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백발이 성성한 나의 미소년

단편소설 [베지터블 마스터] 中 마지막화

by 김서해


-현재완료랑 그냥 과거형이랑 뭐가 달라.

매번 받는 문자지만 이게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아빠는 도통 문자 메시지에 물음표를 붙이는 법이 없었다. 며칠 전에도 현재 완료와 과거형의 차이를 설명해 줬었는데.

아휴, 이거 전화로 설명해 줘야지, 안 되겠다.

둘의 차이점을 한참 문자로 쓰다가 전화를 걸었다.



어느새 네 명의 손주들을 둔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여전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 몇 달은 영어 공부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다음 달에 친구들과 오키나와로 패키지여행을 가기 때문이란다.


오키나와는 일본인데 왜 영어 공부를 해, 하니 입국심사 할 때 영어로 물어볼 것 아니냐며 대답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세월의 흐름에 편승해 이제는 벽돌 같은 영어사전 말고 사전 앱으로 단어 검색도 한다.

동생이 생일 선물로 사드린 무선 이어폰을 한쪽 귀에 끼고 유튜브로 하루에 두세 시간씩 영어 회화 강의를 들으며 공항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수요일을 뜻하는 Wednesday를 웨드네스데이로 읽던 아빠가 어느새 현재완료 시제까지 왔으니 대단한 발전이다 싶다.


동생도 분가해 나간 집에서 엄마, 아빠는 얼마간 더 살다 평수를 조금 더 좁혀 이사했다.

둘이 사는데 딱 있을 것만 있으면 된다면서. 이십여 년 전 엄마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간 경은 이모는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우리가 어깨를 부딪치며 지냈던 나무 창틀의 빌라는 흔적도 없이 철거됐다. 그곳에는 3천 세대의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 이제는 그런 빌라가 거기에 있었는지, 우리가 그곳에서 살았던 게 어쩌면 꿈은 아니었는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제 알겠어, 아빠? 과거형은 단순히 옛날에 이랬다, 이런 뜻이고 현재 완료는 옛날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말할 때 쓰는 거야. 알겠지? 근데 아빠 식사는 하셨어?”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는 안다. 아빠가 며칠 뒤 또다시 현재완료에 관해 물어올 것을. 그리고 영문법에서 시작한 대화가 어느새 아빠의 안부를 묻고 손주들 이야기로 넘어가는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도. 모르는 영어 문법을 묻는 척 그의 딸에게 안부를 더해 묻곤 하는 것이다.


“오큐…. 오큐패이션(occupation)이 ‘직업’ 맞지?”

“뭐, 맞지. job이라고도 물어볼 수 있지. 왜, 입국 심사할 때 아빠 직업 물어볼까 봐?”

“응.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하나. 채소 가게 사장이니까…. 사장이…. 마스터지? 베지터블...마스터? 샐러드 마스터? 아이 엠 어 베지터블 마스터.”

풉. 그게 뭐야. 실소가 터졌다. 베지터블 마스터라니. 샐러드 마스터는 또 뭐고. 나름 열심히 아는 단어를 조합해 만든 단어들일 그것을 창조해 낸 아빠가 귀여우면서도 그 애씀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자영업자라고 해, self-employed라고 말하면 돼. 휴대전화 너머로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아빠의 들뜸과 설렘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아빠.”

“응, 왜.”

“재밌게 놀다 오셔. 자알 다녀오셔. 영어 엄-청 많이 쓰고 와.”

“일본에서 뭔 영어를 많이 쓰고 와. 대충 갔다 와야지.”


괜히 기분 좋으면서 또 저런다. 한쪽 입꼬리만 씰룩 올라간 채 안 웃은 척하고 있을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 하고 싶은 영어, 일본 사람들한테 막하고 오셔. 영어는 세계 공통 언어니까 다 통해. 다 해도 돼. 알았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와, 아빠.”


알았다, 밥 잘 챙겨 먹어. 하며 툭, 통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아빠, 백발이 성성한 나의 미소년. 그가 부디 여행 내내 원 없이 영어를 쓰고 오길 바란다.

부디, 즐거운 여행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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