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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_효자의 탄생

불효녀의 자기반성을 곁들인

by 두부맘

최근 한국의 출생률 통계를 보면 재미있는 점을 하나 포착할 수 있다. 바로 매년 1분기 출생률이 다른 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다. (물론 높다고 해봤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웃픈 현실이지만…) 이처럼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연초생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영유아 시기의 발달 문제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어린아이들일수록 월령별 발달 수준이 현저하게 차이 나기에, 보육기관 입소 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치이거나 뒤처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연말생보다는 연초생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뭐, 남의 얘기인 듯 적어봤지만 우리 부부 역시도 그랬다. 남편과 나 둘 다 체구가 큰 편이 아니기에, 그렇잖아도 작을 확률이 높은 우리의 2세였다. 유전적인 한계야 어쩔 수 없다지만 또래에 비해 발달 수준마저 뒤떨어지는 상황은 아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이면 최대한 정확한 타이밍에 아이를 가져, 완벽한 연초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임신 계획을 세울 당시 잦은 업무 출장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이래서야 도저히 최적기를 맞출 수 없겠다’고 판단, 보직 이동이라는 초강수까지 둬가며 임신을 준비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받아 든 예정일은 2025년 1월 16일이었다. 만출을 하지 못하더라도 무려 2주나 여유가 있는 셈이니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목표 달성에 대한 기쁨도 잠시, 반복되는 야근과 매일 2시간씩 소요되는 출퇴근 전쟁은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내 몸은 야금야금 갉아먹혀 갔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예상치 못하게 임신 기간 내내 고위험 산모 딱지를 달아야만 했다. 임신 12주 차에 발생한 조기 양막 파수에 이어 29주에 자궁경부 단축으로 조산의 위험까지 진단받으니 건강을 자부하며 촐랑댔던 과거가 후회되었다. 임신 29주부터 32주까지 고작 3주 만에 자궁경부가 2cm나 줄어들자, 의사로부터 ‘절대 안정’ 명령이 날아들었다. 담당의는 “36주 이후 조산아는 36주 미만 조산아에 비해 예후가 좋은 편”이라며, “어렵겠지만 최소 36주 0일까지는 버텨야 한다”라고 조언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36주라니, 그럴 순 없지! 내 계산대로라면 반드시 38주가 넘어서 나와야 하는 아이였다.


나는 그 길로 휴직계를 냈다. 조기 양막 파수를 계기로 업무 인계 자료를 미리 만들어 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회사 출근을 중단한 이후, 화장실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침대에만 착 붙어있는 극강의 눕눕 생활에 돌입했다. 너무 오래 누워있어 온몸의 근육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지만 내 몸을 걱정하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 임신 기간이 36주 0일을 넘어가자 담당의는 절대 안정 처방을 거두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일상생활을 권했지만, 나는 아이를 1월생으로 만들겠다는 집념 하에 침대 생활을 고집했다. 1월생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2024년 12월 31일에서 2025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는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하며 남편과 자축 행사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1월생 만들기’ 미션은 무사히 완수하였으나 하나의 과제가 더 남아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연분만’이었다. 요즘은 진통의 고통 및 출산 시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제왕절개를 미리 선택하는 산모들도 많지만, 나는 생살을 갈라야 하는 수술이 너무나도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가능하다면 출산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를 최대한 자연의 방식 그대로,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준비된 상태로 맞이할 수 있길 소원했다. 하지만 출산 방식 역시 산모의 희망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40주가 넘어 커질 대로 커진 아기를 낳느라 25시간 진통을 겪고 결국에는 응급 제왕 수술을 받은 지인의 경험담에, 나 역시도 난산을 겪게 될까 무척이나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눕눕 생활을 하는 도중 틈만 나면 아이에게 새해가 되자마자 방을 뺄 것을 종용했다.

“1월 1일은 공휴일이라 여러모로 복잡할 수 있으니, 1월 2일부터는 언제든 나와도 돼!”

물론 농담 삼아 흘린 이야기였는데, 놀랍게도 아이는 정확히 1월 2일 새벽부터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가진통이 시작되더라도 출산까지 통상적으로 3일 이상, 초산의 경우 일주일도 걸릴 수 있다기에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기 바빴던 거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같은 날 저녁 무렵이 되자 도저히 견디기 힘든 진통이 시작되었고, 버티고 버티다 늦은 저녁에야 병원을 찾은 나는 병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 반 만에 자연분만에 성공했다. 막 세상에 나와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품에 안으며 “엄마가 말하는 걸 다 듣고 있었던 거야? 너 정말 효자구나?”하고 말을 건넸을 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매일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며 놀라곤 한다. 아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아이에게 말을 걸고 동요를 불러주고 가끔은 애교까지 부려가며 아이에게 다양한 자극을 만들어주려 노력한다. 아이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이 조그마한 생명체가 배변활동을 성실히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특하기만 하다. 낮잠 밤잠을 가리지 않는 잠투정에 새벽수유까지 매일이 고단하지만, 꺄르르하는 아이의 웃음 한 번에 그 모든 어려움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나에게 “어떻게 내 배에서 너처럼 예쁜 애가 나왔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삼삼하다고 한다고, 그 당시에는 ‘어른들이 으레 하시는 말씀이지’ 싶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보니 그 말씀에 숨겨진 의미를 헤아리지 못했다. 아이를 낳아보니, 어머니의 그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아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옹알이를 하는 것은 물론, 용트름을 하고 방귀를 뽕뽕 뀌어대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기 그지없다. 내가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생명체를 낳았다니!


아이로 인해 너무나 행복한 반면, 어머니를 떠올리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죄책감과 죄송함이 몰려오곤 한다. 30년 전의 어머니도 아마 나를 보며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감정들을 느끼셨겠지. 어머니는 백지상태인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시면서도, 내가 지겹도록 같은 질문을 해대도, 내 대소변을 받아내시면서도 나를 그저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을 텐데. 그런데 나는 뭐가 그리 힘겹다고 세상을 잊어가는 어머니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드리는 걸 귀찮아하고,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을 내고, 어머니의 대소변을 불결하게 느꼈을까.


나는 과연 어머니께서 내게 주신 사랑을 단 1%라도 돌려드렸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과연 내가 아이에게 쏟고 있는 노력만큼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 애석하게도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에게 닥친 비극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조금만 늦게 찾아왔더라면. 그래서 내가 지금의 마음가짐으로 아픈 어머니를 대할 수 있었다면. 오늘도 나는 하늘 앞에 부끄러워 고개 숙인 할미꽃 마냥 그저 고개 숙여 슬픈 추억을 되새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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