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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조각

끄적이던 찰나의 마음들

by 하름구늘


참 좋아.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이런 네가 참 좋아

이런 순간이 참 좋아

내 평생 들을 수 있는 말일까

체념으로 끝맺는 마음들이 늘어가는 듯하다

‘23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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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 부른다.

'칼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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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보는 눈이 아리다. 밤새 잠을 설쳐서일까. 알러지로 인한 붓기 때문일까. 뭐가 되었든 눈이 아리다. 그렇다고 화면을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국한되어 있다. 그래서 그냥 펜을 들고 끄적이기로 했다. 뭐가 되었든 끄적이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오늘은 날씨가 굉장히 따뜻하다. 12월의 가장 따뜻한 날이라 다들 한 마디씩 건넨다. 포근한 날씨가 반갑기도 하지만, 12월에 적응하지 못한 이단아 같은 날씨는 왜인지 거부감이 든다. 온난화같으니라고 내가 더워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겨울답게 꾸민 일이 겨울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비가 내릴 듯 흐리고, 미세먼지가 뒤덮은 듯 흐리다. 비가 주륵주륵 올 것만 같은데, 비는 와주지 않는다.

이단아라고 했던 12월의 어느 날에게 문득 미안하기도 하고, 동질감도 느끼고. 너는 그래도 환영받는 날씨라 부럽기도 하고. 따뜻하고 포근했으나, 잔뜩 흐린 날처럼 나도 먹구름이 잔뜩 가득 찼다.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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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귄다라는 말이 북한에서 쓰인다

사귄다라는 말이 남한에서 쓰인다

교차점이라는 의미는 북한에서 사귐점으로 쓰인다

교차점이 사귐점이라는 말은

같은 의미가 된다는 말이려나

관계의 교차가 사귐의 시작인 것인가

교차가 시작되는 지점은 조금 가벼운 의미인 듯싶다

우리는 어느 순간이든 타인과의 교차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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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냄새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다는 좋아하지 않는다. 찬 냄새와는 다르다.

찬 냄새는 겨울, 늦가을의 냄새. 차지만 차갑지 않다. 춥지만 시리진 않다. 차가운 냄새는 시리다. 동봉된 아이스팩 같달까. 무엇보다도 인위적이다. 차가운 냄새의 특유의 향이 있다. 무취 같지만 그 안에 있는 냉랭함이려나, 묘한 기시감이 있다. 차가운 냄새는 왠지 쓸쓸하고 외롭게 만든다.

찬 냄새는 외려 충만한 느낌을 준다. 겨울의 냄새,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냄새. 따듯한 공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가을의 냄새, 공기가 숨을 쉬게 하는 느낌. 코로 들이쉬는, 약간은 비릿한 공기가 마음을 씻어주는 느낌.

한여름 밤에 느끼는 냉기와, 차가운 냄새에 문득 마음이 시렸다.

'23년의 여름일기


너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 봐도

이 자체가 너를 생각하는 나임을 알기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너를 떠올리는 일을 인정하고

나는 너를 오롯이 생각하고 있다

‘24년의 일기


멈칫하게 되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그 사람이 생각나거나, 혹은 그 상황이 생각나거나

무슨 이유에서든 마냥 행복한 의미는 아닙니다.

멈칫의 이유는 그 사람을, 혹은 그 상황을 다시 보기 어렵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더 이상 그 순간을 볼 수 없기에

제가 좋아하던 노래를 당신과 함께 듣고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저와 함께 듣고

같이 있던 그 날씨와 어울리는 노래를 듣고

그래서 멈칫하고 잠시 그 순간을, 당신을 생각하다가 그 노래를 채 다 듣지 못하고 넘기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 노래들을 사랑하는 저로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했기에 당신과 들었고,

제가 좋아하는 당신이었기에 당신의 취향을 들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애정은, 이제 곁에 없다는 이유 하나로

쏟았던 마음만큼 아프게 돌아온다는 사실은 언제나 가혹합니다.

‘24년의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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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혹스럽거나 실망하거나 다루기 까다로울지 모른다는 이유로 잘 모르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당황과 실망을 안겨주는 그 모든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경험을 가장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앤 모로 린드버그 <바다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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