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영화
해가 넘어가고 있다. 한강 다리의 인도. 캐리어 바퀴가 시멘트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간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이의 뒷모습. 슬로우 모션. 운동화를 신은 다리부터 틸업하여 보여 주는 교복 치마, 후드짚업 상의차림. 화면을 꽉 채우는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 여학생의 그림자가 길다. 그 위에 얹히는 허밍. 라라랄라 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라라 라랄라라. 여학생의 시선에 잡히는 나무들. 바람에 온몸이 휘어지자니 나는 소리들. 서울 한강의 퇴근길 차량 행렬. 그 중 하나인 버스. 한 승객이 다리 난간을 본다. 화면은 여전히 슬로 모션. 다리 난간 앞에 캐리어가 놓여 있다. 좀전까지 그것을 끌고 가던 주인은 없다. 그 승객은 아마도 그 주인이 강물에 뛰어든 걸 보았으리라. 부감으로 시퍼런 강물이 보인다. 거기 점처럼 보이는 사람. 그 위에 대화가 흐른다. “공주야 왜 그렇게 수영을 열심히 해?” “다시 시작해보고 싶을까봐. 내 맘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여학생은 두 팔을 저어 허우적대는가 싶더니 물 속으로 잠긴다. 무서운 물. 이윽고 잠영으로 나아가는 모습. 여전히 부감 앵글. “한공주, 한공주, 한공주.” 하고 응원하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그 화면에 얹히더니 어느 새 여학생이 안 보인다.
죽었으려나. 영화 ‘한공주’의 결말은 열려 있다. 잠영하는 여학생 한공주는 안 보여 주고 한공주가 나아가는 방향의 강물만 보여주고 영화는 끝났다. 영화는 끝났는데 나는 안 끝나 있었다. 주인공이 살아 주기를 바라는 건 내 사정이었다. 살았다고 우길 만한 근거가 별로 없다 보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되질 않았다.
나는 이 영화를 2015년 1월쯤에 봤다. ‘씨네21’에 게재된 ‘2014년 한국 영화 베스트 5’에 해당하는 영화를 하나씩 봐 나가다가 보게 되었다. 두 아이에게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자고 졸랐고 그들이 나에게 영화 선택권을 주었다. 일 주일에 한두번도 밥을 같이 먹기 힘든 가족, 그 가족을 이어보자고 제안한 영화감상 시간이었다. 아무 거나 보았다가는 재개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권위 있는 평판에 기대어야 했다. 그래서 두 사내아이와 같이 보게 된 영화 ‘한공주’.
나는 이 영화가 ‘2003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점을,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주인공 역의 ‘천우희’라는 여배우도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감독에 대한 사전 지식 역시 없었다. 어떤 영화기에 좋은 영화라고 했을까 정도의 궁금증만 지닌 채 본 영화였는데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두 아이도 흡족해했다.
주인공 삶이 아프고 불편했다. 현재와 과거가 넘나들 때 설명 조가 아닌 점, 몇 개의 롱숏을 빼고는 모두 바스트숏인 앵글이 긴장을 풀 수 없게 한 점, 훌륭한 내면 연기 덕분에 잦은 클로즈업이 주인공 감정을 따라 들어가게 해준 점, 지하철이나 버스 소리,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캐리어 끌리는 소리 등의 둔탁한 소리들이 주인공의 심경과 합치된 점 등. 이런 연출 덕분에 내가 한공주 곁에 있는 사람의 심정이 되었다.
마흔 세 명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단짝 친구가 임신한 채 강물에 투신 자살을 하고, 잘못한 게 없는데 전학을 가고 신변이 드러날까봐 다가오는 새 친구들을 멀리하고, 노래하는 능력을 감춰야 하고 가해자 부모한테 쫓겨야 했던 열여덟 소녀. ‘공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세상 가장자리로 밀려나다가 더는 발 디딜 곳이 없어 몸을 던진 소녀. 그 한공주를 보면서 사는 게 지옥일 테니 그렇게 마감하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내 보라고 응원했다.
실제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마흔 네 명이라고 하는데 감독은 마흔 세 명으로 설정했다. 그 한 명은 비워 둘 테니 누가 그 자리에 들어가는 게 맞겠느냐고 묻는 듯했다. 한공주를 둘러싼 인물들 중 누구를 마흔 네 번째 가해자로 보이고 싶었을까. 공주를 전학시키고 임시 거처로 제 어머니 집 자신 방을 안내해 주었지만 표정은 ‘왜 하필 나야’였던 담임 교사. 자식이 떠맡긴 학생을 탐탁해하지 않다가 쓸모 있으니 데리고 있던 담임의 어머니. 가해자들과 합의한 뒤 합의금을 챙긴 공주의 생부. 3년 만에 자신을 그리워해 찾아온 공주를 재가한 남자에게 모르는 아이라고 한 생모. 니 잘못이 아니라며 전화 달라는 문자를 해 놓고 막상 공주가 성폭행당한 동영상을 보고는 공주의 전화를 받지 않은 친구 은희. 그들이 너만 못해서 공주를 생의 벼랑으로 몰아세웠느냐고 묻는 거 같아서 나는 편치 않았다. 결국 나는 어정쩡하게 미안해하다가 시간 지나면 싹 잊고 살 테니 그런 내가 마흔 네 번째 가해자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공주'를 보고 나니, 누구는 연출 능력을 지녀서 고발자 역할을 하는데 그 능력이 없으면 보고 전파하기라도 하자는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찾아 본 영화가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였다. ‘제주 4·3항쟁’을 증언하여 ‘영화가 제의(祭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영화’라는 평이 달린 영화였다. 그 때 큰 애는 제주도로 출장 가 있었다. 아들이 나한테 실시간으로 제주의 풍광을 보내 왔다. 사진을 보다가 못 참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봤자 거기는 4·3의 혼령이 있는 땅일 뿐이야.’
영화 '한공주'의 여운은 그렇게 이어졌다.