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_둥지를 떠나는 법

그리고 내 새끼를 둥지에서 잘 떠나보내는 법

by 두부맘

"두부는 딸이야, 아들이야?"

"아들이에요!"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많은 선배 엄마들에게 공통적으로 추천받은 콘텐츠가 있다. 그건 바로 '최민준의 아들TV'. 출산을 결심한 이후 '삐뽀삐뽀 119'의 하정훈 선생님과 정유미 선생님, 오은영 박사님 그리고 조선미 교수님까지 소아청소년 관련 학계 전문가들이 저술한 육아서를 잔뜩 쌓아놓고 예습하던 우리 부부였기에, 처음에는 '굳이 별도의 육아 콘텐츠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유튜브에 접속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의학적으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의견에 휩쓸리지 말자고 다짐한 터였다. 인터넷의 발달은 정보의 홍수를 불러왔고, 육아 정보 역시 그 거센 물살을 피하지 못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각종 플랫폼에서는 숱하게 많은 계정들이 육아 정보를 빙자한 낭설로 '좋아요'를 구걸 중이고, 더 나아가 그중 일부는 부모들의 공포 심리를 자극해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 여념이 없다. 다들 주의하시길 당부드린다. 꼭 육아 정보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콘텐츠도 검증 없이 신뢰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다.


'그래도, 다들 추천하시니 시간 있을 때 한 번 보기나 할까?'

킬링타임용 채널로 여기며 눌러놓은 구독 버튼.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새 영상 알림을 보고서야 영상을 접했다. 몇 개의 영상을 연달아 시청한 후, 최민준 소장님의 '아들을 다루는 법'에 일리가 있다고 느낀 나는 남편에게도 해당 채널을 공유했다. 좌우간 나는 딸로 태어나 살아왔으므로, 평생을 아들로 살아온 남편이 해당 채널에 어떠한 평가를 내릴지 궁금했던 것이다. 남편 역시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반응했지만, 영상을 보고 나서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언급하며 "와, 남자애들 심리를 정확히 간파하고 설명하네!"라며 육아에 참고가 될만한 채널임을 인정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상은 '아들이 11살 전이면 꼭 보세요(https://www.youtube.com/watch?v=NcyUHqBmR4w)'였다. 해당 영상의 요지는 이렇다.

아들은 이륙 시간이 정해진 비행기와도 같아서, 때가 되었을 때 잘 떠나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을 더 이상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다루어야 한다. 아들을 믿고 결정권을 하나씩 넘겨주자. 통제를 못 견뎌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네 인생에 간섭하는 것은 기한이 정해진 인계인수 작업임을, 언젠간 믿음직한 우리 아들에게 전권을 일임할 것임을 환기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는 아들의 자립 욕구를 무던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최민준 소장님의 다른 영상들은 '딸과 아들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 반면, 유일하게 위의 영상만큼은 '딸도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사춘기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자립의 욕구가 꽤 강한 편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어렸을 적부터 시작된 타향살이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 그렇잖아도 사춘기 청소년들은 부모보다 또래 관계를 우선시하지 않는가? 심지어 나는 물리적으로도 '부모님은 멀고 친구는 가까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어머니께서 학교 생활에 대해 관여하시면, 불쑥불쑥 '엄마가 뭘 알아'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나의 반항기가 고개를 든 건 그때부터였다. 교복 치마를 줄이거나 단을 박아 입는 친구들을 보며 은근슬쩍 허리를 접어 입어본 것을 시작으로 비비크림, 틴트, 핫팬츠에 킬힐까지 당시 유행하던 아이템은 전부 쓸어 담았다. 당연히 화장은 동동 떠 촌스러웠고, 길거리에서 산 5000원짜리 옷들은 한 번 빨자마자 거적때기나 다름없어졌으며, 짓눌린 발가락들은 비틀대는 나를 지탱하려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런 몰골로 돌아다니면서 '나는 다 컸다'는 생각에 취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다.) 꾸미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하루아침에 우스운 꼴로 나타나자 어머니는 무척이나 당황하셨다.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용돈을 끊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셨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나에게는 통할 리 없었다.




맥도널드의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가 땡기는 어느 밤. 기숙사 통금 시간은 지나버린 지 오래, 곧 저녁 점호가 실시될 예정이었다.

"베토디 먹고 싶다."

"나는 맥플러리. 오, 가실?"

