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브런치북 연재를 끝내며
이 글은 '서른의 엄마, 쉰셋의 아이'의 마지막 화이자 에필로그입니다. 고작 17화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게 내 한계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민망하기도 하고 조금 더 부지런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뿌듯함보다 큰 아쉬움이라니.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먼저, 저의 브런치북을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기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셔서, 지난 5개월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도록 동력을 불어넣어 주셔서, 매주 행복함과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도서관에 처박혀 책을 읽던 게 시작이었을까요, 아님 되지도 않는 소설을 끄적거리던 초등학교 때부터였을까요. 뭐가 됐건, 점점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성인이 되고 나서 몇 번이나 글을 써보려 시도하였지만, 높은 이상에 비해 제 필력은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훌륭한 작가님들의 좋은 문장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제 문장들을 읽다 보면 '도대체가 이따위 글을 쓰려고 종이(내지 byte) 낭비를 했나' 하는 자조적인 기분에 휩싸였거든요.
작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신 후 100% 내근 업무를 맡게 되면서, 한동안 놓고 있었던 글을 향한 갈망이 다시 샘솟았습니다. 틈틈이 글을 써보자고 다짐했지만, 제 핸드폰 메모장에 있는 문장 중 쓸만한 것은 고작 '2025년, 나는 엄마가 된다. 1995년 우리 어머니가 그랬듯이.'라는 딱 한 줄 뿐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첫 화의 부제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나에게 정말 재능이 없나, 고작 이 정도 수준의 글을 써서 무얼 하겠단 말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있던 와중, 장강명 작가님이 쓰신 '책 한번 써봅시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본격적으로 글 쓰기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해당 도서 중 제 마음을 설레게 한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인용합니다.
-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중략)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 이런 분께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책을 쓰지 않고 계속 후회하며 사는 것. 둘째,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것. 셋째, 멋진 책을 쓰고 후회하지 않는 것. 물론 멋진 책을 쓰는 게 제일 좋다. 그리고 형편없는 작품을 내고 괜히 썼다며 후회하는 것과 책을 아예 쓰지 않고 후회하는 것, 둘 중에서는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중략)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 기회도 없다.
- (전략) 왜 유독 책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그거 써서 뭐 하려고?"하고 스스로 묻고 "내가 그런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며 자기 검열에 빠지는 걸까. 그냥 내가 좋아서 쓴다는 이유로는 부족한 걸까.
글 쓰기를 망설이던 저에게 장강명 작가님의 말씀들은 응원이자 일갈로 다가왔고, 책을 덮자마자 무작정 메모장을 켜 글을 이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임신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시점이었기에,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기에 좋은 시점이기도 했지요. 어머니의 치매 증상으로 겪었던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나니, 문득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 일을 겪고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 혹은 도움이 되는 글을 쓰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이브 원고가 10개쯤 되었을 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였고, 감사하게도 글을 연재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책을 쓰고 싶다면 먼저 200자 원고지 600매 분량의 내용을 먼저 작성해 보라는 장 작가님의 원격 지시(!)를 받들어, 총 12만 자 이상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는데 방금 확인해 보니 프롤로그를 포함해 지난 화까지의 분량은 안타깝게도 5만 자에 그치는군요. 장 작가님께서 '작가가 되기보단 저자가 되길 바란다'라고 하셨는데, 저자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반추해 봅니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매 회차 글을 작성할 때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수였습니다. 그러나 24시간 내려놓을 수 없는 '엄마'라는 직책을 가지게 되면서, 저의 생각과 감정을 고찰할 시간도, 이를 글로 풀어낼 시간도 부족한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글을 쓰면 되겠거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만, 이전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저희 아들에게 탑재된 초강력 등센서는 저를 인간 침대(...)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나마 밤잠은 등을 대고 자 주기에, 늦은 밤이 되면 쏟아지는 졸음을 쫓아가며 글을 썼습니다. (에필로그를 쓰고 있는 지금도 벌써 1시를 넘어가네요.) 하지만 곧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 한참 글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데 아이가 잠에서 깨 울고 보채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가끔은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아직 통잠을 자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이에게 "제발 자!"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요. 연재 일정에 쫓기다 보니 마음에는 여유가 있을 틈이 없고, 밤잠이 부족하니 체력은 점점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늘 피로하니 낮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놀이 시간 퀄리티 저하는 덤이고요.
그래서, 목표치를 반도 채 달성하지 못한 상태지만 잠깐 쉬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또 한 번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어머니, 당신께서도 저 때문에 당신의 목표와 욕심을 많이 내려놓으셨어야만 했겠지요. 자식을 키우며 '내'가 없어지는 감각을 대체 어떻게 소화해 내셨나요.
다음번엔 얕지만 흥미로운, 보다 가볍게 써 내려갈 수 있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간절히 꿈꾸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