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끄적거림 6

지금의 진짜 위로를 찾는 시간

by 문달슬

외로움인 줄 알았던 감정이 외로움이 아니라고 한다.

누구는 번아웃, AI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한다. 내 감정을 타인에게 물어본다는 게 퍽 낯설다.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이

"아이야, 내가 지금 감정의 냇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라 나를 좀 꺼내주겠니?"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아니요. 내 감정이 아니니 그건 제가 도와줄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쪽에 가깝다.


누군가를 감정의 냇가에서 꺼내준다는 건,

내가 그곳에 들어가서 흠뻑 적시고 나올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최근에 연예인 정선희 님이 최화정 님의 위로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진짜 위로>가 무엇인가를 진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10대의 위로는 가방에 있는 초콜릿 한 조각을 나눠주는 거였다. 나는 그 친구가 좋지만, 그 친구는 타인을 좋다, 나쁘다 생각하기에는 본인이 처한 문제와 상황이 큰 스트레스 같아 보였기에 책상 위에 슬며시 달달함 한 조각을 두는 게 내 최선의 위로였다.


20대의 위로는 차를 타고 멀리 나가 좋은 풍경을 보여주고 그 시간에 그냥 단지 같이 머물렀다. 그냥 그 시간에 조용히 곁에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해결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건 위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성인이 된 그 아이에겐 자신만의 해결법이 있었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 안에 아주 조용히 내가 있는지도 모르게 함께했고, 울면 등을 토닥거리고 답답해하면 바다 앞으로 데려다주는 게 내 최선의 위로였다.


이제 30대의 위로를 찾아야 할 시기라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나를 버티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다정이 나를 또 한 번 살리고 있었다.

'그럼 다정이라는 것이 진짜 위로인가?' 하는 생각에 머무르고 그 생각이 거의 확정의 경계선에 있을 때 <진짜 위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그 영상을 만났다.


내가 힘든 그 일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


그게 정선희 님에게 위로였다고 한다.

그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니

그건 두 사람이 맞는 것일 뿐, 진짜 위로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본인에게 위로가 되었다는데

타인이 부정하다니.

본인에게 일상을 보낼 힘이 되어 주었다는데

위로가 아니라고 하다니.

거참 위로를 정의하고 내뜻을 찾기가 어렵다.


여러 형태의 위로를 받고 있고,

주고 있는 요즘이라 그런지

나는 타인에게 위로를 건네줄 자격이 있는지 되묻곤 한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내가 내 30대의 위로를 찾게 된다면,

내가 그걸 건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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