당시 친했던 친구들과의 의기투합은 초스피드로 이루어졌고 우리는 점호가 끝나기를 기다려 기숙사 탈출을 감행했다.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히 들켰다! 맥도널드의 'M' 자도 구경하기 전에 핸드폰에는 불이 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꼼짝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다. 당직 선생님과 사감 선생님께 엄청나게 혼이 난 건 물론, 기숙사 규정에 따라 벌점을 부여받았으며 부모님께도 이 모든 상황이 통보되었다.


나는 그날 일을 "그땐 그랬지" 하고 추억하게 될 하룻밤 일탈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말이 되어 합법적으로 외출을 할 때에도, 내가 학교를 벗어나기만 하면 어머니로부터 '뭐 하냐, 어디냐, 누구랑 있냐'는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우연찮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오전에 안부 연락을 했는데, 오후에 내가 외출을 하자마자 또 전화가 온다든가 하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반복되었다. 더욱 이상한 일은 내가 전화를 받지 못했을 때 일어났다. 평소 어머니는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해도 연달아 전화하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외출 중 전화를 받지 못했을 때면 꼭 몇 분 간격으로 부재중 전화가 잔뜩 쌓여있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알고 보니, 어머니는 기숙사 탈출 사건을 기점으로 내 핸드폰에 '자녀 위치 추적' 서비스를 설정해 놓으신 상태였다. 그 서비스는 꽤나 강력해서, 자녀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부모에게 전송할 뿐 아니라 특정 지역을 이탈할 때도 알림을 제공했다. 어머니가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까지 자식을 못 믿을 일인가?' 반항심이 도진 나는 아예 핸드폰 없이 빈 손으로 나다니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잔소리를 하자, 나는 보란 듯이 핸드폰을 집에다 놓아두고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모녀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상황이 내 철없는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어머니였어도 나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으리라. 그러나 당시 나는 어머니의 염려를 다른 방향으로 해석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향한 잘못된 방식의 애착. 그게 내 결론이었다. 하루빨리 이 비정상적인 정서적 유착 관계를 끊어내고 어머니의 집착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던 나는, 기대치를 낮추는 것만이 해답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순종적인 딸은 없다는 것을 보여드려야만 했다. 끊임없이 반항했다. 불같이 화를 내시던 어머니가 어느새 다 타버린 재처럼 무력하게 날 포기하실 때까지. 어머니가 날 포기하신 이후 표면적인 관계는 되려 회복되었지만, 서로의 마음에 남은 내상은 치유될 길이 없었다.


머물던 둥지를 박살 내 버리는 것. 이게 내가 둥지를 떠난 방법이자, 평생을 두고 죄책감에 후회할 과거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짓밟고 망가뜨린 둥지는 나를 키우느라 갈아 넣으신 어머니 인생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어머니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엔 뒤집기를 막 성공한 내가, 첫걸음마를 떼던 순간의 내가, 울고불고 엄마를 찾던 어린 내가 겹쳐 보였을 거라는 사실을. 분명 어렸던 나에게 어머니는 세상 그 자체였는데. 나는 어쩌자고 그 세상을 부숴 놓았을까.




요즘 나는 아이 덕에 행복하지만 꽤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지독한 엄마껌딱지였는데, 두부도 슬슬 엄껌의 기미가 비친다. (남편의 유전자가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남편도 엄껌이었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나를 대하는 태도에 큰 차이가 없었는데, 4개월에 접어들면서부터 '잠은 무조건 엄마랑 자겠다!'는 의지를 결연히 표명 중인 우리 두부. 낮잠과 밤잠을 가리지 않고 나를 찾는 바람에 솔직히 몸은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그 따끈함과 보들보들함을 만끽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다. (아, 두부는 초예민한 등센서의 소유자라... 이하 생략.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이라면 분명 나를 가엾게 여기리...)


지금은 엄마 없이는 잠도 못 자는 아가지만, 언젠간 두부도 나를 고리타분하고 잔소리 많은 엄마로 여기게 될 테다. 그리고 둥지를 박차고 나가기 위해 열심히 나는 법을 연습할 테지. 서툰 날갯짓과 함께 "이만하면 잘 날죠?"라며 의기양양해하는 두부를 보고 '아이고, 저 실력으로 어딜 간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 마음은 꼭꼭 숨긴 채 "내 새끼 언제 이렇게 잘 날게 됐대?" 하며 응원하고 믿어주는 둥지가 되어야지. 가끔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둥지로 남아있을 수 있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파닥대는 손자를 어머니께 보여드리며 "꼭 너 닮은 애 낳아서 키워보라더니, 어머니 말씀처럼 되었네요."하고 조용히 말을 건네야지.

keyword
이전 14화#13_가깝고도 먼 모녀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