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에게

by 하름구늘



같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 영화는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고 그저 같이 보고 싶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에 우리는 그 영화를 같이 보지 못했습니다. 가만 더듬어보면 언제까지고 저는 당신과함께 영화를 볼 수 있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함께 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그 영화를 같이 보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이 왔습니다. 그게 조금 속이 헛헛합니다. 언제까지고 함께 할 줄 알았던 당신이었기에, 결국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렇게 당신과 함께 볼 거라 생각했던 영화를,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그렇게 언젠간 우리가 함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살아가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아, 나는 그 영화를 앞으로도 당신과 보지 못하겠구나 라는. 충동적이게도 그 영화를 당장 봐야겠다는 마음이 피어올랐어요. 근데 또 어떻게 혼자 보겠어요. 그냥 나만의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종종 같이 마셨던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그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상상한 내용과는 살짝 다르게 흘러갔어요. 물론 제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가 맞고 저는 그 영화를 어떻게든 봤을 거였지만, 당신이 싫어하셨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수위가 있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그저 담담하고 잔잔한 영화일 줄 알았던 저는 완전 낭패라는 낯빛으로 영화를 봤어요. 제목으로 유추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예상한 그대로였으나, 그 장면에서는 같이 봤으면 손사래를 치며 몰랐다고 억울해했을 겁니다.

영화의 중반까지 왔을까요, 문득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집중하기보단 화면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멈칫하던 손으로 천천히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그 영화를 다 보지 못했습니다. 왜인지 한꺼번에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함께 보고 싶었던 영화여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한 장면씩 차근히 영화를 보는 중입니다.


만약 같이 영화를 봤다면 아마 또 다른 영화를 보는 듯하겠죠. 혼자 볼 땐 보지 못한 디테일이라던지, 당신의 생각을 입힌 장면의 해석 같은 것들로 말이에요. 저는 그래서 함께 보고 싶었나 봅니다. 당신의 입으로 듣는 장면의 말들을 좋아했어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구요.

아마 우리는 이 영화를 함께 볼 일이 없을 듯합니다. 뎅하고 종이 울리듯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제 정말 그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 말이에요. 어쩌겠어요, 저는 이제 그저 남은 영화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한 장면 한 장면 눈에 담으며 제 나름의 해석도 덧붙이면서요. 어느 순간에 당신도 그 영화를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우리 그래도 같은 영화를 봤으니까 하는 마음이라도 들 수 있게요.

그리운 H,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젠 매미도 울기 시작했어요. 더운 날 부디 몸 상하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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