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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루미 Feb 25. 2022

너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스스로를 바꾸고 싶은 너에게

   나에게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절친한 친구가 있다. 내 친구 S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입학한 대학교에서는 항상 높은 성적을 받았다. 나는 친구의 대학 성적을 듣고 “우와 정말 열심히 했구나! 굉장한데~”라고 말하였다. 나의 칭찬을 들은 친구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니야, 어쩌다 보니까 운이 좋았던 거지.
다음번에는 이렇게 높은 성적은 힘들 거야.


 친구 S는 좋은 성적으로 전문대를 졸업하였다. 친구 S는 스스로의 공부량이 부족하다고 느껴 편입을 하였고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는 휴학 한 번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 S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친구 S는 나의 긍정적인 평가를 듣고 대답하였다.  

   

 아니야 대단한 애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하나도 안 대단해.   
  

  내 친구 S처럼 주변에서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이렇게 근사한 자리에 과연 내가 있어도 되나? 나는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내가 있던 자리가 나에게 준 기회였어. 내가 훌륭해서 된 게 아니야.”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무언가를 잘 해낼수록 점점 저 자신이 더 무능력하다는 느낌이 커졌어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제가 무능하다는 걸 다 알아차릴 것만 같았죠.”     


  영화 <해리포터>에서 헤르미온느를 연기해 11세 때 스타가 된 엠마 왓슨이 한 말이다. 엠마 왓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배우이다. 놀랍게도 그녀 역시 스스로가 이룬 성취를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닌 순전히 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5년 5월, 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자신의 모교 하버드 대학교에서 졸업생을 위한 연사로 섰다. 그녀는 자신이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후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속내를 고백하였다. 


 “하버드 대학교 입학하던 날에 느꼈어요. 이건 실수라고. 난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똑똑하지 못했거든요. 그 후 매 순간 ‘난 멍청한 여배우가 아니야!’라는 걸 증명하는데 너무 많은 애를 쓰고 시간을 소비했어요. 일부러 신경생물학이나 고급 히브리어 문학처럼 어려운 수업만 골라 들었죠. ‘사실 나는 유명해서 이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봤어요.”     


 이러한 연설은 한 나탈리 포트만은 6개의 국어를 모사할 만큼 똑똑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 친구나 회사 상사가 칭찬을 하면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어. 진짜 내가 한 건 별로 없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능력을 곧이곧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1978년 미국 조지아 주립 대학교의 폴린과 수잔은 자신감이 결여된 내면의 불안 심리를 가진 사람들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심리를 ‘가면 증후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면 증후군이란 외부적으로 이미 성공을 이뤘지만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의심하는 증상을 뜻한다. 자신의 성공이 순전히 운과 인맥 같은 외부 요인으로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이러한 심리는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마주하였을 때 받을 수 있는 심리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나타난다고 한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다니던 입시 미술 학원에서 들었던 말로 나 스스로를 오랫동안 과소평가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배웠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입시 미술을 다니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5월부터였다. 내가 다니던 미술 학원은 ‘사고의 전환’ 위주의 수업을 해서 소묘를 자주 그렸다. 학원에서는 그림 주제를 주고 시간을 정해주었다. 그림을 다 그리면 벽에 학생들의 그림을 붙였다. 그런 다음 원장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그림을 평가하셨다. 평가할 때마다 기분 좋게 원장 선생님이 나에게 칭찬을 해주셨다.  

   

 “선이 좋네. 이런 식으로 덩어리감을 찾아서 그려주면 좋아. 잘 그렸어.”     


 3주 내내 칭찬을 들으니 소묘도 좋고, 그림 그리는 게 참 재미가 있었다. 그날도 주제를 받고 소묘를 그렸다. 나의 기억력이 좋아서인지. 원장 선생님의 평가가 충격으로 다가와서인지 그날의 주제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주전자’. 인공물을 그렸던 날이었다. 그 무렵 나는 계속 칭찬을 듣고 있었던지라 내심 또 어떤 칭찬을 들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한 개씩 가리키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 그림에 차례가 왔다.     


 “이루미가 그린 그림이야? 인공물은 이런 식으로 그리면 안 돼. 자연물처럼 단순히 덩어리를 잡는게 아니라 빛이 비치는 느낌을 잘 살려야 한다고. 역시 그림을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한계가 보이네.” 

    

 그때의 나는 ‘그림을 늦게 시작해서 한계가 보인다.’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귓가에 원장 선생님의 평가가 맴돌았다. ‘늦게’, ‘늦게’, ‘한계’, ‘한계’. 나는 나도 모르게 나에게 ‘그림을 늦게 시작해서 자연물만 잘하는 애’라는 낙인을 찍었던 것 같다. 어떤 주제가 나올지 모르니까 더 이상 소묘가 좋지가 않았다.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졌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나 자신을 낮춰 말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하거나 디자인 감각이 있다는 말을 하면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보다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요. 저는 좀 늦게 시작한 편이라.
제가요?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라 잘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글을 적으면서 새삼 과거의 내가 참 못났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한가? 내가 나를 과소평가하던 버릇을 없앨 수 있었던 이유는 생각을 조금 바꿔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 내가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기회를 주는 것이구나. 운이 좋았다? 운을 놓치는 사람도 많은데 운을 잡아낸 것도 내 실력이구나. 나를 도와준 인맥이 있다? 그런 유능한 인맥을 알고 있는 것도 내 능력이다. 나에게 작용한 모든 외부 요인은 내가 만들었구나. 


 당신도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기를 바란다. 운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 것도 당신의 실력이라고. 당신을 도와준 인맥도 당신의 능력이라고. 당신에게 작용한 모든 외부 요인은 당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를 바란다. 


 혹시 타인의 기대에 실망시킬까 봐 두려운 건가? 그래서 자신을 낮추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말도 명심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누군가의 일을 하겠다고 수락을 한 게 기대를 시킨 게 아니라는 사실을. 혹시라도 타인이 당신에게 기대를 했다면 기대를 하고 나서 겪는 실망감은 타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몇 개월 전, 퇴근 시간에 3호선 지하철에서 기관사의 말이 울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은 과대평가하고 자신이 이미 한 일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경기도와 서울을 매일 오가며 출퇴근하는 것 자체만으로 여러분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십니다.”     


 사람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한다. 또한 내면의 생각은 스스로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나는 당신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함으로 당신의 가능성의 문을 닫지 않았으면 한다. 스스로의 능력이나 가치를 낮잡아 보는 것은 자신을 과신하고 부풀리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일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하고 있으며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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