 알렸을 무렵엔 어느새 아빠와 함께 접이식 책상에 앉지 못한 지 2년 정도가 되어있었다.
나는 몇 번의 이직을 했고, 아빠와 동생은 여전히 채소 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가게는 단골도 많이 생기고 정기적으로 납품을 하는 고깃집과 반찬 가게가 몇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생활에 여유는 없었다. 엄마는 똑같이 식당 일을 나갔고, 동생과 아빠는 동트기 전 출근을 했다.
한 번 놓친 삶의 리듬은 다시 테이프처럼 되감아 처음부터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 다니며 만났던 몇 명의 남자 친구들은 자진해서 결혼 이야기를 먼저 꺼냈으면서 내가 우리 집 사정을 이야기하면 약속이나 한 듯 조금씩 뒷걸음질 쳐 도망갔다.
아니,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어? 왜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해 쳐다보면 갑자기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둥 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둥 변명을 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몇 년째 내리 걷던 어느 날 우연히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수더분한 인상에 웃는 모습이 어린 아이같이 해맑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좋다던 그에게는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살던 집을 보여줬다.
빨간 벽돌의 한눈에 봐도 곧 허물어지겠다 싶은 그 빌라 앞에서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말했다.
나는 여기에 살아. 있잖아, 나는 결혼은 못 해, 우리 집 사정이 어려워서.
하니 그는 고갤 들어 불이 켜진 3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동자로 이 방에서 저 방, 한 겨울엔 고드름이 얼던 자그마한 욕실 창까지 둘러보더니 결심을 한 듯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고생했어, 내가 잘할게, 행복하게 해줄게, 라며 지난하고 처절했던 우리 네 가족 생존기를 읽어낸 듯 나보다 더 울었다.
맞잡은 손등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를 보며 난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 치부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무엇도 감출 것이 없었고 꾸밀 것도 없었다.
드디어 내가 있을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